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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뚜리 Mar 22. 2024

주은이 아빠와의 추억

행복함에  가득웃는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주은이 아빠였다.

침대에서 자는 주은이의 모습을 반기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매달 왔던 것 같은데 새 일자리 때문인지 이번엔 한참만에 보게 된 것 갔다.

얼마쯤 지나자 주은이도 잠에서 깨고 우린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서로 이야기 하였다.

우선 병원부터 가고, 점심 먹으러 가고, 커피 마시러 가기로 했다.

그래서 먼저 우린 가까운  정형외과부터 갔다.

나는 목과 어깨, 허리,발목 치료를 받았고 주은이 아빠는 양 손을 치료 받았다.

주은이도 허리 치료를 받아 온 가족 건강의 소중함을 배운다.

치료 마치고 예전에도 갔었던 유포리 막국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편육도 먹고 막국수도 오랜만에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또한 잘 보이지 않는 나를 위해 내 접시에 주은이 아빠는 고기도 놓아주고 내가 걸을땐 늘 주은이가 약속이나 한것처럼 도와준 바람에 편안한 외출이 된 하루 였다.


그런데 갑자기 내게 전화가 왔다.

친정 아빠였다.


"어디니? 밖이야...?"

"네. 다리 치료하러 왔어요."

"그래. 도우미가 제데로 데리고 다녀야 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다쳤으니 너무나 속상해."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는 이미 끊어졌다.

그렇긴 하지 혼자 넘어진건 절대 아니니까? 그치만 어쩌겠는가? 이미 다 지나간 일인걸...

먼저  도우미 샘과도 좋은 일로 헤어졌을 때를 다시 생각하니

다 부질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그냥 쓴다.

그 아픔이 나만 그러진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코스인 커피숍.

퍼민트, 주은이와 아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화내용은 아빠의 군대 이야기.

아빠 혼자서 열심히 이야기 해준다.

가만, 예전에도 이건 들었던 이야기 아닌가? 주은이도 나도 이미 눈치 챈것 같은데

그래도 끝까지 들어주는 주은이가 내겐  대견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주은이 아빠 주위는 잘사시고 안정적으로 사시는 분이 많지.

군인하다 연금받아서 사는 부부도 있고

심지어 바로 위 형은 제일은행 은행장이였지. 

나는 매번 형제든 누구든 잘 사는 것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느낀다.

왜냐면 그만큼 힘들땐 다 등 돌렸고 난처해 했으니까?

주은아빠 이야길 한참 듣는동안 나는 그냥 속상했다.


집에 돌아오고 장 봤던 것 풀어놓고 정리 하는데

삐꼼씨 때문에 그만 혼자 웃는다.

예전엔 잘먹던 영양제였는데 현재 복용하는 약의 종류가 늘어나면서 잊고 살았다.

주은이 아빠도 그렇게 라도 일하며 자존심 내리고 자리 잡으려 하니 대단하네.

그래도 좀 그렇게 번다고 이것저것 사주려고 하니 말이지...!


세월이 무섭다. 주은이가 어느덧 23살이고 우리가 친정 부모님과 살다가 독립해 나와 산 지도 어느덧 15년이다.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잘 참아온 세월. 무엇보다 가장 많이 변한건 주은이 아빠 아닐까?

돈 때문에 가난 때문에 그렇지...

뭐 예전엔 그래도 나 자상한 애 아빠였다.

많이 속상할 땐 오롯이 누나만 바라보는 누나 보이.

지금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변한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오랜 세월 시집 식구들은 기억에 남는 분이 전혀 없다.

내가 아는 건 이름을 기억하는 거지 얼굴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친정엄마없이 긴 세월에 주은이 아빠인 오롯이 동생만 바라보던 울 큰 시누.

조카들도 어느덧 커서 결혼해 딸 낳고 잘 사는가 보다.

사돈이 목사님이니 좀 불편하진 않을까?...

그래도 귀동냥으로 시집식구 소식을 듣는다. 인연이란 건 분명 있구나 애 아빠를 보면서 느낀다.


춘천과 구미, 그땐 가는 데만 7시간 걸리던 때.

그래도 뭐가 그리 좋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어 혼자 웃음이 나온다.

멀다는 이유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아버님이 많이 반대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단식투쟁하는 아들을 보고 시아범님은 어찌 반대만 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덕에 결혼도 아무 탈없이

능했던 일 아닌가 싶다.

단지라 탄하게 잘 살지 못했던 게 가장 아쉽지만 말이지.

그래도 난 나의 최선은 다했던 것 같다.

간암이셨던 아범님 공경하며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함께해 드렸으니 말이지.

후회는 없다.

또한 주은이 아빠가 자신의 병으로 힘들어 할때 쉽게 도와줬던 이유는

그래도 주은이 한테는 하나밖에 없는 아빠고, 

명의 도 바꿔주고, 무엇보다 주은이와 지낼수 있게 해준 ,

그게 가장 고마운 것 같다.

당연한 거지만 당연한걸 당연하게 받아주지 않는 사람도 세상엔 많으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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