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으로 떨어진 기력을 파스타로 회복하기
오랜만에 정장 바지를 꺼내 입었다. 정장 바지에 어울리는 셔츠를 꺼내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다듬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여러 번 확인하고 준비된 몇 마디를 소리 내어 말해봤다. 거울 속의 내가 영 낯설다. 회사를 그만두고 벌써 7개월이 지났다. 전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9개월 정도를 일했으니 나에게 면접의 기억은 1년도 더 된 일이다. 면접용 차림의 자신이 낯설 만도 하다. 면접시간까지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몸과 마음이 서서히 긴장되기 시작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붙을지 떨어질지 알 수 없다. 관심 없는 분야의 회사이긴 했지만 언젠가 봐야 할 면접을 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나름의 준비를 했다. 처음으로 나를 소개하는 PPT 파일을 만들고 소개용 PT 발표를 준비했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었다. 반응이 좋으면 좋은 대로,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대로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될 테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로서는 엄청난 용기를 낸 일이었다.
면접을 보러 가면서도 소개용 PT 멘트를 계속 읊었다. 걸어가면서 입 밖으로도 뱉어보고, 지하철 안에서 마음속으로도 외워보며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면접장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떨리지는 않았다. 소개용 PT도 잘 발표했고, 질문에 생각하는 대로 답변도 잘했다. 소개 중간에 면접관이 넘어가라고 한 부분에서는 조금 당황한 것만 빼면 괜찮았다. 하지만 어쩐지 합격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제조업에서의 내 경력과 IT 스타트업에서 원하는 경력은 많이 다른 것 같았다.
그동안의 방식과는 다르게 스스로의 면접을 주도했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면접장을 나섰다. 면접은 기력 소모가 큰 일이다. 특히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크다. 1시간도 되지 않는 면접에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인지 무척 허기가 졌다. 밖에서 사 먹을 수도 있겠지만 요리를 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위한 요리가 아닌, 나를 대접하는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샐러드 레시피를 응용해서 샐러드 파스타를 만들었다. 푸실리 면에 소금을 넣어 삶고 만가닥 버섯과 양파에 발사믹 식초를 넣고 볶았다. 방울토마토는 반으로 썰고 로메인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 주었다. 간장과 올리브유, 다진 마늘, 식초, 매실청을 넣고 오리엔탈 소스처럼 만든 후, 모든 재료를 넣고 무치듯 섞었다. 대충 재료만 정해놓고 손이 가는 대로 만들어서 맛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접시에 담고 보니 보기에는 좋았다.
한입 먹어보니 맛이 제법 괜찮았다. 간도 적당하고 들어간 재료들의 조합도 적당했다. 나를 위해 꽤 괜찮은 한 끼를 대접하는 느낌이 들어 천천히 음미하며 밥을 먹었다. 오후 2시쯤에 때늦은 점심을 먹는 나를 발견하고 엄마가 다가왔다. 슬쩍 나를 곁눈질하는 엄마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 면접이 어땠는지 묻고 싶은 것일 테다.
"면접은 어땠어?"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질문에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생각한 대로 잘 말했고 제 소개도 잘했어요. 이번에는 제 소개를 PT로 해봤는데 생각보다 제가 말을 잘하더라고요. 내 대답을 들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가 내심 신경 쓰였다. 회사에 다니게 된다면 지금처럼 엄마를 보살피기는 어렵다는 것을 엄마도 나도 알고 있다. 엄마를 위해 요리를 하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고 매일 밤 엄마의 발을 주물러주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다. 돈이 많았으면 이런 걱정 안 했겠지. 내가 능력이 좋아서 프리랜서로 일해도 돈을 잘 벌었으면 이런 걱정 안 했을 텐데. 꼬리를 문 생각이 또 자책으로 이어지고 만다.
마음속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생각을 묻어버렸다. 지금은 밥에 집중하자. 기껏 맛있는 밥을 만들어 나를 대접하고 있는데 걱정 때문에 이 시간을 망쳐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파스타를 양볼 가득 넣으며 TV를 켰다. 그리고 자주 보는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했다. 재미있는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는 시간을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