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오래 타게 되면서 나는 애가 되었다. 조금만 덜컹 대도 그만 울어버리고, 불안해하고, 어디 그뿐인가 휠체어를 타지 않게 되었을 때도 어느 날 장애인콜을 탔을 때
의자가 그만 덜컹대는 바람에 한바탕 울어버렸다. 나도 왜 그래야 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결국, 장애인 콜 기사가 오히려 더 놀라서 콜을 불렀을 때 그 차로 잡히게 되면 그때 그 차량인데 그래도 타겠냐고 오죽해 돼 물어보곤 했었다. 사고가 한번 나고 두 번 나니 나 스스로도 너무나 버거웠나 보다.
그때 주은이는 내가 많이 힘들어할 적마다 습관적으로 가던 곳이 있었다. 그건 바로 집 근처에 있는 카페였다. 그런데 나는 무언가 상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고, 노래나 소리책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내 주위에 누군가 사람이 많은 것이 설사 나랑 아무 상관없어도 그냥 좋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카페 단골손님이 되어 버렸고 그걸 지켜보던 사장님도 계단 옆에 이쁜 경사로를 만들어주셨다. 나는 너무 기뻤다. 누군가에게 대접받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게 내겐 좋았다. 그뿐 아니라 그 경사로로 인해 휠체어를 타시는 분들이 쉽게 카페에 오게 되었고, 유모차를 끄는 아기 엄마도 쉽게 카페를 올 수 있었다.
나는 어려서도 내 표현이 작았던 것 같다. 무언가 남을 더 의식했던 어린 시절 아마도 장애라는 것이 더 그렇게 만든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남의 이야기 듣는 것은 너무나 좋아했던 것 같다. 그 버릇이 성인이 돼서도 여전한 것 같다. 그래서 카페 가는 시간이 되면 늘 아이와 습관처럼 갔었다.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 내게 크게 들리던 목소리가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가 들은 이야기를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쓴다면 그것도 글이 될까 하는 호기심에 이여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여러 댓글은 보며 한 가지의 영상도 다양한 표현이 된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 그걸 알고 난 호기심이 더 생겼다. 카페에서 집으로 오고 나면 나는 한소네 에 나만에 글을 적고 적었다. 그렇게 시작된 글들이 내겐 큰 힘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글에 푹 빠지고부터는 나의 이상한 행동이었던 울보가 그치게 되었고 더 이상 장애인 콜을 탔을 때 무서워하는 모습은 스스로 없어졌다.
가끔 그렇게 변한 나의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아니 다행이다 싶다. 오히려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쓰지 하며 호기심마저 생기는 나를 발견하는 것 같다.
글을 잘 써서가 문제가 아니라 글을 씀으로 마음 치료가 되었던 건 아닌가 싶은 마음이 생긴다.
지원사 선생님이 퇴근하시면
나는 주은이 와 함께 카페를 가서 차를 마시며 장애인 콜은 불러 정형외과를 갔다.
두 다리로 이젠 걸을 수 있어 좋지만 두발은 아직도 세상을 헤매는 길이고 오히려 '족막염'이라는 판정마저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