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서부터 많은 꿈을 가져왔습니다. 도대체가 맥락이라고는 없이, 어느 때는 공을 받아내는 것이 멋있어서 배구선수, 친구따라 화가, 부모님 뜻을 따라 중국어 선생님을 목표로 두고는 했어요. 늘어놓으면 한 문단은 채울 정도로 그렇게 꿈이 많았는데, 그 중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꿈은 배우입니다. 오죽하면 대학에 진학하고 다시 선생님을 꿈꿀 때도 '내가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이 교단에 서는 것에 도움이 된 것이다.'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는 특이하게도 종교시간이 있었는데요, 그 종교 시간에는 단순히 종교활동이 아니라 종교의 가치라던지, 종교의 역할 같은 것도 배우고는 했습니다. 여전히 믿는 신은 없지만서도 그 종교시간만큼은 기억에 남습니다. 한 날에는 교무님(교회로 치면 목사님이 되겠네요.)께서 영화를 틀어주셨습니다. 이름은 "블랙", 아마 주인공이 앞을 보지 못하고, 소리도 듣지 못해 붙여진 이름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얼추 요약하자면, 그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한 선생님을 만나 언어를 배우고 사회화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인데요, 이 영화가 그렇게 저에게 감동을 주더랍니다. 한창 어떤 학과로 진학해야하나 고민을 하면서 단 한 개의 학과도 눈에 들어오지 않다가, 연극영화과를 한순간에 꿈꾸게된, 그런 기적같은 순간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극영화과는 못 갔습니다. 안 간 게 아니라 못 갔어요. 연극영화과를 가려면 입시 연극이라는 것을 배워야하고, 심지어는 노래도 잘하면 가산점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연기는 가서 배울 생각만 했지, 미리 연기방법을 알아서 가야하는지는 몰랐습니다. 게다가 노래는 또 어떻고요,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무엇보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곧장 포기하고 말았어요. 그럼에도 이 꿈이 가장 선명한 것은 여전히 이루고자 하는 바가 제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극, 연기를 통해서 저는 제가 영화를 보고 느낀 그 감동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 그토록 매력적일 수 없었어요. 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조언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회생활 조금 했다고 상대가 원하는지 아닌지는 눈치 봐가면서, 남의 인생에 살짝 참견해보는 것이 재밌습니다. 이게 제 업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되어 여러 학생들의 인생에 참견해보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선생님도 되지 못했지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들 인생에 참견하겠다'는 그 꿈은 벌써 이루고있습니다. 이건 너무 거칠게 말한 문장이고요, 제가 감명깊게 느낀 바를 남들에게도 전하는 일을, 어렸을 적부터 계속 가지고 있는 취미인 그림과 연결시켜 '인스타툰'으로 이루고 있습니다. 신기하죠, 인스타툰 작가라니, 평생 생각도 못해봤던 일인데 말입니다.
많은 강연에서 꿈은 동사로 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정 직업인이 되는 것보다는, 어떠한 미래를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해보라는 말이겠지요. 직접 겪어보니 알겠더군요. 수많은 직업인의 꿈을 거치면서도 놓지 않은 동사형 꿈, '타인에게 감동과 감명을 주는 삶을 살고싶다.'는 구체적인 문장을 왜 소중하게 생각해야 했는지를요. 어떤 꿈이든 본인이 꾸리고 싶은 삶의 모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직업이냐가 아닌, 어떤 사람이 되고싶은지를 생각해보세요. 지금 고민하고 있는 직업이 생각보다 중요치 않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