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 관리
평소 오후에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마찬가지였다. 잠을 늦게 잤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피곤한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계부 작성을 하면서 식사 후 30분~1시간 뒤 일정한 시간에 졸려하는 신체 리듬을 파악하게 되었고, 그것이 식곤증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시계부란, 나의 하루 일과를 30분 또는 1시간 단위로 사용 시간을 추적하여 작성하는 것이다. 이는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자기 평가로 시간 관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나는 이 식곤증 때문에 식사 후에 졸음운전으로 보호난간을 박은 적도 있고, 앞서가는 견인차 뒤를 쫓아가다가 졸음운전으로 브레이크를 늦게 밟아 견인차 후크가 차량 전면 유리에 부딪힐 뻔한 아찔한 상황을 경험했다. 식곤증으로 인한 피로감은 집중도를 낮추고 기억력을 감퇴시켰다. 나는 이런 것들을 타파하기 위해 오랜 시간 이동해야 하는 경우나 중요한 미팅이나 강의가 있을 때, 모든 일정을 끝내고 식사를 하거나 간단하게 식사를 대체했다. 또한, 오후 시간대의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서 잠깐 낮잠을 자거나 산책을 다녀오는 등 컨디션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 노력은 오직 식곤증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식곤증은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어 혈당 수치를 급격하게 낮추게 되는데 이때 뇌에 산소 공급이 부족해져 졸음이나 피로감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내 몸이 혈당과 인슐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불안해졌다. 혈당과 인슐린, 이 단어는 듣기만 해도 내게는 너무 두려운 존재였다. 이유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나의 외할머니는 매일 배에 손수 주사를 놓고, 조그만 책자에 주사 위치를 기록했다. 그것은 당뇨 환자가 인슐린 주사를 맞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매일 주사를 맞고, 식단을 조절하셨다. 마지막 생을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당뇨는 무서운 병이라 생각하며 자랐다. 부모 중 한 명이 당뇨병이면 30% 정도 유전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나의 엄마는 평생을 당뇨를 예방하고자 관리를 해왔지만 애석하게도 당뇨는 유전되었다. 나에게 생긴 식곤증 증상은 당뇨가 유전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했다.
다행히 나는 시계부를 통해 식곤증을 예방할 수 있도록 관리하였기에 일상생활에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러다 임신 소식을 접했고, 가장 먼저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임신성 당뇨가 우려됐다.
임신성 당뇨는 100명 중 1명에서 2명꼴로 발생한다고 한다. 대부분 임신 중·후반기에 체지방의 증가와 여러 호르몬이 인슐린이 분비되는 것을 방해하고, 태반에서 인슐린의 기능을 낮추는 호르몬의 과다 분비 등 여러 이유로 당뇨 발생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평소 혈당 문제가 있었던 나에게 임신성 당뇨는 너무나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 나는 임신성 당뇨 판명을 받았다. 그 후로 매일 현미밥, 샐러드와 두부 등 단백질 위주의 음식을 먹어야 했다. 내가 먹은 음식은 모두 기록해야 했다. 단백질 섭취를 하더라도 혈당이 오르는 날에는 어떤 음식이 혈당을 높이는지 찾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좋음)(보통)(나쁨) 이모티콘 모양으로 당뇨 수첩에 컨디션을 체크했다. 그 이유는 같은 음식을 먹어도 식사 시간이나 당일 수면 시간, 컨디션에 따라 공복 혈당 수치가 200을 찌르는 날도 있었기 때문이다(임신성 당뇨일 경우 공복시 105mg/dl 미만, 식후 혈당 120mg/dl 미만이어야 정상수치다).
