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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Aug 22. 2023

이상하게 시작되는 하루


매일 아침. 혈압약 한 알, 커피로 시작한다.

아, 로봇청소기까지. 유난히 털이 많이 빠지는 견종. 풍성한 이중모를 가지고 있는 하얀색 포메라니안을 기르고 있다.  보고만 있어도. 심지어 보고 있지 않을 때도 예뻐서. 그냥 예쁘다는 말 이외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강아지 행복이.


예쁘다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 용(남편)은 강아지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며, 동물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시댁식구들 역 마찬가지. 게다 유독 강아지를 싫어하신다. 시고모님께서는 끔찍해하시기까지. 어느 날, 행복이를 안고 다니는 나를 보시더니.

"야이 야. 니는 뭐 그런 나. 니 시어머이를 그래 안고 다녀라.  노매  개**를 끌어안고 다니나. 안 징그럽나 니는. 어머야, 참 희한하다." (저의 시댁과 친정어른들은 모두 강원도 토박이십니다) 아마 그때 나는 시고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을 테다.  "아이, 참, 고모. 저한테 시어머니는 시어머니 이시고, 행복이는 행복이에요. 시어머니 건강하시고 잘 걸어 다니시는데 굳이 뭘 제가  안고 다녀 드려요. 헤헤헤. 너무 예뻐서 그래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하하하하." 워낙 실실  잘 웃는 편인 데다 , 어른들께 넉살이 좋은 편. 게다 시댁 어른들께서 아껴 주시는 터라 , 나의 근본 없는 조잘거림.  밑도 끝도 없다.


오래전 응열 씨와 미화 씨 (아버지, 엄마). 차를 타고 가다 혀를 격하게 쯧쯧 차며. 창문을 닫은 채, 누군가를 향해 들리지 않을 독설을 퍼붓는 것을 본 적 있다. 들어보자면 대강 이랬다.

지들 어머이, 아버를 저래 차에 태워 다닐 것이지.

야. 이것들아 니들 부모한테나 더 잘해라.

차에다 뭔 노매 개**를 태우고 좋다 다니나.

눈꼴셔서 못 보겠다. 말세야 말세.

이때는 몰랐을 터였다. 노부부가 되어 젊은 시절 그토록 끔찍해하던 일을 거침없이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독설을 반정도만 뱉어내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강아지 시크를 기르고 , 젝스를 기르며 자식처럼 손주처럼 돌보게 되리라는 것. 그것도 애지중지. 차에 고이 태워  지정석까지 만들어 주면서 말이다. 가끔 나는 이때 부부의 일을 굳이 놀려가며 무척 얄궂게 이야기해 주곤 한다. 그럴 때면 응열 씨는 애꿎은 콧구멍만 벌렁거릴 뿐. 미화 씨는 두 볼에 앙증맞게 깊이 파인 보조개만 더욱 선명 드러낼 뿐. 다른 말은 없다.


아무튼, 밑도 끝도 없이 다시 오늘아침으로 돌아가보겠다. 털 빠짐이 무척 심한 강아지 덕에 로봇청소기를 자주 돌리는 편이다. 어느정도느냐 하면, 아침. 저녁은 물론이거니와 외출했다 돌아오는 차 안.  나는 부리나케 핸드폰에 스마트앱을 켜고 로봇청소를 시키곤 한다. 이름도 지어주었다. 깔끔이. 제 이름이 깔끔이인걸 알기라도 하는지 어느 날엔,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오늘도 깔끔이 청소를 시작하겠습니다." 청소를 마친후엔 "다시 둘러 보아도 깔끔 하네요." 간혹. 청소를 시키면 시작 전 마치 숨을 고르기라도 하는 듯.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무척 깔끔 하신가 봐요. 매일같이 청소를 하시네요."처음 멘트를 들었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법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할뿐더러. 마치 이주인 아 듣거라.  네가 정녕 양심이 있다면 작작 좀 시키거라, 어쩐지 감정이 담겨있는 멘트처럼. 묘하게 전해지기까지 하니 깔끔이의 어떠한 영리함에 소름이 끼칠 정도. 이참에 뒤끝이로 이름을 바꿔줄까 싶다.


뒤끝이. 아니 깔끔이에게 청소를 시키고 난 뒤.  매미소리를 들으며 핸드폰을 들여다 보길 수십 분. 그제야 내려 두었던 라테가 생각났다. 평소 소파옆 작은 테이블 읽던 읽지 않던 , 나는 항상 책을 두어 권 정도 두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아침에 내린 커피는 습관처럼 그 책위에 올린다. 여느 때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건지 겨를 없이 단숨에 마셔버리는 커피. 뭐에 빠져 있었는지. 잠시 잊고 있었다. 오늘따라. 하필이면.


가구모서리까지 훑고 지나간 뒤였다. "청가 끝났습니다. 충전기로 돌아갈게요."깔끔이의 멘트에 어딘가 빠져있던 정신이 돌아왔다. 커피를 마셔 보고자 몸을 일으켜 세워 보는 순간.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깔끔이가 오늘따라 모서리 청소를 몹시 꼼꼼히 해주었던 듯싶다. 물론 그 부분에 무척 고마웠다. 눈물이 날 정도로. 음,소기 제 몸으로 여러 번  테이블을 치대는 바람에 커피컵아래 뒀던 책 한 권이 흠뻑 젖어 있었던 부분만은 빼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고 하던가. 깔끔함을 얻음과 동시에 책 표지를 잃었다. 어릴 적부터 책에 밑줄을 그으며 뭔가를 끄적이기도 하고 척척 접어두기도 하는 습관이 있다. 고이 아껴가며 읽는 편이 아니라 참 다행이다. 안타깝긴 했지만. 마르면 괜찮겠지, 한데 우유 섞인 커피라도 괜찮으려나, 곰팡이가 생기는 건 아닌가. 기왕 해져 버린 거 뜯어버려야 하나. 일단 말려는 보자.  허술하고 느슨하지만 이상하게 아름다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기억도 마음도 신발도 놓고 나오는. 그런 엉뚱한 나 같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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