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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Aug 17. 2023

보는 것과 듣는 것

시력이 나빠지면서 텔레비전을 보는 게 재미없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잘 안 보여서!' 라마나 예능을 한참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대사나 대화가 없는 장면이 연출이 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해도가 떨어지면서 흥미를 잃기 쉬웠다. 흥미를 잃으니 잘 안 보게 되고 또 잘 안 보니까 별로 보고 싶은 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드라마 속의 연기자는 물론이고 무대 위의 가수들, 개그맨, 아나운서등 모든 방송인의 모습은 내게 10년 전 모 머물러있다.



휴대폰에 시, 청각을 보조해 주는 접근성기능이 있다면 텔레비전에는 화면해설과 자막을 지원해 주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우리 집 텔레비전은 화면해설기능을 꺼둔 상태이다. 왜냐면 아직 나에게도 화면해설은 익숙하지 거니와 가족과 함께 보는 텔레비전이다 보니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 덕에 더 텔레비전을 멀리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에는 텔레비전으로 주로 뉴스를 본다. 아니, 듣는다.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지만 읽어주는 멘트만으로도 기사의 내용을 이해하기는 충분하다. 텔레비전은 이제 나에게 라디오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어느 정도 형체를 인식하고 가끔은 잘 보일 때도 있지만 여전히 무의식 중에 화면을 보지 않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밥을 할 때도 그렇다. 쌀을 씻고 밥솥에 넣어주고 나면 취사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요즘 밥솥은 터치이다 보니 손의 감각만으로는 맞추기가 어렵다. 다행히도 아직은 불빛이 들어온 버튼이 보인다. 더군다나 음성지원이 되는 밥솥이라 어렵지 않게 버튼을 누르고 밥을 한다. 물론 보기만 했다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 아닐까 싶다. 내가 누른 버튼을 음성으로 알려주니 안심이다.



에어컨을 켤 때에도 '운전'버튼을 누르면 18도에 맞춰진다. 그대로 두면 얼어 죽을 것을 알기에 얼른 온도 버튼을 눌러서 온도를 맞춰줘야 한다. 나는 삑삑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26도에 맞춰둔다. 이것 또한 소리 없이 숫자만 오르고 내렸다면 확인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생활 속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들은 나에게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잘 보이지 않는 만큼 모든 것을 소리에 점점 더 의존하는 듯하다. 가끔은 보지 않고 들은 것들을 보았다고 착각할 때도 있다. 뉴스의 기사도 그렇고 아이들이 이야기해 주는 것들, 내가 듣고 생각한 것들을 머릿속에 그리다 보면 그걸 본 것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어쩌면 꼭 보지 않아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내가 이제 보는 것보단 듣는 게 훨씬 편해서 일수도 있겠지..?



그런데 봐도 모르겠고 들어도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내가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알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어떻게든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꼭 봐야 하고 들어야 하고,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뭐든 적당히 즐기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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