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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Jul 17. 2023

나는 모를 노부부 이야기


얼마 전, 미화 씨(엄마)의 생일 맞아 꽤나 오랜만에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이른 오후시간이었음에도 그날따라 그녀 곁엔 응열 씨(아버지)도 함께였다. 정년퇴직 후 강원도 정선으로 귀농 하였으나, 어쩐지 그는  젊은 시절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듯하다.이를 두고 미화 씨는 젊었을 때 덜 했던 일을 나이 들어 할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하고 있는 거식으로 핏대를 세이야기하곤 한다. 그녀의 말을 조금 옮겨 보자면 아주 똥줄 빠지게 일을 한다고 했던가,


 나로선  미화 씨의  가만 듣고 마냥 맞장구 쳐줄 수 없노릇. 딸의 입장으 들을수록  꽤나 껄끄럽고 어쩐지 그녀가  밉살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응열 씨는  올해로 칠십하고도 한 살. 적지 않은 연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미화 씨는 응열 씨를 떠올리며 어느 날엔.

 "영혜야. 아버지 오메가 3 , 주문해 봐라."

"아버지 먹이게 아르기닌 영양제 좀 사봐라."

"같이 마시게 검은콩두유 좀 사라."

"아버지랑 먹을라니까. 글루타티온을 주문해 줘라"

"어디 어디에 좋다는데, 대마종자유를 찾아봐라."

"아무래도 구기자가루를 사야겠다."

"아버지 먹게 땅콩하고 호박씨 좀 주문해 줘."

"나이 들어그런가. 아버지 뼈가 자꾸 약해지는 거 같아. 유청단백질을 찾아서 주문해라." 이 정도에서 그녀의 애타는 주문사항을   더는 기억해 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녀의 생일을 맞아 축하를 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영혜야. 엄마도 이젠 칠십이 다되어가잖아."미화씨가 이야기했다. 그때 곁에 있던 응열 씨는 때를 놓칠세라 거들기 시작했다. 핸드폰너머로 전해지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대강 이랬다.


참나. 무슨 칠십이 다되어가느냐. 육십조 금 넘었으면서. 웃기고 있네.


무슨 소리야? 내가 나이가 줄어 그렇지 육십 다섯이야. 이거 왜 이러셔.


호적에 올라간 나이가  진짜 나이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기가 막히네. 흥.


아. 씨끄러워. 내가 태어난 년도가 그때인데. 뭔 소리를 자꾸 하는 거야. 됐어. 그만해. 듣기 싫어.


하. 참나. 원.


내 생일이니까 나가서 치킨이랑 흑맥주 좀 사가지고 와.


시킬 거면 아까 진작 사 오라고 말하지.

아. 됐어.


사 오라면 사 와. 생일이라고.


.

.

.


미화 씨의 말에 따르면.

첫째였던 그.  태어나 몸이 많이 아팠다는 터. 혹시나 하여 출생신고를 미루다 어느 날엔 그녀 아버지가 약주를 많, 깜빡 잊으기도 했으며. 어느 날엔 동네 노름판에 휩쓸려 아차 하시기도 했단다. 그러다 아니나 다를까 이듬해, 미화 씨 둘째 여동생이 태어나는 바람에 . 더 미룰 수  두 아이를 함께 같은 년도에 신고 했단다.

물론 이는 미화 씨도 그녀의 어머니께 전해 들은 이야기며.

사실을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을테다. 몹시 안타깝게도 그녀의 아버지이자 나의 할아버지께선 무려 삼십이 년 전 지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쨌든 , 두부부의 싸움장면은 눈물날정도로 많이 본 게 사실이다.

정말 눈물이 나게. 오금이 저리도록. 내 작았던 뼈마디마디 새겨지도록. 심장이 아파서 소리 낼 수 없을 정도로.

가슴속에서 쿵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을 정도로 말이다.


한데 세상에 , 설마 하니 부부의 나이가 칠십이 다되도록. 게다 나의 나이가 사십하나가 되어,  핸드폰 너머  듣게 될 줄이야. 맙소사, 어째서 인지 모르겠으나 이젠 피식하고 웃음이 날지경에 이르렀다.


"엄마. 내가 애들 여름 방학 때 내려가면 치킨 사줄게. 오늘 즐겁게 보내"  더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서둘러 인사를 하고 끊으려는 찰나.


"응. 알았어. 치킨이랑 흑맥주도 사줘. 두 캔. 알았지?"  마치 옥구슬이 굴러가는듯한 목소리로 미화씨는 재빨리 이야기한다.

그럼 나는 그녀의 말에 별수 없이 낄낄 웃으며  대답한다.

"알았어. 엄마. 두 캔 말고 여섯 캔 사줄게. 걱정 마셔."


그날 미화 씨와 응열 씨 부부는  바삭한 치킨을 먹었을는지 내내 궁금하다.

이 글을 발행하면 , 틀림없이 둘 중 누구는 내게 연락을 할 테지.


그들은 내 글을 무척 진지하게. 때론 나보다 신나서.  열렬히 구독하는 애독자 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구독취소를 이따금   사이좋게 번씩  누르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치 큰일이라도 난듯. 너의 글을  못 읽게 되었다. 뭘 눌렀더니 구독이 어디로 날아가 버렸다는 차마 웃지 못할 이야기를 때도 있지만  말이다.


 내가 모르는 긴 이야기를 간직하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노부부의 이야기를. 그들 못지않게 나 또한 진지하고 열렬응원한다.

부부가 나왔 숱한 밤, 앞으로 지나게 될 다가올 어떠한 밤들. 조금 더 안온하길.  그토록 누구보다 바라는 나의 밤이 이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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