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워킹맘의 사립초 선택에 대해
2022년 11월 21일. 올해도 어김없이 사립초 추첨일이 돌아왔고 4년 전이 생각났다. 4년 전, 이맘때쯤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 때까지도 아이를 사립초에 보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사립초는 무릇 치마바람이 센, 영유를 나오고 악기 한 두 개쯤은 너끈히 해내는, 돈 많고 경쟁과 사교육에 진심인 집들이 보내는 학교가 아니던가?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아이가 회사 어린이집을 다닌다는 핑계로, (회사 어린이 집은 같이 출퇴근을 할 수 있으며 저녁까지 먹여주는 워킹맘으로서 거부하기 힘든 장점이 있다.) 영유를 보내려니 등, 하원 도우미에 돌봄 공백까지 산 넘어 산이라는 이유로 그저 아이가 7살이 되도록 회사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던 나였다. (물론 어린이 집이지만 7살 누리과정을 운영하는 정식 교육기관이긴 하다.)
직장인들은 알 것이다. 10월, 11월이 지나면 한 해가 다 지난 느낌이 드는 것을. ‘손 잡고 출, 퇴근할 날도 얼마 안 남았네, 내년에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겠구나'로 시작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당장 등, 하교와 아이 돌봄이 걱정됐다. 나의 출근 시간은 8시 30분. 공립초등학교 등교시간은 9시. 등교시키고 출근하면 매일 지각이거나 팀장님께 양해를 구해 출근 시간을 조정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다 싫었다. 퇴근 시간은 5시 30분이지만 매일 칼퇴는 장담할 수 없다. 출근이 늦어지면 그만큼 퇴근도 늦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회사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서 아이의 등, 하원 편의를 위해 회사 코앞으로 이사해 직주근접 조건에 있던 나는 등, 하교에 남편 도움을 바랄 수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나도 남편 회사 어린이집 보내며 아이 없이 지하철 출퇴근을 하고 싶었다. 정말이었다. 그런데 등, 하교도 내가 해야 하다니. 억울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지만 어쩌겠나.) 1학년 하교시간은 12시 즈음. 점심은 누가 챙기나, 학원 스케줄을 어떻게 짜야하지, 학원을 몇 개를 보내야 하는 거야. 하원 도우미를 써야 하나. 5년 동안 회사 어린이집을 보내며 하지 않던 걱정들이 무겁게 나를 덮쳐왔다. 그제야 학원 스케줄 짜기, 하원 도우미 구하기 등등을 알아봤지만 모두 다 나의 컨트롤 영역 밖이었다. 원하는 대로 돌봄이나 방과 후를 보내는 것도, 방과후 스케줄에 따라 매일 달라지는 하교시간에 딱 맞춘 학원을 찾는 것도. 하원 도우미 구하기는 어디 쉬운가. 아이가 태어나 7살이 되도록 집안일해주는 사람조차 써 본 적이 없다. (물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나를 닮아 극 I 성향이며 낯을 심하게 가리는 아이에게 이제는 초등학생이니 처음 보는 아주머니와 하교 이후를 같이 보내야 한다고 말하기 싫었다. 1학년 아이에게 오후 내내 학원 뺑뺑이 돌다 저녁에 집에 오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제야 사립초등학교가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떠올랐다.
사립초를 보내야겠다.
이 마음을 먹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빠른 등교 시간과 늦은 하교시간. 이것만큼 큰 장점이 없었다. 우리 동네로 셔틀을 운행하는 학교로 후보를 추리고 등, 하교 셔틀 시간과 출퇴근 시간을 비교했다. 물론 나의 퇴근시간 이후에 하교하는 초등학교는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대한 빨리 가고 최대한 늦게 오는 학교, 그것이 나의 학교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사립초는 돈이 든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인 교육비에 방과후 비용, 셔틀비용 등을 합치면 대략 월에 100만 원 안팎 정도 되는 듯했다. (지금은 좀 더 올랐을 테고, 학교마다 차이는 있다.) 아이가 공립초를 다닐 경우, 학원비에 하원 도우미를 고용할 경우 드는 비용까지 셈해보니 내 기준에서는 사립초 비용이 더 가치 있겠다 싶었다. 안전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검증받은 선생님들과 프로그램 안에서 최대한의 시간을 보내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내가 사립초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였다. 사립초를 보내겠다 마음먹었지만, 영유도 다니지 않고 악기도 할 줄 모르는 소심한 우리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염려도 되었다. 그래서 사립초 중에서도 치열한 경쟁보다는 기본에 충실하고 인성 교육에 엄격한 학교를 골랐다. 소위 말하는 엄마들의 치맛바람보다는 학교의 뚝심이 강한 학교가 중요했다.
