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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Oct 17. 2023

 들려주고 싶은 어떤 이야기


아이를 보면 부모가 보인다든가. 부모를 보면 자식이 보인다든가.  나는 이런 식의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여러 성향을  닮은 나유전적 요인으로  물려받은 어떤 부분에 대해 작게라도 감사한 면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의 무척이나 가부장적인 통제. 거칠 것 없이 다혈질적인 성격이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우리 가족 에게선 크고 작은  문제를 자주 일으켰기에.

나는 혹여라도 태생부터 아버지를 많이 닮은 내가 그와 같은 어른으로 자라는 건 아닐까. 아버지와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므로. 결혼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남몰래 다짐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내게는 그런 것들이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나는 나름 모범 학생이었다. 아침잠 많고 게으른 탓에 , 모범이란 말 우습게 개근상을 한 번도 타지 못했던 학생이기는 했지만. 예의 하나만큼은  발랐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언제부터였을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입이 걸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말이 거리낌 없고 험한 부모 아래 자라났지만, 내입에서는 투박한 강원도 사투리를 남발해 쓸지언정. 거친 말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사나운 행동이 무척 창피했기에. 절대 그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더욱 예의 바른생활을 하는 학생이 되기 위해 습관처럼 애를 썼을 테고.


그래서 부모를 보면 자식이 보인다는 식의 말이 듣기에 거북하고, 좀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건 스스로 나의 부모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내가 발버둥 치며 나름 애써온 삶이 어쩐지 부정당하는 것 같은 기분 때문이랄까.


 열세 살. 열 살 두 명의 아들을 기르고 있다. 열 살 승이는 성미가 부드럽고 순한 편. 어리지만 지켜야 할 것들과 해야 할 일을 어렵지 않게 해 나간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부터  선생님들 유순하다는 야기와 미담이 끊이질 않는 아이. 학교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음, 보통 모범생이라고 해둘 만한 아들 승이.


어느 저녁.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간식으로  찐 옥수수를 먹 중. 강아지 행복이에게 옥수수 몇 알을 나눠주겠다는 승이에게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말이  새어 나왔다. 그건 짧았고 뭉개졌으며 , 나지막했지만.  승이의 오물거리는  작은 입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나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얏. 아이 씨*." 승이도 제말에 놀랐는지

뒤이어 재빨리 이야기한다. "엄마. 행복이가 옥수수 먹으려다가 내 손끝을 깨물었어."

남편과 나는 거친 말을 하지 않기에. 더군다나 예의 바르고 온순한 성미의 열 살. 어린 승이가 그런 언어를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떠 올려본 적 없다.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외로 어쩐지  놀라울 만큼 담담한 내 모습에 스스로 낯설기까지 했다. 공감을 잘하 배려 깊고 부드러운 성미의 승이. 그런 아이가 혹시나 내 말에 수치심을 느낄까 봐. 나는 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엄마는 다 들은 거 같아. 나쁜 말을 알 수도 있지만 ,  그걸 입 밖으로 굳이 꺼내지 않는 게 좋겠지. 넌 잘할 거라 생각해.


 하나 고루한 나는 침대에 누운 밤. 수많은 생각을 했다. 차라리 내가 거친 말을  쓰고 나서 그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일이고  형편없는 일인가를 몸소 보여주면 어떨까. 고작 이렇게나 가치 없고 생뚱맞은 생각 이래저래 쓸데없이 하다 아침을 맞고야 말았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는데. 뜬금없이 팥이 나진 않을 거라며. 게다 부모를 보면 자식이 보인다는데. 내가 그토록 진절머리 나게 듣기 싫었던 그 말까지.  이제는  어처구니 없지만 제법 진심으로 떠올려본다.


이런 내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주 해준 말이 있다.

너는 여자아이지만, 가 어른이 된 세상에서는 여자가 뭐든 할 수 있어. 대통령도 될 수 있을 테지. 아버지는 가 되고 싶은 건 뭐든 될 거라고 믿는다.


미처 몰랐지만 , 돌이켜보니 나는 아무래도 무엇보다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믿음과 지지 덕에 건강 나름의 어른으로 성장했던 닌가 싶다.

그렇다면 내 아들에게도. 나는 때로 얄궂게 솟아날 잡초 따위는 간간히 솎아내주며 믿어주고 지켜봐 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 저마다 다르겠지만. 적당히 다정한 햇볕과 물. 그리고 알맞은 영양이 함께 한다면. 그것이 예상치 못한 세찬바람에 흔들릴지라도 어쨌거나 결국엔  단단하게 자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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