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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은 Dec 22. 2022

정성 들이다 잠자리 독서

작은 철학자 / 철학 동화

막연하게 자식을 잘 키우고 싶었다.


겨우 돌 안된 조카가 책을 읽으면 얼마나 읽을까. 먼저 결혼한 동생네 거실 한 벽면 책장에 책이 빼곡했다.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졸업 한 이후 그 분야에서 꾸준히 일하는 동생은 수많은 유아와 학부모를 만났다. 책 환경에 노출되었고 책을 좋아하는 유아는 학습능력이 우수한 학생으로 성장하는 것을 통계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동생은 유아전공자임을 강조하며 선배맘의 포스로 열정적으로 책육아를 강조했다.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욕심 많은 엄마이기에 영유아 발달과정, 이유식, 아토피 피부염, 자녀 기질, 감정 학습, 자녀 학습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아이를 키웠다. 한마디로 아이의 흰 도화지 같은 깨끗한 뇌에 균형 있는 오감자극과 편안함이나 행복감 같은 긍정적 정서를 채워주어야 하는 엄마사람으로 강제 재정비하는 것이었다.




지식적인 양육법과 부정성이 많은 현실엄마의 간극을 좁히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척하는 가면을 쓰기도 했다. 웃는 척, 친절한 척, 다정한 척, 나긋나긋한 척, 부지런한 척, 책 읽는 척, 자상한 척.

울화통이 터지면 베란다로 나가서 욕지거리를 발산했다. 지킬 앤 하이드 같다고나 해야 할까.


부끄럽게도 척하는 사람이 엄마의 본모습인 줄 아는 아이.

억척스럽게 척하는 사람이 척하면서 자녀양육서를 읽고, 매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행동을 했다.


육 년 정도 지났을 무렵 내게 미묘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했다. 부정성이 점차로 옅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김종원 작가는 '내 안에 좋은 말이 가득 차 있어야지 아이에게 좋은 말을 건넬 수 있어요'라며 좋은 언어를 소리 내어 읽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필사를 강조했다.

자식을 잘 키우고자 책을 펼친 일에 오히려 내가 수혜자가 된 것이었다.


 

책을 읽어주면 되려 귀찮아하는 중학생이 된 딸아이. 하지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잠자리 독서이다.


영유아기 때 읽었던 전집 중 유일하게 책장 한 컨에 자리 잡고 있는 철학전집. 한 페이지에 서너 줄로 구성된  철학적인 내용을 함축한 그림책. 중학생 잠자리 독서책으로 안성맞춤이다. 실은 아이를 핑계 삼아 나에게 도움 되는 일이기에 지금껏 이어가고 있다.




책 한 권을 읽고 책 내용과 유사한 경험, 비밀이 새지 않는 유일한 상대인 엄마에게 친구 흉을 보기도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변덕스러운 감정을 조절하는 사춘기 중학생이 변함없이 잠자리 독서시간을 허락해줘서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20여분 소요되는 시간을 고등학생이 되어도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 심혈을 기울이는 매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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