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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은 Dec 16. 2022

한국의 어느 평범한 종갓집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엄마, 전을 왜 이렇게 만들어.

할아버지는 기름진 거 안 좋아하셔.

밀가루 반죽 옷을 입은 납닥납닥한 흰 동태포가 김 나는 찜기 위 면포에 간조름하게 올려져 있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기름 들어간 음식을 안 드셨단다. 엄마는 뵌 적 없는 시아버지의 입맛에 맞춰 전을 찜기에 찐다. 조상의 식성까지 고려해서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종갓집 외며느리다. 엄마와 친척분은 시골집 부엌에서 몇 소쿠리씩 전과 생선을 찌며 부산했다.


밤 12까지 기다렸다가 제사 지내는 것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내려오는 눈꺼풀에 못 이겨 잠이 들 때가 많았다. 잠들다가 웅성웅성 어른들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방문을 열고  빼꼼히 내다본다. 아빠의 축문 읽는 소리가 들리고 향냄새, 마당에 한복을 입고 두건을 쓴 남자 어른들이 서 계신다.


할아버지 혼령이 병풍 뒤에서 나오시려나.

제사상에 있는 음식을 골고루 먹으실까.

엄마가 기름 없는 전을 만들었는데 고맙다고 하실까.

먹는다면 과연 얼마나 많이 잡수실까.


호기심에 눈을 비비고 절하는 틈을 타서 방문을 열고 나오면 엄마는 행여 찬 밤공기에 내 잠이 말끔히 달아날까 놀라며 손짓언어를 보냈다. 검지 손가락을 다문 입술에 대고 난 후 들어가라는 손짓을 한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기에. 제사 지낸 다음날 아침은 등교하기 전 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30분 일찍 일어나서 동네 다섯 가구의 친척집 대문을 두드리며 "아침에 제사 음복하러 오시래요."  심부름을 수행하고 나서야 등교를 할 수 있었다.

장보기, 음식 만들기, 12시에 제사 지내기, 다음날 음복으로 동네 친척들 아침을 해결하기까지가 한 차례의 제사가 마무리되는 과정이다. 거기에 나의 심부름까지도.




3대 독자 종갓집의 한 해는 제사 여섯 번, 명절 차례 두 번, 산소에 가서 제를 지내는 묘사 한 번이 기본적인 행사였다. 일 년 내 내 기름 냄새 생선 냄새 떡 찌는 냄새가 가득했다. 매번 지내는 제사지만  지낼 때마다 누구의 제사인지 엄마한테 물어본다. 그러면 엄마는 흰 스케치북을 꺼내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를 기준으로 해서 엄마, 아빠, 아빠의 엄마, 아빠의 아빠, 아빠의 아빠의 아빠.... 이렇게 가계도를 그려서 촌수와 관계를 설명해주셨다. 그렇게 윗 대 윗 대까지 올라가면 시조와 몇 대손 무슨 파까지 다다른다.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본 적 없는 그분들이 나와 연결되어있는 게 신기하고 왠지 모를 자긍심이 생겼다. 동시에 남성 중심의 제사와 족보에 모호한 반감이 쌓여갔다.


죽은 사람이 우리 집을 어떻게 알고 찾아오냐.

이사를 가면 우리 집을 찾을 수 있냐.

제사를 안 지내면 어떤 큰일이 일어나냐.

꼭 이런 방식으로 지내야 하냐.


음식 상을 차리고 실체 없는 누군가를 향해 절을 하는 것이 이상했고 어른들은 귀신의 존재를 믿는지 궁금했다.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아빠는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고 타박을 했다. 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 조상님 은덕으로 잘살고 있고 자손으로서  마땅한 도리라고 하셨다. 유교정신으로 무장된,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게 천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명쾌하지 않은 아빠의 답변과 비효율적인 행사의 결과는 엄마의 고생이었기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점철되었다. 타고난 운명을 거스를 수 없고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빠. 숨 막히는 답답함에서 내가 여자라는 게 다행인 순간이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유아기부터 고등시절까지 봐왔던 무의식에 각인된 제사라는 것을 정의해 보자면 이랬다.남성중심적임에 대한 반감과 제사 안지내는 사람을 골라서 결혼하면 복잡한 이 행사는 안해도 되는 여자인게 다행인 양가적 생각을 만들게 하는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모두 결혼을 했다. 종갓집엔 아빠 혼자 덩그러니 남아계셨다. 세월은 수십 년이 흘렀고 상황은 바뀌었지만 아빠의 쇠심줄 같은 천명은 그대로였다. 아무도 없는 친정집에 친척분의 손을 빌어서 한결같이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주인공 심시선은 살아생전 제사를 지내는 것을 반대해왔고 자녀들은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서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자녀들은 10주기를 기념해 엄마가 생전에 머물렀던 하와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특별한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하와이는 심시선이 숨 쉬고 먹고 자고 작품 활동을 하고 사랑을 했던 곳이다. "10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p83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작가>

아빠가 이 책을 본다면 무슨 말을 하실지 궁금했다.

제사도 안 지내는 망할 가문이네. 조상없이 태어난 사람이 어딨나 배은망덕하게. 두고 봐라 곧 자식들한테 해가 돌아올 끼다.

당치도 않게 꾸며낸 이야기라고 성을 내시며 작가와 등장인물에 대해 몇날며칠을 사골 우리듯이 말씀하시겠지.


시아버지의 제사를 모시지 않은지 벌써 10년째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숙은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는 결정을 하셨다. 시어머니는 큰아들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이셨다. 시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면 우리 가족은 공원묘원에 간다. 거기서 시아버지를 추모하고 애도한다. 아빠 말대로라면 남편 형제들은 탈이 나도 단단히 탈이 나야 하지만 모두 무탈하게 잘 살고 계신다.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아빠는 모든 제사와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하셨다. 단 엄마 제사는 우리 형제끼리 의논해서 결정을 하라신다.


엄마 기일이 다가오는 일요일.  엄마의 부재로 우울함에 빠져서 눈물을 흘린날, 존재조차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바쁜 날, 숱한 날이 흘렀다. 기일이 다가올수록 부재의 무게가 선명해진다. 예전에 포도를 심었던 밭 산소에  모인다. 감사하고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추억을 이야기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추모한다. 다 같은 자식인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엄마와의 추억과 그리워하는 크기는 제각각임을 알 수가 있었다. 난 조금은 마른눈이지만 동생은 여전히 눈물이 그렁한 눈이다.

형식에 어떤 구애가 없다. 그 날은 엄마 자식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이 방식으로 엄마 기일을 보낸 것이 3번째다. 자식들은 이 방법을 지속할지 우리 삶의 방식에 맞게 의견을 내고 계속 조율할것이다.


이렇게 바꾼 우리 결정이 어떤지 아빠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무슨 연유로 심경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왔는지 몸 어디가 편찮으신지, 친척 분은 아빠가 이상하다며  확인해보라고 하셨다. 확인하지 않았다. 어떠한 무엇도 궁금하지 않다. 타인을 향한 시선을 당신에게 돌렸을지도.



사진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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