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정혜신
“장인어른 닮았네”
남편은 그냥 하는 말이지만 내겐 싸우자고 시비를 거는 소리였다. 자식이 누굴 닮겠냐마는 아빠 닮았다는 말은 죽기보다 싫었다. 체면을 중시하셨기에 평생을 본연의 모습은 집에 두고 다니셨다. 가족을 제외한 세상 사람들에게 한없이 예의 바르고 친절한 사람, 사람 좋다고 소문난 사람이었다. 종갓집 2대 독자. 유교 사상이 살 속까지 배인, 소통이란 단어의 존재는 없는 사람. 첫째가 아들이기를 고대했지만 바람일 뿐이었다. 내가 태어났으니. 딸 셋을 더 낳고 마지막 고대하던 아들 3대 독자가 태어났다. 눈에 띄는 사랑의 표현과 물질적 크기는 남동생에게 몰아졌다. 무수한 차별에 딸들은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했지만 묵살당했다. 약자가 뭉치면 힘이 생긴다고. 언제부터인지 우리 딸 넷은 고요하게 뭉쳐서 아빠와 대립했고 소통의 부재에서 갈등을 겪으며 성인이 되었다. 아빠가 외로운 노인으로 가는 첫 단추였다.
아빠가 오셨다.
"어디니, 너희 집 곧 도착 예정이다."
예고 없이 항상 이런 식이다. 일방적인 대화를 하는 여전히 소통에 문제 있는 부녀 사이다. 1시간 40분 운전하고 와서 못 만나고 돌아가면 내 마음은 불편한데 아빠는 어떨지. 저녁 먹고 하룻밤 주무시고 가신단다.
타인의 가족 문화에서 익숙함을 느낀 날이었다.
남자 친구(남편) 집에 초대받은 날이다. 떨린 순간 보게 된 사람은 아빠처럼 소통의 부재를 겪고 있는 그 집 가장(시아버지)이었다. 보고 자랐기에 대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지독히 가부장적인 모습과 외로움이 안타까워 보였다. 유일한 소통 창구는 사위와 며느리뿐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 집은 자식들이 의견을 무시당하는 경험이 많았기에 아빠와 대화의 시작은 ‘아니요’로 시작해서 의견 충돌이 생긴다. 남편의 집은 순종적인 분위기라서 ‘네’라고 시작해서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시아버지와 대화 상대가, 남편은 아빠와 대화 상대가 되었다. 집마다 이야기가 고픈 외로운 노인이 있다는 게 웃픈 일이긴 하다.
가족 간에 공감이 힘든 이유는 서로에게 받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서로를 깊이 수용하고 공감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신이 옳다/ 정혜신 작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간, 모든 인간관계에서 불평불만인 것은‘내가 원하는 만큼의 상대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못 받았다.’라고 생각되는 것에서 일어난다. <법륜스님의 법문 중> 결핍된 마음은 형상 없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양육하면서 결핍된 마음은 불안으로 다가왔고 아이에게 불안이 전달될까 또 불안했다. 책과 법문을 통해 불평하는 마음의 원인을 깨닫게 되었다. 주고 말고는 아빠의 마음이고 받은 것에 감사할 것을.
나와는 다른 존재, 특이한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아빠를 정의하고 나서야 만나는 것이 조금은 편해졌다. 정년퇴직하고 공무원연금으로 충분히 살 수 있지만, 여전히 일거리를 찾아서 일하신다. 잘 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안타깝게도 놀 줄 모르신다. 자식들 생일은 모르지만, 역사, 정치, 경제, 시사, 상식에 놀랄 정도로 해박하다. 필사, 신문 읽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는 지식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몇 시간을 들어야 하는 상대의 괴로움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려고 우리 집에 오시는 거겠지.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지금 삶의 이야기가 고프지만 참는다. 언제쯤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부녀 사이가 될까.
오늘 밤은 남편이 곤욕을 치러야겠다. 괜찮다. 딸기와 커피, 주전자 한가득 둥굴레차도 끓여뒀다.
이튿날 아침.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갈 채비를 하신다. 까만 비닐봉지에 싸 온 전국 지도책을 펼치고 몇 번 국도로 갈지 길을 익히셨다. 힘들 때 도움받았던 사람을 평생 잊지 않고 해마다 보은 하는 사람. 사람 좋다고 소문나서인지 주변에서 챙겨주는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그것을 각 지역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에게 퍼다 나르기 바쁜 사람. 현관에 한가득 먹거리를 부려놓고 가셨다. 손녀에게 용돈을 쥐여주며
"책장에 국어사전, 영어사전은 있던데 한자 사전이 없더라. 전자 책보다 종이책을 가까이 두도록 해라.” 말을 남기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