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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이 Jan 16. 2023

위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위로는 너무 어려워

위로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분명 어린 시절에는 위로를 곧잘 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서 남을 위로해 주는 게 어색해졌다. 힘든 상황에 처한 지인에게 어떠한 말 해야 할지 모르겠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한들 나 스스로가 삐걱거리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나타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짚이는 몇 가지 원인은 있다.


우선 지인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게 된 것연관 있다고 본다.


학창 시절에는 서로 처한 환경도 비슷하고 고민도 엇비슷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대학 또는 직장에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그 시절의 주된 걱정이었다.


친구의 고민이 내 고민이다 보니 나 또한 공감할 수 있었고, 어떤 때는 나의 경험에 빗대어 고민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됐고, 접점이 자연스레 줄면서 고민에 섣불리 공감해 줄 수 없게 됐다.


특히 친구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공감해 주려다 괜스레 머쓱해진 경우도 있었다.


컨대 잦은 야근 시달리는 친구를 보며, 먼저 나서서 회사 욕을 해준 적이 있다. '회사가 너무한 것 아니냐', '어떻게 야근을 맨날 시키냐', '너네는 초과수당도 안 주는데 열정페이 아니냐' 등의 말을 하며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회사를 마구 험담했다. 구는 그저 '나 오늘도 야근한다'는 말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후에 이 친구가 하는 말이 '그래도 그때 야근하면서 배운 게 많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머쓱함과 동시에 나 자신반성하 됐다.


시 잘 알지도 못하는 회사 험담을 하기보다는 '지금은 힘들겠지만, 네가 이직할 때는 큰 도움이 될 거야'. '밥은 잘 먹고 일하는 거지? 고생이 많다' 등의 말을 건네는 게 조금 더 적절한 리액션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코가 석자인 탓에 위로가 어려운 것도 있다. 마음이 조금 더 여유로웠더라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겠지만, 이기적이게도 나는 나의 삶을 영위하기 바쁜 상태다.


그러다 보니 힘든 상황에 부닥친 친구에게 '괜찮아.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야' 등의 입발린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또 '그래도 나보단 연봉 많이 받는 네가 낫겠지'하는 마음의 소리가 나올 때도 있다.


그리고 무엇이 이 사람에게 진짜 위로 되는지 알 수 없을 때, 위로를 해주다가도 '내가 이렇게 위로해 주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같이 회사에 입사한 직장동료 언니가 회사에서 잘리고, 나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적이 있다. 당시 이 언니는 나보다 일을 더 빠르고 완벽하게 했다. 그런데도 잘린 이유는 '상사의 눈밖에 나서'였다.


언니의 마지막 출근날 다 함께 술 한잔을 하는데,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괜히 한마디 나서서 했다가 언니에게 상처를 줄까 봐 "고생했어" 한마디와 함께 퇴사선물로 꽃다발만 안겨줬다. 펑펑 울며 상사욕을 하던 언니에게 위로가 됐을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은 지인이 고민이나 걱정거리를 털어놓으면 웬만하면 만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만나서 맛있는 거라도 먹으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기도 하고, 집에만 있으면 그 걱정에 더욱 몰입하게 돼 차라리 밖을 돌아다니는 게 낫다는 나의 판단에서다. 조금 더 진심으로 남을 위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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