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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Jan 04. 2025

이제 겨울 방학인데 요리랑 친해져 봐야지.


 올해는 요리하는 엄마, 집밥에 신경 쓰는 엄마가 돼 보자고 마음먹었다. 엄마 된 지 11년째인데 요리를 너무 못하고 안 한다. 못해서 안 하는 건지. 안 해서 못하는 건지. 둘다겠거니 생각한다. 연초에는 뭐든지 다짐하기 좋으니까. 흐지부지 되더라도 한해 목표로 세웠으니까.


 거창하게 세우면 분명 시도하다 실패할게 뻔하니 목표는 아주 간소하게 세운다.


'국이나 간단한 요리 하면서 반찬가게 이용해서 밥 신경 쓰기'로


 결혼할 때부터 그랬다. 밥도 안 해보고 결혼했으면서. 요리할 줄도 모르면서. 능력치는 기본보다 못한 마이너스인데 기대치는 완벽한 현모양처였다. 그러니 그 간극이 좁혀지지가 않지. 그러니 시도도 못하지. 그래서 하루 한 번이니, 일주일에 몇 번이니 이런 거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못했다고 해야 맞지 않나)


 고명환 님은 책 [고전이 답했다]에서 결심 금지라고 했다. 그게 무슨 뉘앙스로 얘기했는지 본질은 알겠지만 나에게는 결심과 작은 목표설정도 중요했다. 그만큼 요리는 미루고 안 하고 싶은 요린이니까.  






 내가 요리를 못하는 이유는 부엌상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설거지를 미루는 습관, 식기세척기 정리를 미루는 습관, 냉장고 정리를 안 하는 습관, 식탁을 치우지 않는 습관 등등등이 모여 총체적 난관이 된 부엌 상태가 도저히 요리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고. 그래서 요리를 하려고 하면 조리대가 더러워 치워야 하고. 도마랑 칼을 꺼내려고 하면 설거지를 해야 하고 그래서 시간이 배가 되는데. 안 그래도 요리에 감이 없는 손까지 더해져 요리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그럴 바에는 배민이 빠르겠다고.


지저분한 부엌때문에 요리를 못한다는 핑계

 

 그런데 아니었다. 부엌이 더러워서 못한다는 건 핑계. 정작 원인은 메뉴선정이었다. 뭘 만들지 모르겠으니 시도해 볼 생각도 못하고 엉뚱한 거만 하게 되고. 그래서 인스타를 보다가 간단해 보이고 먹음직 스런 레시피가 있으면 저장해 놓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레시피들을 저장해도 재료가 없다는 이유로 요리는 멀리하고 싶었으나. 이제는 마음먹었으니 마트 갈 때 재료를 산다. 재료가 냉장고에 들어가면 얼마 안 있다가(이게 중요하지) 꺼내서 해보고. 아주 당연한 소리인데 그걸 몰라 정리 탓만 하고 있었다. (물론 정리도 해야겠지만)






 요린이는 김치볶음밥도 레시피가 필요하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생 때도 레시피 없이 만들었던 게 김치볶음밥이었다.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김치 넣고 밥 넣고 볶다가 김치국물 넣어서 볶고 끝. 그런데 먹는 사람이 우리 집 아들내미가 되니 그 레시피로는 안 된다. 첫째 때는 뭣도 모르고 그렇게 해서 줬는데. 솔직하고 직설적인 둘째가 대놓고 알려줬다. "이거는 맛이 없잖아!"라고.


 주말 점심. 아침도 대충 줬는데 점심은 뭘 줘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친구가 나가서 전화오기에 나가서 놀고 들어오라고 했는데 굳이 점심 먹고 3시에 만난단다. 말은 안 했는데 배가 고팠던 거 같다. 할 줄 아는 것도 몇 개 없는데도 고민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고민되는 게 메뉴선정이 아니라 배달과 직접요리의 고민이겠지)


 뚝딱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기에 간단하고 냉장고에 있는 걸로 할 수 있는 요리. '김치볶음밥'을 하기로 한다. 얼마 전 맛있다는 레시피를 저장해 뒀기에 다시 한번 요리 과정을 본다. 영상으로 한번 글로 한번. 레시피 대로 들기름을 두르고 김치를 잘게 썰고 설탕을 적당히 넣고 볶다가 다시다를 넣어 볶는다. 그리고 밥 넣고 볶기. 너무 촉촉하지 않은 것 같아 레시피에 없는 재료를 추가한다. 버터 한 조각. 들기름도 넣었지만 버터까지 넣는 과감함. 요린이는 일단 맛있어야 하기에 거침없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반숙프라이를 하라고 했는데 계란은 아침에 줬으므로 모차렐라 치즈 한 봉지를 넣는다. 그렇게 해서 김치치즈볶음밥을 완성하고. 별건 아니지만 집중해서 열심히 했으므로 이왕이면 이쁘게 담아본다. 수프그릇에 볶음밥을 담아 봉긋하게 만들어 미키 그릇에 소복이 담는다. 귀에는 담을 반찬이 마땅치 않으므로 귤과 샤인머스캣을.


 그렇게 완성해 놓고는 자화자찬도 잊지 않는다. "얘들아~ 어서 와. 진짜 기가 막힌다. 기가 막혀~" 아이들도 꺄 소리를 지른다. 일단 비주얼 합격. 과연 맛은?


 솔직 빼면 시체인 둘째가 엉덩이를 들썩들썩하고 표정도 웃기게 춤을 춘다. 맛있으니 절로 춤이 나오는 둘째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애들 예쁘게 담아 주고 조금 남은 건 내가 먹으려고 했는데 둘째가 리필을 요청한다. 그렇게 클리어!






  이제 바로 치우면 되는데 어디 그게 쉬운가? 아직 거기까진 무리다. 차근차근 치우기 실력도 늘려 가야지. 배가 고파서 바로 할 힘이 없나 싶어서 김치볶음밥을 다시 한번 하려고 하는데. 오로지 나를 위해서는 안 하게 된다. 남편에게 김치볶음밥 먹을래? 물어보니 절레절레 다. 그래서 요리 안 하고 버티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급 만든다. 내가 먹을 거니 양파와 햄 생략. 김치 많이 넣고 휘리릭 볶는다. 그래도 계란프라이는 못 참지. 계란프라이 반숙으로 먹고 싶은데 노른자가 터진다. 내가 먹을 거니 뭔 걱정. 프라이팬 채 먹을까 하다가 설거지 거리 하나 더  늘으면 어때 싶어 하얀 그릇에 대충 담아 본다. 숟가락은 볶을 때 썼던 나무숟가락. 역시 맛나네. 마지막에 입가심으로 맥콜 한 캔 하니 '크-' 이제야 살겠다.


이제 겨울 방학인데 요리랑 친해져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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