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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카 Erika Jan 17. 2024

2023년, 천하제일 잘 쓴 물건들

뒷북 좀 칩시다


토론토에 자가를 마련하기 전 다년간의 이사를 다니며 갖은 고생을 다 했던 나는 '짐'이라면 넌덜머리가 나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름 '미니멀리스트'적인 삶을 지향하기로 결심하고 한 때는 소비를 극도로 줄이기도 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물건을 줄이고 줄여도 이사 갈 때 힘든 건 매한가지였지만, 덕분에 그때 갖게 된 '쉽게 물건을 사지 않는 습관'은 지금까지도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과시를 위해 소비하지 않고 고심 끝에 들인 물건은 애정을 들여 오랫동안 사용하는 습관은 '삶은 가볍게, 지갑은 무겁게' 살기 위한 시작 아니겠는가.


그렇게 살면 공간이 휑하거나 취향대로 꾸미고 살 수 없느냐? 전혀 아니다! 더 이상 아무거나 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내 취향'을 심도 있게 고민하고 찾게 된다. 즉, 디자인적인 면과 실용적인 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물건들로 깔끔하게 공간을 꾸미는 능력이 생긴다. 더 이상 마케팅에 속지 않고 정말 괜찮은, 맘에 쏙 드는 물건을 고를 줄 아는 안목이 생겨난다.


또 재미있는 점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크게 유행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언젠가 선물로 받게 되어서 결국엔 가지게 되더라는 것이다. 네스프레소 버츄오나 마비스 치약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그 예다. 덕분에 요즘 '한국인이라면 흔히 하나씩은 다 있다'는 것들 거의 대부분을 나 역시 감사히 사용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선물은 원래 '써보고는 싶은데 내 돈 주고 사기는 망설여지는' 것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트렌드에 매번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살다 보면 언젠가 다 써 볼 기회가 생기고, 안 써 보더라도 사는데 아무런 지장 없다. 나만 없는 것 같다고 조바심 내지 말자.


하여간, 이제 그만 각설하고 이렇듯 이런저런 이유로 내게 온 물건 중 2023 작년 한 해 동안 (막상 있으니) 잘 쓴 물건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기준은 내 맘대로, 생각외로 사용 빈도가 높았던 물건을 골랐다.



1.  오븐형 에어 프라이어

Cusinart Air Fryer Oven

에어 프라이어의 등장과 수년간의 유행에도 나는 최근까지 에어 프라이어가 없었다. 사실 요리가 뚝딱 쉽게 된다는 무수한 증언에 하나쯤 사보고 싶은 유혹은 정말 많았는데, 남들과 부엌을 공유하며 사는 날이 대부분이니 어디 내 물건을 함부로 공용 주방에 둘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막상 내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도 선뜻 구매하기는 망설여졌는데, 디자인이 대부분 거무튀튀하고 둥근 형태라 내가 원하는 부엌 콘셉트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디자인이 좀 괜찮다 싶으면 가격이나 사용후기가 아쉬웠다.


그런데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이사를 하면서 그의 오븐형 에어 프라이어를 내가 쓰게 되었다. 사용감도 없고, 일단 까만색이 아니라 합격. 리뷰도 훌륭해서 반신반의하며 써보니... 세상에, 요거 완전 물건이 아닌가. 거짓말 안 보태고 약 5개월간 정말 거의 매일 사용 중이다. 빵을 데울 때도, 군고구마를 만들 때도, 그래놀라를 만들 때도, 육류/생선 요리를 할 때도 정말 편하고 유용하다. 편한 데다 무엇보다 결과물이 흡족하다. 일반적인 둥근 모양이 아니라 음식을 더 많이 담을 수 있고 세척이 편리한 것도 정말 장점. 매일 나의 쿠킹 라이프를 한결 편하고 즐겁게 만들어 준 기특한 녀석으로, 단연 2023 잘 쓴 물건 1위. 이젠 이것 없이 어떻게 살았었는지 기억이 안 날 지경이다 (거짓말 쬐끔 보태서).


