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하고 욕실을 나오기 전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온 말이다. 이 작은 소리라도 뱉어내니 가슴까지 차올랐던 무거운 공기가 그나마 살짝 새어나가 듯가벼워진다.
경직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 만만치가 않구나..
"경직된 인간은 불쌍해.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거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동훈이 직장 후배들과 소주를 기울이며 하는 대사다.
경직된 인간, 살아온 세월.
어떤 고된 삶을 살아야경직된 모습에 대한 납득이 되는 것인가?
완전히 이해되지는 못한 저 대사가 마음인지 기분인지 그 언저리어디쯤에붙어서 한 번씩 생각이 나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등짝이 서늘해지는 찰나의 순간으로 알아버렸다.
경직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은 그냥 '나'라는 것을.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내보이기 위한 어떤 준비나 의식 없이 일상에서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매일 아침 두 아이를 깨워 조촐한 아침을 먹인다. 손재주는 없지만 세월의 힘으로 이기고 있는 기술을 발휘하여 아이들의 머리를 묶어 올려주고 학교에 들여보내면, 그 순간은 살짝 날아갈 수도 있을 듯한 가벼움을 느끼며 출근길에 나선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사무실에 올라가기 전, 1층 커피숍에 들러 달달한 바닐라 라테 한잔을 주문한다. 다른 사무실 직원들이 각자 저마다의 차를 주문하는 틈에 여유롭게 서서 내 모닝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커피숍사장님은 작은 주문창을 통해 주문을 받는 동시에 창 앞에 가지런히 담겨 있는 수많은 쿠폰카드에서 손님의 얼굴 확인 한번 후 이름을 찾아 쿠폰도장을 찍고 다시 그 수많은 카드틈 사이제자리에 바로 넣으신다.
'이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어떻게 다 기억하시고 저 수백 장의 쿠폰카드에서 저렇게나 빨리 찾아내실 수 있을까?' 하는 감탄과 함께,
'주문을 받을 수 있는 창하나만을 가지고 있는 좌석 없는 커피숍이지만 사장님이 자리를 참 잘 잡으셨네, 이 건물에서 수익에 대한 걱정이 제일 없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커피를 받아 들고 사무실에 들어가 그럴싸한 모습으로 그럴싸한 자리에 앉아 일을 하다가 문득 남편과 통화할 일이 생각 나 사무실 밖 복도로 나갔다.
어젯밤 늦게까지 회식을 하고 들어온 남편은 오늘 휴가를 냈으니 분명 아직도 침대에 늘어져 있을 것이다.
그 속 터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시 숨을 고르고 통화를 시작하였으나 술기운에 절여져 있는 목소리를 들으니 또다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마치 세상 온갖 죄를 다 저지른 사람인 양 남편을 향해 날카롭고 거친 말들을 쏟아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순간 마치 몸에 차갑다 못해 따가운 물을 쏟아부은 듯한 서늘함이 느껴졌다.
소름 끼치도록 부끄러운 느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화장실을 가는 코너에도 누군가가 서있진 않았다(듣는 이가 있었을까 무서운 마음에 기웃거리며 확인하는 내 모습이 참 우습기는 했지만).
인정머리라고도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차갑고 가시 같은 나의 말투를 누구라도 들었을까 그 서늘함이 훑고 가는 찰나, 날카로운 얼음조각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온몸에 한기가 들었다.
경직된 인간으로서 서 있는 내가 너무 추웠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 번씩 나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사랑받는 것을 참으로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고, 좋은 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쓸데없는 깐깐함만 내세우며 그것마저도 경계하고 밀어내는 옹졸한 모습. 사람들과 어울리며 쏟아내는 가벼운 웃음마저도 경직된 무게로 눌러버리는 참 부족한 사람.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행여 나를 향한 불편함으로 다가올까 날을 세우며 경계하고 차라리 미움이라는 말로 깔끔하게 정리를 해버리는 것이 편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문을 걸어 잠가버리는 내 좁은 세상.
이만치나 살아보니 사람 사는 세상, 그렇게 깐깐하게 할 것도 없건만 여전히 나는 지극히 작은 것에도 온몸에 힘을 주고 어디로 향할지도 모르는 볼품없는 가시를 준비한다.
다른 사람의 노련함을 그 사람이 빚어놓은 작품과 결실이 아닌 어쩌다 얻게 된 운이라고 정의해버리고 싶은 유치한 어리석음. 그래서 내가 쥐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가볍게 여겨버리는.
내가 알아버린 경직된 인간으로서 나는 불쌍함이 아닌 그저 춥고 서늘한, 무게 없는 공기였다.
20대 때 누군가가 나에게 했던 "너는 오기로 버티며 사는 사람 같아"라는 말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꺾이지 못하고 있는 나를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아주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다른 사람에게 쓸데없는 계산 따위를 내세우지 않고 먼저 선한 마음을 내어줄 줄 아는 넉넉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저 사람에게 기꺼이 물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태도가 항상 나를 향한 것이 아니며 나에 대한 판단의 결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저들도 각자의 삶을 굴리며 선택하고 노력한 방향에 따라 제 모습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
그것을 인정해야 비로소 나의 경직됨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경직된 사람, '나'라는 사람에게 가장 취약하면서도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을 이제야 비로소 어렴풋이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