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크림 파스타와 미나리 전
오랜만에 언니가 집으로 놀러 왔다. 애니메이션의 작화 그리는 일을 하는 언니는 직장인과 프리랜서 중간쯤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스케줄도 들쑥날쑥하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일찍 출근해서 야근을 하는 것도 모자라 주말까지 일을 하기도 한다.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만나는데 이번 달은 정말 바빴는지 연락도 거의 못하고 지냈다. 한 달을 넘게 야근에 시달리고 있다는 연락만 간신히 받았을 정도였다. 마지막 연락을 받고 며칠 뒤에 이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얼추 마무리에 들어갔다는 연락이 왔다. 평일에 휴가를 낼 것이니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라는 귀여운 명령과 함께.
오랜만에 언니가 집에 온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결혼 후 언니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았지만 여러 가지 일로 바쁜 탓에 자주 오지는 못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라고 언젠가 언니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배우자를 포함한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것이니 언니만의 또 다른 세상이 생기는 느낌이려나. 새로운 세상에서는 챙겨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말도 했다. 친정의 행사도 챙겨야 하고 시댁의 행사도 챙겨야 하고 동시에 언니의 가정과 회사의 일도 문제없이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때도 간혹 있다고 했다.
언니는 모든 것을 잘 해내고 있다.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큰 싸움도 없었고, 시댁으로 인해 힘들다거나 결혼 생활이 힘들어 눈물을 보이는 일도 없었다. 아마 남편 덕분도 있지 않을까? 연애 기간 10년과 결혼 생활 8년 동안 언니의 남편은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변함없이 언니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고. 그런 모습이 엄마에게도 보였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언니의 결혼을 반대했던 엄마였지만, 이제는 둘이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흐뭇하고 바라보고 있다. 엄마의 마음을 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언니가 결혼생활을 잘 해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지쳐있는 언니를 위해 무슨 요리를 해줄까 고민을 했다. 든든하면서도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이 없을까? 한참 고민을 하다가 얼마 전 서울혁신센터에서 배운 요리가 생각났다. 우유 크림 닭구이라는 요리로, 우유와 생크림을 섞어 만든 크림소스에 닭고기와 야채를 볶아서 만든 것이다. 괜찮을까 싶어 언니에게 물어보니 요즘 고기를 많이 먹어서 채소요리가 먹고 싶다고 했다. 닭 대신 버섯과 파스타를 넣어 버섯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크림소스도 파스타 면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엄마를 위한 요리로는 미나리 전을 만들기로 했다.
생각보다 재료 손질에 시간이 걸려서 완성이 늦어졌다. 미나리 전을 한참 부치고 있는데 언니가 도착하고 말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내 손을 보더니 언니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내가 대접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언니를 시키기가 미안했다. 표정만 보고도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언니가 전을 부치며 말했다.
"명절과 제사로 다져진 내 전 부치기 실력을 보여주지."
결국 미나리 전의 절반은 언니가 부치는 꼴이 되었다. 나는 전을 부칠 때 곧잘 태우고는 하는데, 언니는 적당히 노릇하게 잘 부쳤다. 명절과 제사로 다져진 실력이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다. 한 상 차려놓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만에 엄마와 언니와 나, 셋 만의 점심식사였다. 언니가 버섯 크림 파스타를 먹어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와, 이 자식 요리 많이 늘었네! 짜파게티 끓일 줄 몰라서 냄비 태워먹던 게 많이 컸어."
언제 적 이야기를 또 하는 건지. 내가 그 시절 졸업한 지가 언젠데! 나에게 변명을 할 틈도 주지 않고 엄마와 언니는 옛날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언니와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해서 엄마가 젊었을 때 고생을 한 이야기, 언니의 결혼을 반대했던 이야기, 언니의 결혼식 이야기까지. 몇 번이나 말해서 닳고 닳은 이야기인데도 매번 같은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진다. 참 신기한 일이다.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웃을 수 있다니.
언니가 결혼을 하기 전에는 나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것 같은데. 결혼 후에는 엄마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남편과 있었던 일, 시댁과의 일, 전세와 관련된 이야기. 엄마가 겪었던 것들을 언니도 겪으면서 공통의 화제가 많이 생긴 듯하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치는 엄마의 얼굴에 모처럼 생기가 돈다. 엄마의 경험을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언니를 위로해주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와 언니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한국 어머니가 그렇듯, 엄마는 바르고 강하게 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언니를 키웠지만 언니는 엄마의 마음을 버거워했다. 엄마가 세모였다면 언니는 동그라미였다. 엄마의 세모난 사랑은 언니의 동그란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냈고, 언니의 동그란 마음에는 틈이 없어 세모난 엄마의 사랑은 겉돌기만 했다. 그런 관계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엄마와 언니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언니에게는 결혼이, 엄마에게는 큰 병이 찾아온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 이제 엄마는 조금 둥그런 세모가 되었고, 언니는 조금 각진 동그라미가 되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아마 조금 더 비슷한 모양이 되어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