 2. 블루투스 이어폰

Galaxy Buds 2

나는 유선 이어폰을 좋아한다. 예전에 선물 받았던 Shure 유선 이어폰을 잘 사용했고 가능했다면 계속해서 유선 이어폰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선택권이 없다. 더 이상 스마트폰은 중간 연결장치 없이는 유선 이어폰을 연결할 수 없다. 그래서 기존 Shure 유선 이어폰을 블루투스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블루투스 선을 구매해서 사용했는데, 음질도 엄청 떨어지는 데다 블루투스임에도 선이 있어서 사용하기가 영 불편했다. 모두가 귀에 '콩나물' 혹은 '강낭콩'을 꽂고 다니는 세상에서 나는 혼자 온갖 세상 소리를 다 들으며 지내기를 수개월. 그래도 이상하게 선뜻 블루투스 이어폰을 구매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바깥에서는 음악도, 동영상도 거의 보지 못하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 갤럭시 버즈 2를 선물 받게 되었다 (나는 삼성 갤럭시 유저다). 선물을 골라보라는 말에 나도 딱히 필요한 게 없는데... 하다가 번뜩, 아 나도 블루투스 이어폰을 써봐야겠다 싶었다. 타제품과 고민하다가 평이 더 좋은 버즈 2로 골랐다. 그리고 출퇴근 길과 운동 중에 주야장천 사용하고 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음질이 좋고 바깥 소음을 차단하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도 만족스럽다. 다만 밖에서 통화를 할 경우 상대방이 내 목소리를 듣기 위한 노이즈 캔슬링은 약간 아쉬운데, 저렴한 무선 이어폰들 보다는 당연히 훌륭하지만 유선 이어폰만큼 내 목소리가 선명하게 전달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 좋고 값비싼 블루투스 이어폰의 성능이 궁금하긴 하지만 나의 사용용도에는 버즈 2만으로 충분히 들어맞는다. 할인도 많고 가격도 착해서 갤럭시 유저라면 블루투스 이어폰 입문용으로 좋은 것 같다. 이제 매일 출퇴근 길이나 운동할 때 버즈 없이는 거의 바보가 되므로, 2023 잘 쓴 물건 2위로 꼽지 않을 수 없다.


3. 블루투스 스피커

Marshall Emberton Cream

세 번째로 꼽을 물건은 다름 아닌 Marshall 사의 스피커 중 Emberton, 크림색 모델이다. 블루투스 이어폰에 이어 세 번째로 잘 쓴 물건 역시 스피커라니,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소리'가 중요한 사람인 모양이다. Marshall의 예쁜 디자인과 성능이야 예전부터 익히 들어왔지만 사용해 볼 기회는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집들이 선물 하나로 받게 되었다.


이사 후 스피커를 하나 두고 싶었는데, 배치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벽걸이용으로 나오는 것을 사야 하나 마침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집이 원체 작아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바닥 공간을 차지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대신 리빙룸에 벽걸이 선반을 제작해서 좋아하는 책이나 그림, 피규어 등을 장식해두고 있었는데, 엠버튼을 선물 받고 그곳에 두니 마치 이를 위해 준비된 곳인 마냥 꼭 어울리게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소리의 울림이 더 커지는 효과는 덤.


혼자 음악을 감상할 때도, 손님을 초대할 때도 늘 이 스피커를 이용하고 있다. 가끔 TV로도 음악을 틀어 둘 때도 있는데,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삼성 스마트 TV로 음악을 틀어 듣다가 엠버튼을 틀면 차이가 매우 확연하게 느껴진다. 마샬 제품 중 가장 작은 모델이지만 음량을 절반 정도로만 높여도 집안을 꽉 채우고 (물론 집이 매우 작다), 막귀이긴 하나 블루투스로 연결되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소리에 훌륭한 밸런스를 보여준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디자인이 깡패다. 그렇잖아도 디자인으로는 비할 데가 없다는 마샬인데, 무선이라 더 깔끔하고 예쁘다. 게다가 베이지색은... 더 말하면 입 아프다.


사실 이전에 (실은 지금도) 마샬은 브랜드 + 디자인 때문에 성능에 비해 제품들이 Overpriced 되었다고 생각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직접 사용해 보면서 성능도 충분히 훌륭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가격이 합리적이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다만 블루투스 스피커이지만 실제로 가지고 다니며 사용할 만큼 휴대성이 좋지는 않다. 작긴 하지만 막 작은 것은 아니고, 휴대용 치고는 무게도 가벼운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무실이나 집 등 실내에서 여기저기 옮겨 가며 사용하기에 더 좋을 것 같다. 종종 조용히 혼자 엠버튼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들이 너무 만족스럽기에, 마샬 엠버튼이 2023 잘 쓴 물건 3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꼽고 보니 내가 작접 구매한 물건은 없어서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어떤 물건이 내게 온 것 역시 대단한 인연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소중히 잘 다루고 사용해서 꾸준히 오래, 잘 사용하고 싶다. 2024년에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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