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괜찮다니까요.
어린 시절때 잔소리가 그립다.
아마 딸이 궁금하셨나 보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은 다리가 좀 어떠니?"
"네.괜찮아요. "
"다리를 다치지 않았다면 벌써 몇번이고 집에 왔을건데..."
"좀더 있음 나아지겠지 뭐"
그러고 보니 한번 사고난 후로 약해진 발목이 조금만 넘어져도 큰 티를 내는듯 하다.
그 바람에 친정집도 한달째 못가고 있네..
보고싶다, 엄마 아빠.
발이 다 나으면 제일먼저 가야지.
아마도 건강 하셨다면 내가 가기도 전에
막내딸 보러 먼저 오셨을텐데...
긴 세월이 무정하다.
평생 인삼밭을 하시던 부모님
일꾼들을 데리고 다니며 일하셨는데
그덕에 어려서 실컷 먹게된게 바로 인삼 이었지.
간식처럼 먹고, 배고파서 먹고! 그냥 늘 먹었던거 같아...
그래선지 제일 싫어진게 인삼 아닌가 싶다.
그렇게 부지런 하게 사시던 엄마 아빠 인데,
아직도 난 그때가 기억이 난다.
남은 간식인 빵과 우유는 늘 내 차지였고 그덕에 지겨울만큼 먹었지.
그러고 보니 어려서부터 난 아쉬운건 별로 없었던것 같아.
그 시절에 자가용으로 매일 등교했으니 말이지.
아빠는 인삼밭 감독.
사장님은 서울에 따로 계셨는데, 늘 우리집에서 보내셨지.
자주 그래선지 그 아저씨들이 학교에 매일 데려다 준거였는데 반 친구들은 그만 오해 했다.
이유는 반 친구중 부잣집 딸 용돈이 매달 7,000 원 이었고
그 시절에 바이올린을 배웠지.
난 그때 용돈이 10,000원 이었고 말이지.
그러니 용돈도 모자라거나 하진 않았던것 같아.
어느날 한 친구가 내게 다가와 조심히 물었다.
"너희 집, 부자지?"
"아니."
"근데 왜 매일 자가용 타고 기사아저씨랑 같이 와?"
"그거야 아저씨가 태워주니 그렇지'
"거봐... 양은 집에 몇 마리야? 소가 몇마리야?"
"그건 잘 모르겠고, 소가 5마리야. 그치만 부자는 아닌것 같아."
그랬다. 그 시절은 동네에 전화기, 티비 모두 흔하지 않던 때.
우리집엔 있었다.
그바람에 귀찮을 만큼 동네 사람들은 늘 가득 우리 집안을 차지하고 않아 있었다.
그때가 외국꺼지만, '말괄량이삐삐' 가 티비에 나와 재미있게 보았다.
엄마는 늘 인삼을 갈아서
우유와함께 만든 음료를 가족들에게 해주셨다.
인삼이 쓰다보니 안 먹겠다고 하면
꿀도 넣어 주셔서 잘 먹었다.
아빠는 인삼밭도, 동네 이장님도 10년이나 하셨다.
내가 15살 정도 되던 때에 우리나라 88 올림픽을 했었는데,
아빠는 그 흥분을 참지 못하셔서 칼라 티비를 사오셨다.
칼라 티비가 우리 동네서 우리집만 있다보니
마루 앞에 온동네 분들 신발로 가득 이었다.
나는 잘 모르지만 오빠들과 아빠는 응원 하느라 난리셨다.
나는 늘 순정 만화는 빌려다가 보았는데, 그것도 편히 볼수는 없었다.
엄마한테 걸리면 책이 다 버려지니 말이지.
한 번 걸렸을 때, 눈도 안좋은데 책을 본다고
다 뺏기고 혼나고 난리가 아니었다.
공부해라 잔소리는 없었지만,
책 보지마라 그 잔소리는 끝이 없었다.
걱정 하시는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참 불편했다.
그 시절에 자신의 방에서 과외 하는 친구가 있었다.
난 그런 친구가 너무나 부러웠다.
방이 있는 게 말이지.
그래서 내 방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떼쓴적도 있었다.
그러자 아빠는 윗방을 이쁘게 꾸며 주셨다.
소박 하지만 작은 나의 방이 생긴 것에 너무도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