그렇게 학교를 골랐고, 남편은 사립초를 보내자는 나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육아와 아이 교육에 나 만큼 관여하지 않는 본인이 보내지 말자 해도 결국은 내 뜻대로 했을걸 예상했으려나. 아무튼 그렇게 나는 한 학교에 소신지원하였고 드디어 추첨 날이 되었다. 물론 아이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가고 싶은지, 멀어도 엄마가 골라놓은 학교에 가고 싶은지. 아이에게 사립과 공립의 차이를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으나 나름의 어휘력을 동원해 설명했다. 이후에 들었지만 어린이집에서 아이들끼리 사립은 돈 내고 다니는 좋은 학교라는 얘기를 자기들끼리 이미 했다더라. (돈 내고 다니는 학교라서 지원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아이들끼리 벌써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이 좀 슬프기도 했다.) 아이는 태어나 기관에 다닌 내도록 거의 엄마의 회사 어린이집에 다녔기에 소위 말하는 ‘동네 친구’의 개념이 없었다. 회사 어린이집인 까닭에 멀리서 아이를 데리고 등, 하원하는 집도, 나처럼 회사 근처로 집을 옮겨 다니는 집도 있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만난 친구는 집이 우리 동네일 수도, 당연히 아닐 수도 있는 거였다. 그래서 아이도 당연스레 멀리, 아는 친구가 없는 학교를 선택하는데 두려움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D-day.
오후 휴가를 내고 아이 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 (4년 전에는 코로나 이전이라 오프라인 추첨이었고 아이가 같이 가야 추첨 결과가 유효한 시스템이었다.) 나는 국민학교로 입학하여 초등학교로 졸업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도 30여 년이 지났으니, 강산이 변해도 3번은 변했다. 처음 본 사립초 교실은 깨끗하고 따뜻해 보였다. 처음 가본 학교 교실이 생경하려나 걱정도 되었고, 학교가 마음에 들었는데 추첨에 떨어지면 어쩌지 라는 걱정도 컸지만 거기까지는 나의 영역이 아니리라 생각했다. 결론적으로는 운이 좋게도 추첨에서 내 아이의 번호가 호명되었고 순간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아이의 학교는 인성과 배려, 존중을 중시하는 학교로 교장선생님께서 당첨이 되어도 좋은 티 너무 내지 마셔라, 떨어지는 아이들이 더 많으니 그에 대한 배려를 해주시면 좋겠다는 자상한 훈화 말씀이 있으셨다.) 그렇게 아이는 나의 어설픈 기대와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립초를 가게 되었다.
어느덧 4년이 지나, 우리 아이는 사립초 4학년이다.
1학년, 유아인지 어린이인지 모를 말 그대로 귀여운 초딩 1학년. 그때의 담임 선생님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뛰어나 봤자 얼마나 뛰어날 것이며, 잘해봤자 얼마나 잘할 것인가? 하지만 1학기 첫 면담 때, 선생님께서는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보다 더 아이의 온갖 장점을 기억해내며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셨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아이들의 성향을 존중하며 바르게 클 수 있게 교육자의 역할을 해주시는 선생님을 보며, 사립초 보내길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보물 같은 선생님의 가르침 속에서 아이는 초등학교에 아주 잘 적응했다.
2학년, 코로나 발생. 전에 없던 바이러스가 퍼졌다. 누구나 그랬듯 코로나가 이렇게 오래 지속될지도, 우리 삶에 이렇게 영향을 미칠 지도 예상할 수 없었던 때였다. 당시 13년생 아이들은 입학식도 못했고, 공립초 아이들은 EBS로 수업을 대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도 G20 강대국이며 IT 강국이라고 그렇게 자부하던 대한민국이 바이러스 하나에 공교육까지 속수무책 무너질 줄이야. 아이의 학교도 처음 며칠 동안은 우왕좌왕하였지만, 이내 온라인 수업 시스템을 갖추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던 수업 그대로를 온라인 시스템을 활용하여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대처와 연계된 학습 지원 시스템의 차이로 최근 사립초 경쟁률이 급등했으리라.
4학년, 고학년을 준비하는 시기. 아이는 고전을 읽고 자기의 생각을 8절 원고지 몇 장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채우게 되었다. (물론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 없이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게 어디인가.) 각 과목의 숙제들도 단순하지 않아 자료 찾기, 내용 정리, 자료를 만들어 발표 수업을 하기까지. 화려하진 않지만 내실 있는 수업을 받으며 한 뼘씩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보인다. 이걸로 난 만족이다.
4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운이 좋았지만 사립초를 보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등교시간 손 잡고 걸으며 오늘 하루 잘 지내라는 얘기를 건넬 수 있어서. 낯선 이모님이 아닌 좋아하는 선생님과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오후 시간이 있어서, 학교 안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커나갈 수 있어서. 우리 학교는 참 좋은 학교라는 너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어서. 그리고 그런 너의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학교의 시스템과 교사진들의 사랑과 진심에서 비롯되었음을 나 스스로 느낄 수 있어서. 그래서 난 집도 없지만 사립초를 보낸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추첨으로, 중복 추첨으로 바뀌고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사립초 카페가 시끄럽다. 부디 정말 간절히 원하는 아이들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기를. 또한 낙첨되었다고 아이 앞에서 부모가 먼저 실망의 눈빛을 내보이지 않기를. 이제 시작하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축복해 줄 수 있기를. 아이들은 항상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늘 잘 해내고 있음을 부모님들이 잊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