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초 May 06. 2023

흐린 날엔 상큼한 음식을 먹고 싶다.

흐린 날에 먹는 지중해식 샐러드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섭다. 요즘 들어 그것을 마음 깊이 느낀다. 예전에는 일에 익숙해지고 나를 둘러싼 환경과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내 삶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익숙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일을 겪으며 익숙해진다는 것이 반드시 안정적인 생활과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도 계속되다 보면 익숙해진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불안 속에 신기하게도 길들여져 버리는 것이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익숙해지는 스스로가 놀라우면서도 무섭다.


 최근 엄마는 몸이 좋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온몸이 떨리며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오한이 들이닥쳤다. 태풍을 맞은 나뭇가지처럼 쉴 새 없이 떨리는 엄마의 몸을 겨우 부축하여 침대에 눕혔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라고는 하지만 무척 따뜻해진 날씨가 무색하게 엄마는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전기장판을 켜고 겨울이불을 둘둘 말아주었지만 오한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고 나서야 엄마는 괜찮아졌다. 바로 다음날, 비슷한 시간에 또 같은 일을 겪고 나서 엄마는 아빠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급격한 면역력 저하로 인한 오한 증상이라고 했다. 다행히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은 다음, 같은 증상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금방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증상들도 아니다. 치료가 누적될수록 부작용도 누적되고 환자가 느끼는 고통도 누적이 된다. 제일 처음 엄마의 치료 부작용을 마주했을 때 나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엄마의 몸 상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었다. 괜찮은가 싶다가도 맥을 못 추기도 하고 기력이 돌아왔나 싶다가도 축 쳐졌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엄마의 변화에 익숙해져 갔다. 엄마가 오한으로 몸을 가누지 못했던 날에도 나는 덤덤했다. 빠르게 전기장판의 전원을 켜고 겨울옷과 겨울이불을 꺼내왔을 뿐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엄마는 익숙해지지 못하는 부작용의 고통과 몸의 변화에 나만 익숙해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괜찮은 걸까?

 

 흐린 날에 흐린 생각까지 더해져 기분이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 그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녁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몸을 움직여 뭐라도 만들고 싶었다. 요리를 하다 보면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다양한 색깔의 재료를 보고 만져보며 다듬고 조리를 하며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의 상념도 사라진다.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상큼한 샐러드를 만들기로 했다. 얼마 전 인스타에서 본 레시피인데 간단하게 지중해식 샐러드 느낌을 낼 수 있다고 해서 저장해 두었던 레시피였다.

 

 

 방울토마토와 오이를 잘 씻고 먹기 좋게 다듬었다. 그리고 간장과 올리브유, 식초, 매실청, 다진 마늘을 넣어 오리엔탈 소스를 만들었다. 다듬어놓은 오이와 방울토마토에 맛이 잘 스며들도록 뒤적여주고 접시에 담아냈다. 레시피는 정말 간단한데 맛이 아주 좋았다. 상큼한 오이와 새콤한 방울토마토가 잘 어울렸고 적당히 짭짤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오리엔탈 소스도 오이와 방울토마토에 잘 어울렸다. 흐리고 비가 오는 지금의 날씨와 우중충한 나의 마음을 상큼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맛이다. 


 엄마와 식탁에 나란히 앉아 샐러드를 나눠 먹었다. 치료를 시작하면서 상큼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좋아하게 된 엄마의 입맛에 잘 맞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엄마는 샐러드를 맛있게 먹었지만 몇 입 먹지 못하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남은 것을 반찬통에 담아두면 조금 있다가 더 먹겠다는 말을 뒤로하고 엄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오한 증상을 겪은 후로 입맛도 급격히 떨어진 탓에, 엄마는 종종 밥을 먹다가 말고 쉬겠다며 방으로 들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엄마의 몫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나의 몫으로 남겨진 샐러드를 말없이 삼켰다.


 언젠가 엄마는 나에게 외롭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냐고 대답했지만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내가 집에 있고 이제는 아빠도 신경을 써주는데 무엇이 외롭다는 걸까. 방으로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엄마가 말했던 '외롭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는 엄마와 함께 있어줄 수는 있지만 엄마의 고통을 알 수 없다. 매일 다르게 변하는 몸의 상태와 매일 다르게 나타나는 부작용 증상과 고통의 강도. 그것들이 얼마나 엄마를 괴롭게 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엄마는 수많은 고통을 느끼고 견디는 것이 외로웠던 것이다. 


 언젠가 내가 엄마의 고통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날이 올까?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창문을 바라보니 날은 여전히 흐렸고 마음은 다시 우중충해졌다. 샐러드를 입안 가득 떠 넣으며 맛을 느끼려고 애썼다. 샐러드는 여전히 상큼했다.

작가의 이전글 반가운 손님에게는 크림파스타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