당뇨는 최대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채소 섭취를 늘리는 것이 중요했다. 빵, 떡, 국수, 밥은 금기시 해야했다. 현미밥이 혈당을 낮춘다는 말이 있지만, 자가혈당측정 결과로는 섭취량 조절이 가장 중요했다. 특히, 육류를 먹으면 종일 혈당 수치가 높게 올라서 첫째 아이는 뱃속에서 거의 고기 맛을 보지 못했다. 고기가 먹고 싶은 날에는 고기 먹방을 보면서 서럽게 울었던 것이 생각난다. 식단 관리보다 괴로웠던 것은 매일 공복, 아침 식후 1시간 후 1번, 점심 식후 1번, 저녁 식후 1번 그렇게 4번에서 많으면 7번까지 바늘로 손에 피를 내서 자가혈당측정을 하는 것이었다. 혈당이 높게 측정된 날에는 식후 2시간 이후에 추가로 다시 피를 내야 하는 것이 곤욕이었다. 매일 손끝 부분에 피를 냈는데 열 손가락 모두 피멍이 들었다. 그렇게 3개월을 당뇨 환자로 살아갔다.
매일 아침 남편이 저칼로리의 식단을 준비해주고 먹고 싶은 것을 잘 참으며 건강한 음식들로만 채웠더니 거의 마지막 달에는 배 속 아이의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 임신성 당뇨로 가장 걱정 되는 부분은 4킬로그램 이상의 거대아 출산이었는데 다행이었다. 오히려 의사 선생님이 고기 먹으면서 아이를 좀 키우자고 해서 일주일간 원 없이 한우 A++ 소고기를 먹었다. 남편의 부단한 지원과 나의 지독한 자기 관리로 아이는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다.
출산 이후, 자가혈당측정에서 벗어나는 행복을 느꼈지만, 식단 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임신성 당뇨로 판명된 환자는 출산 후 50%가 20년 내 당뇨 환자로 진행될 수 있고, 1년마다 정기 검사를 하는 것이 좋다는 안내를 받았다. 당뇨를 경험한 나로서는 바늘 공포증이 생길 정도로 무서운 병이기에 꾸준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당뇨 수첩에서 다시 시계부로 돌아와 기록했다. 당뇨시기를 경험하면서 아침마다 컨디션을 체크했던 방법을 시계부에 추가로 작성하면서 나를 기록하는 습관을 업그레이드 했다.
기록하는 습관을 조금 더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다음은 생리 주기 체크였다.
학창 시절부터 생리통이 심했다. 평소 까불대던 나는 생리하는 주에는 통증으로 반쯤 허리를 숙이고 다니거나,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양호실에서 누워있었다. 내가 없으면 교실이 조용하다며 선생님들까지 내 생리 기간 알 정도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통증이 심한 날은 잘 걷지 못했고,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아이를 출산하고 나면 생리통이 사라진다기에 기대했지만, 아이 둘을 낳아도 통증은 여전했다. 통증이 심해지면 진통제를 먹었다. 확실히 진통제를 먹으면 통증은 덜해졌다. 진통제를 미리 복용하면 통증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통증 시기가 언제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알고 싶어졌다. 나는 임신성 당뇨 기간 동안 기록의 힘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시 해보기로 했다. 어플로 꾸준한 체크를 통해 생리 평균 주기를 알 수 있었다. 다음 가임기, 배란기, 그리고 생리 예정일, 그날의 몸 상태를 기록했다. 생리하기 이틀 전에 허리통증이 가장 심하고, 생리 당일에는 복통이 심하다는 데이터를 얻었다. 생리 기간은 아닌데 복통이 있을 때 패턴을 확인해보니 배란 주기였다. 생리 주기와 배란 주기를 파악함으로써 사전에 진통제 복용과 따뜻한 팩을 준비하는 요령이 생겼고, 덕분에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도록 컨디션 조절이 가능해졌다.
당뇨 수첩 기록과 생리 주기 기록. 이 두 가지 기록은 시계부에 일과를 적어 자신을 객관화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모든 기록은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해주었다.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나를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고, 내가 알고 있던 사실도 다르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내 짜증과 히스테리가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올라오는 게 아니라 수면시간이 부족할 때 더 강하게 올라온다는 것을 알았고,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이미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많은 것들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기록은 나를 제대로 알아가는 첫걸음이다. 작은 것부터 꾸준히 시작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결심하고 실행하라.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기록하고 피드백하자. 당신의 인생이 놀라울 정도로 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