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리카 Erika
Dec 11. 2023
지난달 퍼포먼스 리뷰 이후 업무가 무척 바빠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전부터 미리 내게 와 있었던 병가 낸 팀원의 케이스들 때문이긴 했지만 타이밍이 그랬다. 마치 리뷰 때 앞으로는 더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될 거란 얘길 듣자마자 일이 몰려든 모양새. 다들 연말에 일을 하고 싶지 않으니 거래의 completion date들이 앞당겨지기도 했고 복잡한 케이스들은 아예 새해로 연기되기도 했다. 내 일은 Due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만큼 (안 그런 일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덕분에 아침 7시 30분부터 업무를 시작한 날도 있었다. 이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일이 많아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많은 문서들을 읽고 쓰느라 피로해진 눈을 마사지하던 날 밤, 문득 '그땐 그 돈 받고 그것들을 다 대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불과 1, 2년 전이다. 다른 글에서 수도 없이 언급했던, 밤과 낮,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하루 10시간도 넘게 일을 하던 때가. 과거와 비교하며 지금 삶에 안주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근래엔 현재에 대한 감사를 많이 잊었던 것 같다. 다시 마인드셋을 다잡아야겠다 싶었다. 그때보다 모든 것이 좋아진 지금, 나는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요 며칠 바쁜 걸 두고 투덜거리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집 한구석에서 명상과 요가를 흉내 내보기 시작했다. 사실 요가라고 하기 민망할 만큼 그냥 스트레칭 조금 깔짝거리는 수준이지만, 호흡을 가다듬으며 머리를 맑게 비워내려 애쓰고, 편안하고 부드러운 요가 매트의 감촉을 느끼며 어설프게 동작들을 흉내 내 보았다.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수축하고 이완시키는 기분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 허접한 요가는 마음먹었던 일도 아닌데 어느새 출근 전 아침 루틴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집에서 일하던 어느 날은 일하다 말고 냅다 요가 매트로 올라간 일도 있었다. 유연성이라고는 정말 최악인 몸뚱이라 누가 보면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겠지만, 혼자 살아 좋은게 무엇이겠는가. 맘껏 삐그덕거려도 괜찮았다. 꼴은 좀 우스워도 쾌감은 중독적이고 효과는 훌륭했다.
2023년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으로 매달 아슬아슬한 통장 잔고에 마음을 졸이긴 했지만 회사 생활만큼은 정말 편하게 보냈던 한 해였다. 야근도, 잡무도, 가십도, 드라마도 없이, 그저 좋은 동료들과 커리어를 확장하기만 했던 시간이었다. 오히려 개인적인 일들로 많은 에너지와 감정들이 소비될 때마다 사무실 책상에 앉으면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뿐인가. 올해는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도, 퇴근 후에는 튜터로서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한동안 부엌 아일랜드 위에 방치되었던 킨들도 다시 집어 들었다. 요가를 하니 글이 읽고 싶어졌고, 읽으니 쓰고 싶어졌다. 머릿속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복잡하고 무겁게 얽혀 있을수록 몸은 반대로 단순하고 가벼워져야 한다. 더 많이 읽고, 쓰고, 호흡 해야지. 더 많이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