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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snow Dec 13. 2022

편히 가세요

아비는 안녕합니다 아버님.




늘 그렇듯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려는데 벽을 향해 누워있던 남편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깬 건가? 뭐지?'

그러더니 잠시 후 눈에서 뭔가를 닦아내며 일어난다.

"꿈에 아빠가 나왔어"

잃어버린 엄마를 애타게 찾아 헤매다가 힘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남편이 울먹이며 말을 했다.

"어? 아버님이?"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계시다가 먼길로 떠나신 지 두 달쯤 되었나 보다.

자그마치 8년이라고 한 것 같다. 아버님이 일어나지 못하신지.




결혼 전 남편이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자며 내 손을 잡고 간 곳은 어느 외진 곳에 있는 요양병원이었다.

나를 뒤로 하고는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제일 안쪽 침대에 누워계시는 분의 손을 잡기 위해

반갑게 팔을 먼저 뻗어내며 "아빠"라고 불렀다.

누워계시는 분에게서는 어떠한 반가운 목소리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목에 붙여진 밴드 아래 긴 튜브가 연결되어 있었고 아들을 알아보시는 듯 동그란 두 눈만 꿈뻑꿈뻑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길게 머뭇거릴 새도 없이 최대한 자연스러운듯한 목소리로 인사를 드렸다.

어색한 내 몸짓이 이 사람도 짐작이 되었을 테니 짧게 인사만 드리고 나왔다.

정말 드리고만 나왔다. 내 인사에 대한 어떤 화답도 들을 수 없는,  드릴 수밖에 없는 인사였다.


결혼 후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가 되면 여러 해 동안 누워계시는 아버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런 남편을 늘 애틋하게 돌보고 계시는 어머님에 대한 안쓰러움은 친척분들이 건네는

아주 익숙한 인사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오시는 분들마다 아버님 같은 사람이 없다며, 참 좋은 사람이었다는 말을 빼놓지 않으셨다.

어떤 분이셨을까? 저렇게 긴 시간을 붙들고 누워계시는 저분은 어떤 따뜻함을 그리도 베푸셨길래

힘없이 누워있는 이 세월들마저도 남아있는 이들에게 아쉬움으로 채우실 수 있는 걸까?

나 역시 그렇게 좋은 분과 그저 눈으로만 인사를 나누며 더 이상 어떠한 방법으로도 주고받지 못하는 마음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무뚝뚝한 큰 아들만큼이나 재미없고 막대기 같은 며느리였겠지만 그래도 딸 없는 시부모님에게는 예쁨 받는 딸처럼 그런 모양으로도 좀 살아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좋은 분이었다면 나의 부족함도 괜찮다 토닥여주시는 든든한 어른으로 크게 한자리 내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아주 느린 속도로 세상을 정리해나가시듯 나의 아버님은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에 누워 가족들의 얼굴을 올려다보시다 그렇게 세상을 지고 가셨다.

아버님이 가시던 날, 서럽게 울던 어머님의 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벌써 가면 보고 싶어서 어떡하냐는 어머님의 애끓은 울음이 한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아버님이 누워계셨던 시간보다 가시는 길을 준비하는 내 마음이 더 힘들었던 것을 보면  아버님은 내게도 참 좋은 분이 맞는 것 같다.



 

평소 표현도 없고 자신의 기분에 대해서는 긴 말을 붙일 줄 모르는 사람이 꿈에서 아빠를 봤다며 어깨가 들썩이도록 울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바라보고만 계셨단다.

아버님이 쓰러지시기 며칠 전,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을 찾아와 같이 한잔 하자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고 했다. 남편은 그런 아버지를 맞춰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두고두고 후회를 했었다.

'꿈에서나마 같이 한잔 기울이지 그랬나, 긴 시간 누워계시느라 다리도 무거우실 텐데 이제는 아무 걱정 마시고 훨훨 넘어가시라고 한번 안아드리지 그랬어'

억지로 추스르고 있는 남편에게 어떠한 말도 붙이지는 못했지만 꿈에서 잠깐 오셨다 가신 그 모습이 얼마나 애달팠을까 싶다.




매일 장거리 출퇴근을 하면서도 본인의 고됨은 무뚝뚝한 성격으로 삼켜버리는 사람.

어제도 혼자 늦은 저녁으로 떡국을 먹는데 두  딸들이 아빠에게 엉겨 붙어 떨어지지를 않으니  딸들 덕에 목구멍에 붙은 떡이 내 잔소리에 콧구멍으로 나올 판으로 그렇게 저녁을 먹었는데.

미안하네.

이 사람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고 부모의 품에 애 닳도록 안기고 싶은 여린 사람인 것을.

그렇게 먼 길 떠나가는 아버지에게는 가시는 길에 들러 한번 더 보고 싶은 안쓰럽고 벅찬 사랑이었을 것을.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마음을 가라앉히고 샤워를 하고 나오더니 어느새 또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출근길을 나서며 던지는 남편의 한마디가 잠시 몽글몽글한 애틋함으로 먹먹했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다.


"아, 오늘 로또 사야겠다, 이왕이면 번호도 알려주시지"





*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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