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매년 여름 더위가 올 적마다
작년에도 그랬던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만큼 힘들게 느껴진다는 것일 거다.
긴 방학 동안 딸 주은이와 많은 활동을 하면서
경험도 얻고, 그것으로 인해 나만의 줄거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게 참 이상하기도 하지?
우리가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온 뒤로는
항상 집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다 보니
여행길이 살짝 두렵기도 했다.
이번엔 괜찮겠지 하며 2년 만에 다시 찾게 된 속초.
덕분에 좋은 추억이 되었건만 아픈 소식이 더 크게 들려온다.
엄마, 아빠는 자식들한테 의지하기보다
두 분만 서로 의지하며 살고 계셨다.
긴 세월에 엄마는 치매, 아빠는 혈액암 진단을 받으셨다.
14년 동안 아빠는 자신의 몸도 버거운데
늘 엄마를 한결같이 케어하며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름이라 더 그러실까,
아빠는 그만 2주에 한 번씩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딸인 나와 손녀 주은이가
같이 케어를 해야만 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 잘 들여다보지 않던 오빠들도
우리 집을 찾아오는 횟수가 늘어났다.
나중엔 엄마를 모시는 게 오빠들 속에서도
나와 주은이라는 걸 당연시 여기게 되자
나는 서서히 지쳐 왔고, 답답한 마음을
브런치에 글로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하면 그나마 마음이 풀렸었는데
뭐든 한계를 느낀 걸까?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면서
내겐 불안약을 자주 먹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지친 내 모습을 요양사 선생님도, 센터장님도 아신 걸까?
요양원에 엄마를 모시자고 오빠들을 설득하시는 듯 싶었고,
결국 아빠도 고집 부리다 받아들이게 되었다.
엄마가 요양원 입소하던 날,
오빠들은 직장 다닌다는 이유로 한 명도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결국 센터장님이 모든 절차와 서류를 대신 준비해 주셨고,
나와 주은이가 엄마 짐을 들어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하늘도 그 슬픔을 아는지 비가 많이도 내린다.
결국 입소 시킨 후 점심식사하시는 모습과
방을 구경하고 돌아오는데
눈물이 멈추질 못했다.
집으로 데려다주시던 센터장님도 속상하셨을까?
차 안에서도 계속해서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점심을 같이 먹자는 센터장님 말씀에 셋이서 옹심이를 먹었다.
모든 일 처리를 잘해 주신 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나는 여름 방학 동안 난생 처음 매거진을 만들었고
엄마, 아빠의 평생 모습을 꾸준히 담아보았다.
어쩜 고령화 시대에 공감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이 들던 동시에
글을 쓰기 시작하길 너무도 잘했다 느껴지기도 한다.
매거진 "치매라도 영감을 사랑해요"
많이 사랑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