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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Erika Oct 31. 2023

'미라클 모닝'과 '새벽기상', 그리고 '갓생'

전 죄다 조졌는데요.. 


나는 평생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 내내 아침잠 때문에 학교 가는 게 정말 싫었고 아침밥은 평생 먹어본 날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대학생 땐 새벽에 스케줄이 끝나면 차라리 밤을 새우고 학교를 갔다. 아침에 못 일어날 걸 알기 때문이었다. 유학생이 되어서는 매일 커피로도 모자라 허구한 날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가며 새벽까지 과제와 시험을 준비하느라 깨어 있었다. 그래서 늘 좀비 같았다. 취업을 하고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아무리 일이 많아도, 아무리 피곤해도 밤늦게까지 일을 했지, 아침에 일찍 일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못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근 삼십 해를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으로 살아왔고, 그러니 '미라클 모닝'이니 '새벽기상'이니 하는 유행에는 애초에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기상시간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알람을 10분 간격으로 서너 개는 맞춰 놓아야 겨우 마지막 알람이 울릴 때 눈도 뜨지 못한 채 일어나 화장실로 직행하던 내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깨는 날들이 점점 잦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혹 알람을 못 들을까 긴장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그런 것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찍 눈이 떠졌다. 늦어도 자정을 넘기 전에는 꼭 잠에 들자고, 11시 전에는 꼭 잠자리에 눕자 다짐하고 실천한 효과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어른들 말씀처럼 그냥 나이가 들어서 잠이 없어진 것일지도.......


하여간 의도하지 않은 새벽기상(그래봐야 6시 즈음 일어나는 수준이지만) 덕분에 도시락을 준비하는 시간을 빼고도 출근 전 한 시간이 정도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나는 주로 커피를 내려 마시며 '멍' 때리다 출근 준비를 했다. 시간이 좀 남으면 책을 읽기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그러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새벽에 무얼 할까 싶어 찾아보았더니 세상에, '갓생'이라는 키워드는 또 나만 몰랐다. 다들 놀랍도록 생산적인 아침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미라클 모닝이나 새벽기상 챌린지를 하는 사람 중 나처럼 시간을 축내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매일 새벽 4시-5시에 일어나 땀 흘리며 운동을 하고, 업무를 시작하며,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고도 한참을 뒹굴거리다 이불 밖을 나오는데 말이다. 나도 그들처럼 아침을 생산적으로 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나 역시 아침용 'To Do List'를 만들어서 실천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에 할 일을 만들었더니, 이상하게 내 몸은 다시 알람 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기를 힘겨워했다. 눈을 뜨면 상쾌한 느낌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아침에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몸을 짓눌렀다. 알람을 맞춰 두지 않았을 때는 새벽에도 곧잘 눈이 떠졌는데, 할 일을 하려고 기상 시간을 정하고 알람을 맞춰 놓으니 알람을 끄고 몸을 일으키는 것이 고역이었다. 잠결에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면 깊게 잠이 들어 출근 시간도 허둥지둥 맞춰야 할 만큼 늦잠을 자버리는 일도 생겼다. 내 몸은 타고난 '청개구리' 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나의 아침 시간을 "꼭 생산적일 필요는 없는" 시간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운동이니 업무니 공부니 하는 것들은 그냥 내키면 하고, 아니면 말자고 다짐했다. 새벽 기상을 위한 알람도 지워버렸다. 혹 늦게 일어나 곧장 출근 준비를 하게 되는 날도 개의치 않기로 했다. 아침에 뭐든 해야 한다는 압박을 없앴더니 놀랍게도 다시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진다. 이로써 '갓생' 살기는 망했다. 나의 아침은 그저 복잡한 머리를 약간 비워내는 시간이 되는 것으로 합의점에 이르렀다. 다시 시작된 하루를 잘 채워 넣기위한.


태생이 게으른 나는 갓생을 위한 미라클 모닝도, 새벽 기상도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출근 전 아침 시간은 즐거운 나만의 자유시간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침대에서 뒹굴 거리다 느지막이 몸을 일으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좋아하는 커피를 내려 마시며 불도 키지 않은 채 수십 분을 멍- 때린다. 책을 읽고 싶으면 읽고, 강의를 듣고 싶은 날은 강의를 듣는다. 또 어느 날은 좋아하는 연주곡을 들으며 침대에 누워 천장의 무늬를 눈으로 따라 그리다가 기지개를 쭉, 필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바깥 날씨를 한 번 체크하고, 오늘은 부츠를 신어야겠다,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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