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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뚜리 Mar 15. 2024

친정집 가던 날

아빠의 불만이 느껴진다.

토요일 저녁 주은이는 말했다.


"엄마. 저녁에 오랜만에 라면 끓여 먹지 않을래?"

""그것도 나쁘진 않지.'


주은이 가 라면 끓이는 사이 난 상을 차리며

김치를 가져오려고 김치 냉장고에 다가갔다.

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만져보니 불쾌감과 미끈거림에 난 놀랬다 .

주은이가 그걸 보니 곰팡이 가 폈다는 거였다.

생각해 보니 최근 많이 이상했다.

김치냉장고가 차갑다 느껴지지 않았다.

도우미 샘이 작년 10월에 김치냉장고 자리를 옮기자 했고

아무생각 없이 따랐다.

그때 부터다.

김치가 유난히 빨리 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왜 그런지 눈치 채지 못할 때, 주은이가 원인을 찾았다.

코드만 꽂혀 있는거지, 작동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

그래서 김치가 모두 망가진 거였다.

주은이가 작동을 눌러 김치 냉장고는 돌아가지만

왠지 도우미 샘의 무책임이 보이는듯 싶어 속상했다.


그래도 교회에 다녀오고 우린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때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집에 올수 있니?"

"무슨일 있어요?"

"아냐, 놀러가고 싶어서..."

"알았어요."


주은이와 난 친정집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랜 만이다.

한달 만이던가, 도우미 샘과 교회에 같이 다녀오는 길에

난 그만 넘어지는 바람에 인대 손상이 되어 한달을 친정집에 오지 못했다.

봄내콜 교통사고 후 7개월 만에 다시 겪는 아픔.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기 싫어 오질 못했던 거다.

반가움도 잠시 아빠가 흘리신 말씀 한마디가 짠했던 하루.

그냥 흘려 보내는 그 말씀에는 왠지 현재의 삶속 작은 고백처럼 느껴졌다.

아빠가 엄마에게 시던 혼잣말


"이거 먼저 보내고 내가 따라 가야지."


순간 먹먹한 그리움이 내 마음 가득 깊숙히 파고드는 기분 같았다.

그러고 보니 먼 세월 아빠는 한결 같았다.

치매인 엄마와 지내며 지칠 법도 한데,

끝까지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케어 하고 있다.

그래도 한편으론 부러운 부분도 있다.

비록 아빠는 암이고 엄마는 치매라도, 한평생을 늘 같이 하셨고 젊어선 엄마가 고집 쎈 남편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젠 끝까지 보호받는 입장이니 말이지. 어찌됐예뻐보이는 노부부의 모습이다.

그것이 내 어릴적 꿈이기도 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주은이와 내가 친정엄마를 케어 하는 동안 친정아빠는 한숨 돌리기 위해 친구 만나러 가셨다

엄마는 오늘따라 자꾸 어딘가 나가려 하신다.

아빠가 시지 않는 집이 불안했던  아닐까?

아기가 되어 버린 그런 엄마를 바라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주은이와 다시 집에 돌아올  편했다.

그냥 걱정 하실까봐 쉬쉬하며 친정집에 오질 못했는데

어찌됐든 부모님 다 뵙고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참 따스하다.

집에 돌아와 쉬면서 기도를 해본다.

엄마,아빠 사시는 그날까지 너무 고통스럽지 않고

힘들지 않고 건강하게 사실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이지.


다음날 아침,

늘 그랬듯이 주은이와 정형외과 병원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보호대를, 그리고 휠체어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가득 찰 때 마음속에 간절한 기도가 흐르고 있었다.


'하나님 휠체어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그런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신 걸까?

한 달 만에 정말로 휠체어 와 보호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꿈만 같았다.

그리고 너무 행복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나는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저녁 5시쯤 아빠가 전화하셨다.

이 시간이면 이미 주무실 시간인데 무슨 일일까 걱정이 되었다.

아빠가 말씀하셨다.


"나 어제 한숨도 못잤어 속상해서..."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막내 오빠가 이혼하고 싶은가 봐.

언니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더라,

왜 하필 지냐고 하면서 말이지. 어떡하면 좋지?"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될 거예요.

아빠는 엄마 때문에 이미 힘들잖아요.

오빠는 알아서  잘 할 거에요.

너무 신경 많이 쓰면 아빠도 우울증 생겨요.

그러니까 먼저 아빠를 생각해야 해요. 알았죠?"

"음. 그러도록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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