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가 올렸다.
아침부터 친구가 연락했다.
그래서 전화해 보니 만나자고 한다.
나는 준비하고 시간 맞춰서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갔다.
친구들은 이미 여러 명이 와 있었다.
20살 성인이 된 우리는
벌써 각각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취직한 친구도 있었고,
대학을 가는 친구도 있었고,
남자친구를 사귀어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과
같이 영화도 보고
커피숍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그렇게 즐겁게 지내다가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방통대 다니지 않을래?
내가 다니고 있는 중인데 가정학과야.
너 뭐든지 배우는 거 좋아하잖아.
같이 다닌다고 하면 그 교재 내가 다 줄게"
아무 말 없이 그 친구 말만 듣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만에 나는 말을 했다.
"그래 생각해 볼게."
집에 오는 내내 나는 생각에 잠겼다.
왜냐하면 학교 졸업하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 같다.
직장을 다닌다는 것도 어려운 일 이고
나는 앞으로 무얼 해야 될까?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그렇게 지낼 수 있을까?
갑자기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난 우연히 알게 되었다.
복지라는 걸 말이지.
그때부터다
나도 차라리 시각장애인 등록 해볼까?
가능할까?
안 보이는 게 아닌데.
그래서 자세히 알아보고
결국 나는 병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장애 진단을 받았다.
나의 시대는 장애 진단과 판정의 모든 과정을
의료보험공단 없이 병원에서 했었다.
그리고 그 서류를 가져가
동사무소에 내면 가능했었다.
단지라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돈이 많이 들었다.
그때 20만원이면 작은 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덕에 장애 3급 판정을 받았고
동사무소에서 사진이 붙여져 있는
파란 수첩을 내게 건네 주셨다.
확인해보니 선천적 시각장애인데도
후천적 시각장애인으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 후로 어떻게 아신 건지
장애인 학교에서 나를 찾아왔다.
처음 보는 남성 두분과
그리고 검정색 봉고차가
나를 데리러 왔었다.
순간 무서웠다.
공포와 의심에 겁을 먹게 되었다.
가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그러자 한 남성은
"학교 가서 배우는 것도 괜찮아요."
라고 그 학교를 권했다.
결국 따라가게 되었고.
커다란 운동장 앞에는 큰 건물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그 두 남자분이 선생님이셨다는 것을.
그 선생님은 학교 아이들을 소개해 주고
건너편에 있는 숙소를 보여주었다.
모두 남자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마저도 남자분이었다.
한 아이가 나를 보고 말했다.
"참 이쁘다"
시선 집중이 되어버렸다.
스무 살에 다시 학교생활을 할 뻔했는데,
학교에 남성밖에 없는 것이 어색했고
부끄럽고 창피해 결국 포기해버렸다.
자꾸만 고민되기도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나는 늘 집에서만 보냈었다.
엄마의 잔잔한 일을 같이하고
운동도 같이하고 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내게 말했다.
"미애야 막내 오빠 가게에
밥 챙겨주러 매일 가는 거 어때?"
"네"
그때서부터 나는
매일 버스를 타고, 가방을 메고
오빠 가게로 출퇴근을 했다.
엄마 말대로 오빠의 잔잔한 일을 도와주고
식사를 도와주고
빨래하는 걸 도와줬다.
가게가 비어 있으면
가게도 봐주고 그랬는데
그런 내 모습이 일 년이 되고
삼 년이 되고
그러다 보니 오빠도 미안했는지
월급보다는 적금을
내 앞으로 들어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어느 날이었다,
직원이 내게 다가와
"퇴근할 때 바래다 줄게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다지 망설임 없이
"네"
하고 대답했다.
오토바이 타고 집에 갈 때,
거의 다 와 가서
나는 사고가 나고 말았다.
차와 오토바이가 부딪혀서
나는 튕겨 나가 논으로 떨어졌다.
오래도록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병원에서도, 사람들 입에서도
내가 죽었다며 소문 나 있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볼 수 있는 건 천장이었고
간호사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때 괜찮아요? 괜찮은가요?
오늘이 며칠인지 아나요?"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보는 간호사 언니
그때 알았다,
나는 응급실에 와 있고
한달 만에 기적처럼 깨어났다는 사실을.
그런 나는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6 인실 병실이었다.
수도 없이 퇴원하는 사람들을
그냥 쳐다봐야만 했었던 한 달, 지루함과 괴로움이 함께 했었다.
아프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내가 왜 이래야 하나 원망까지 했었다.
어린아이가 된 듯 시도 때도 없이 울어야 했다.
엄마가 잠시 떨어져 있으면 더 불안했었다.
친구들이 병문안 오고
가족들이 병문안 오자
그제야 나도
'빨리 걸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구나'
라며 마음먹을 수 있었다.
내 앞에 침대에
새로 입원하시는 여자분이 있었다.
알고 보니 특수학교 선생님이셨다.
무엇 때문에 입원하신 건진 몰라도
일주일만에 그분은 퇴원할 수 있었는데
그 선생님 남편은 내게 다가와
자신이 읽고 있었던 월간지를 주며
"선물이야
이거 다 읽었을 때쯤이면
아마도 퇴원할 수 있을 거야.
책 좋아한다고 했지?
그럼 이거 매일매일 있는 거야."
라고 하셨고
그분들은 병실을 빠져나갔다.
긴 병원 생활 속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있어서 행복하다.
선생님 말씀대로
나는 매일매일 책을 읽었고
또 매일매일 화장실에 스스로 가기 위해
걷는 연습을 했었다.
꿈이 이루어졌다.
힘들었지만 나 스스로 화장실을 다녀왔다.
엄마의 도움 없이 나 스스로.
그걸 지켜보던
담당 의사 선생님은 너무나 좋아하셨고
"이젠 좀 있으면 정말 퇴원할수 있겠네요"
라고 하셨다.
마음이 기쁘다.
내게도 퇴원의 희망이 있다는 것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