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달콤한 맛의 참외 샐러드를 먹으며
엄마의 날카로운 외침이 이어폰을 뚫고 들어왔다. 타자를 치느라 분주했던 손이 잠시 멈췄고, 노트북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도 방문을 향했다. 건강이 나빠진 이후로 엄마는 큰소리를 낼 때가 거의 없었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하고 있던 일을 멈추고 방문을 열었다. 엄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내 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자리에 앉아있던 엄마는 나의 기척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거실 창가 쪽을 바라보며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이게. 아니, 어쩌다가?”
목소리가 한층 격양되었다. 얼핏 듣기에 노여움마저 느껴지는 엄마의 목소리는 붉은빛을 띠고 있었지만 얼굴은 정반대로 파랗게 질려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의문스러운 마음을 품고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옆에 앉는 것과 동시에 타이밍 좋게도 엄마의 통화가 끝났다. 내가 옆에 앉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인지 엄마는 여전히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아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 뒤에 엄마는 말을 꺼냈다.
“작은 큰엄마가 돌아가셨데.”
작은 큰엄마.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름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작은 큰엄마는 친가 친척으로 아빠의 둘째 형의 부인이었다. 좀처럼 정이 붙지 않았던 친가 식구들 중에서 작은 큰엄마만큼은 가깝게 느꼈을 정도로 그나마 왕래가 있던 사이였다. 그러고 보니 2주 전쯤, 아빠와 통화를 하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부산 사투리가 진하게 묻어 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핸드폰을 뚫고 나에게까지 들렸다. 그 정도로 건강하고 쾌활한 목소리였다. 그랬던 분이 하루아침에 가버리다니.
“아침에 쿵 소리가 나서 봤더니 냉장고 앞에 쓰러져 있었다는 거야. 그대로 돌아가셨데.”
나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엄마의 시선은 창가에 못 박힌 채였다. 그래서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인지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딱히 무어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갑자기 떠나버린 작은 큰엄마와 혼자 남을 작은 큰아빠. 그리고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슬퍼할 그분들의 딸과 아들. 아주 이기적 이게도 그 모든 사람들보다 나는 엄마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중병을 앓는 환자가 된 엄마는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죽음을 상상했고, 자신의 죽음 뒤에 남겨질 아빠와 언니, 나의 모습을 함께 떠올렸다. 상상이 들불처럼 번져 엄마의 머릿속을 다 태워버리고 나면 엄마는 속이 좋지 않다며 방으로 들어가 누워있기 일쑤였다.
엄마는 미동도 없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상상의 불길이 번져가는 것이 틀림없다. 애매한 시간이지만 뭔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것으로 시선을 돌리기 위한 나름의 작전이기도 했다. 복잡한 생각이 들거나 기분을 전환하고 싶을 때면 색다른 요리를 찾게 된다. 엄마를 위해 요리를 시작하면서부터 생긴 일종의 버릇 같기도 하다.
냉장고를 뒤져보다가 참외를 발견했다. 이제 참외가 제철인 계절이기도 하니, 참외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저장해 둔 레시피를 뒤적이다가 참외 샐러드를 발견했다. 참외 씨를 따로 빼고 즙을 내서 올리브유, 식초, 매실청을 넣어 드레싱을 만들고 참외 과육과 잎채소를 섞어준다. 참외 씨를 먹지 못하는 엄마에게 딱 맞는 요리였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우기도 할 테고.
입맛이 없다고 할 줄 알았던 엄마는 다행히 참외 샐러드를 잘 먹었다. 부고 소식을 받은 후 멍하니 풀려 있던 눈동자도 또렷해진 것 같다. 말없이 먹기만 하던 엄마가 작은 큰엄마의 이야기를 꺼냈다. 형님과 동서지간이었던 작은 큰엄마와 엄마 사이에는 깊은 우물에 가득 찬 물처럼 셀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당장에 먹고살 돈은 없어도 비싼 옷을 사 입었다던 이야기와 아픈 엄마를 붙잡고 자신의 생활고를 하소연하던 것, 부모의 외면으로 친척집에 맡겨져 식모살이를 하며 고생했다던 것과 그 고생길은 시집을 와서도 이어졌다는 이야기들. 자라면서 수없이 들어왔던 이야기였지만 이번만큼은 잠자코 듣기로 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던 엄마가 거실 소파 위에 붙어있는 가족사진으로 눈길을 돌렸다. 친가 식구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아프기 전 엄마가 있고 어제 돌아가신 작은 큰엄마가 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동안 사진을 바라보던 엄마가 한숨 쉬듯 말했다.
“저 사진에서 내가 제일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입가에는 자조 섞인 웃음이 비뚜름하게 걸린 채였다. 무서운 농담이다. 엄마가 저런 농담을 던질 때면 심장이 발 끝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다고 말하면 엄마는 뭐라고 말할까? 어쩌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또 시작이구만.”
이제 그런 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나도 가벼운 농담으로 응수했다. 엄마는 눈가를 찡긋거리며 웃고 말았다. 돌아선 엄마의 뒤로 보이는 가족사진을 나도 잠시 바라봤다. 죽은 사람과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 죽음과 싸우고 있는 사람과 그 싸움을 함께 하는 사람. 사진 속에서는 모두가 활짝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