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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Erika Jun 01. 2024

남친 탈덕

연애 이야기 보다 재미있는 이별 이야기


어쩌다 보니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를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싱글로 살고 있지만, 돌아보면 연애는 적지 않게 했다. 누구나 그렇듯 치기 어리고 용감 무식했던 20대 초반까지의 연애들도 치열하게 했고, 해외에서 온전히 내 삶에 책임을 지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느라 조금의 여유도 없던 과도기 시절에도 만남들은 있었다. 사실 그땐 적극적으로 만남을 주도했다기보다는, 그냥 연인이 된 채로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유학생 때 3년을 넘게 만나면서도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해본 기억 하나 남기지 못한 채 헤어진 연애는, 말만 3년이지 알콩달콩 연인다운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었다. 내겐 그다지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이 아까웠다 하기엔 나부터가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던 시기였다. 유학생이라는 신분의 불안함, 금전적 위태로움 등을 생각하면 연애는 죄스러운 것이었다.


밥벌이를 시작하고 마침내 유학생 시절보다는 조금은 안정이 되었을 때 만난 인연은 분명 다르겠지, 상상했다. 나는 어느덧 30대였고 상대방도 30대 중후반이었으니 훨씬 성숙하고 안정된 연애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별 일이 없다면 자연스럽게 결혼도 하겠지 생각했다. 겉보기엔 그랬다. 학생 때와는 다르게 가끔 그럴듯한 데이트를 할 수 있었고 학업 스트레스도, 진로에 대한 압박도 없었다. 함께 미래를 그리기에 걸림돌이 없었다. 비록 모아둔 돈은 없지만 둘 다 열심히 잘 벌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모든 것은 온전히 나만의 착각이었다. 의젓하고 성숙할 줄 알았던 그는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연애에 있어서는 비성숙했고 위태로웠다. 특히 과거에 깊은 상처가 있으니 그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깨달은 것이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직장 문제로 힘들고 예민해단 이유로 수시로 짜증을 냈고,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나는 그것을 바로잡기보다는 다독이고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려 1년 이상을 그런 상태로 보냈다. 힘들 때 곁에서 함께 지켜주는 것이 내겐 사랑이었고, 또 어디선가 들은 '힘들 때 사람 버리는 것 아니다'라는 말도 굳게 믿었던 탓이었다. 수없이 상처를 받으면서도 지금 그가 원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라 그런 거라고 정신승리를 하던 나는 점차 피폐해져 갔다. 마침내 그의 직장 문제가 정리되고 얼마 후, 그는 우리 만남이 권태롭고, 당시 내가 가족 문제로 힘들어하던 모습이 보기 싫다며 헤어짐을 고했다.


하지만 그 허탈한 이유들에도 네가 정녕 사람새끼냐고 반문할 수가 없었다. 그것들이 진짜 이유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마음은 일찌감치 떠났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본인의 패악질을 1년 이상 견디며 곁에 있었던 연인을 고작 2년 만에 권태로워하고, 개인적인 일로 힘들어하는 연인의 모습을 잠시조차 꼴 보기 싫은 것이 말이 되겠는가 (사이코패스라면 몰라도). 드라마였다면 뺨이라도 후려쳤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음이 그를 붙잡고 혹시나, 설마 하며 그간 놓을 없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또래에 비해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살아온 덕분에 나는 받아들임에 매우 능하다.   


그도 나름 힘들었을 것이다. 애정은 만남 1년이 채 되지 않아 빠르게 식어버렸는데 곧장 본인의 감정을 마주하고 정리하기는 쉽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관심은 온통 다른 계획들에 쏠리고,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싶어 막무가내로 구는데도 쓸데없이 착한, 혹은 눈치 없는 여자는 떨어지질 않는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고도 싶고,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면 혼자였을 때도 편하고 좋았는데. 어떻게 하면 최대한 덜 나쁜 놈인 채로 헤어질 수 있을까 고민해야 했던 그도 괴로운 시간을 보냈겠지.


헤어지기 며칠 전, 싸늘하고 차가웠던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정이 뚝 떨어진다'는 표현을 실감했다. 어지간한 말에는 상처받지 않고 금세 잊어버리는데 그날 그 목소리만큼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후 며칠간 또 일방적으로 연락이 끊긴 채, 또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는 그가 나타나 마침내 이별을 말하던 순간, 누군가가 나를 강렬하게 흔들어 깨우듯 눈이 번쩍 뜨이며 깨달았다. 이것이 내 구원임을. 강렬한 배신감과 압도되는 해방감이 양립할 수 있는 것이었다니. 몇 날 며칠을 이별의 아픔에 울면서도 드디어, 살았다,라는 말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그는 본인이 생각해도 내게 한 짓들이 민망한 모양인지, 아니면 그냥 이미지를 관리하고 싶은 것인지 뒤늦게나마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떻게든 꽤 가슴 절절한 이별로 포장하려던 그와는 달리 차갑고 단호한 내 반응은 그의 예상 밖이었는지 당황한 듯 보였다. 하긴 매번 내가 붙잡곤 했었으니.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는 참으로 다정하게 굴었고 그 모습은 그가 내 마음을 얻고자 노력하던 오래전 우리의 시작을 상기시켜서 헛웃음이 났다.




그와 헤어진 후 오랜만에 만난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왜 이리 인상이 좋아졌냐 물었다. 남들에게 연애사를 잘 이야기하지 않아 그들은 내가 헤어진 줄도 모르는데,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물어온다.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졌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 바빠졌으며, 하나 둘 좋은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나를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무언가가 사라진 듯이.


그럼에도 나는 그를 비합리적으로 사랑했다. 당연하다. 사랑이 그렇다. 계산이 없어서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비논리적이다. 평생을 똑 부러지다고 칭찬받으며 살아온 나는 그에게만큼은 무작정 손해를 봤다. 그러나 그것에도 조건은 있었다. 우린 연인이기에, 사랑만큼은 쌍방향이어야 했다. 의리, 책임, 신뢰. 그것들이 기본이자 전부였다. 매사 온갖 계산과 계획들로 머리 굴리기에 바빴던 그가 놓쳐오고 있던 것들은 본인만 보지 못하는 것이라 안타까웠다. 앞으로 그의 삶은 행복할까?


나에게 상처만 잔뜩 남긴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의 행운을 빈다. 어찌 되었든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나의 이상형에 아주 가까운 사람이었고,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만큼 최선을 다 해 사랑했다. 나는 그의 팬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 일방적 사랑을 버텨냈겠는가. 왕창 손해보고 탈덕했지만 그땐 '주는 기쁨'으로 살았더라.



삼십 대. 사랑은 여전히 유치하고, 비합리적이며, 심술궂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주욱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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