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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정 Oct 23. 2023

백수가 될 기회

6개월 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다

  1년은 쉬어줘야한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고집부리며 취업했던 회사였다. 졸업동기들이 모두 취업시장으로 뛰어드는데 뒤쳐지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하고싶은 일이 확고했다. 가끔 아프긴해도 무리라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건강 때문에 퇴사한 것은 아니고, 첫 직장에 대한 애정보다 대단했던 급여 밀림과 회사의 어긋난 가치관이 나를 백수의 세계로 이끌었다. 다행히 나를 비난하는 이는 없었다. 부모님마저 응원해줄 정도였으니.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있어 명동과 을지로 입구역을 번갈아 출근했다. 어느 곳이든 사람이 넘치는 역이라 지하철에서 타고 내리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히 물살처럼 쏟아지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움직였다.

  톱니바퀴,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았다. 남들 움직이는 것 그대로 따라 움직이는 내가 더이상 사람이 아닌 부품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삶과 쉼이 필요했다. 그래서 퇴사 전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부단히 생각했다.

  결론이 하나로 나지는 않았지만 향하는 방향은 같았다. '진정 내가 살고 싶은 방향을 찾기.' 그것이 내가 가진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백수 생활을 지내며 이루고 싶은 목표였다.

 

  수중의 돈은 500만원 남짓이었다. 자취생에게 턱없이 적은 돈이었으므로 나는 그 돈을 정말 야무지게 써야했다. 배우고 싶은 것을 하루빨리 찾으려고 했다. 나는 백수 생활이 하고 싶어 회사를 그만둔 게 아니라, 내 꿈을 찾기 위해 회사를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곧장 주얼리 클래스를 등록했다. 퇴사를 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매주 가야만 하는 곳을 지정했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추운 날씨를 뚫고 한 시간 반을 가서 달에 50은 돈을 내야 들을 수 있는 그 수업이, 여직 따뜻한 날씨일 때 겨우 20분 가서 180만원씩 돈을 받을 수 있는 어느 자리보다 훨씬 좋았다.


  생활비가 생각보다 빠르게 빠져나갔고, 나는 결국 퇴사 후 약 2개월 정도 지나서 곧장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생각보다 클래스 비용이 부담이 된 것이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직원들에게 시켰던 카페 업무가 도움이 됐다. 금새 프랜차이즈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됐다. 그리고 1개월 뒤에 그 카페마저 나와버렸다. 하하! 여기서 누군가는 나를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다. 3일만에 모든 카페 메뉴를 외우지 못했다며 매니저님이 쏟아낸 갖은 비난들을 견디지 못한 것도 어쩌면 내 정신적 지반이 너무 약해서 그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 때 느꼈다. 일단 내가 돈을 다 쓰더라도, 다른 곳에 머리 쓰지 말고 내가 하고싶은 일에 집중하는 게 맞겠다고. 이 백수가 되는 기회는 젊었을 때나 흔히 오는 것이라고. 얼마 가지 않아 또 아르바이트를 구하긴 했지만 그 때 나는 스스로를 백수라 칭하고 다녔다. 어쨌든 간 직장을 다니고 있던 친구들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넘쳤으니까. 그리고 나를 취준생이라 부르고 싶지 않았으니까.


  취업 준비생이라고 하면 그 잔인한 취업시장에 또 뛰어들어 다시 톱니바퀴가 되어야할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어쨌든 지금도 직장 생활을 하고있지만 어쨌든) 회사원이 되는 것을 생각만 해도 숨을 헐떡거렸고 심장이 욱씬댔다. 이것이 공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조금 나중의 이야기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내가 자칭 백수가 되어 얻은 것들에 대한 수다다. 글이라 칭하지 않고 '수다'라고 칭함에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이 글을 대화하듯 읽어나갈 독자들에게, 내가 겪은 좋은 감정과 느낌들을 더욱 친밀하게 건네기 위해서다.


  당신이 백수라도, 회사원이더라도, 취업준비생이라도.

내가 펼칠 수다가 어떤 방식으로든 힘과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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