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회고는 다음 주에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신규 프로덕트 관련 업무가 모두 마무리되면 하려고 한다. 물론 그 업무가 마무리되면 후속 마케팅 업무가 따라오겠지만.
이번주 야근을 몇 차례 하면서 느낀 건 내가 오늘 12시간 근무할 생각으로 출근했다면 8시간 근무하는 날의 업무강도가 안 나온다는 거다. 일이 많아서 야근할 작정으로 출근한 건데도 불구하고 어차피 퇴근까지 시간은 많고 이제 막 출근한 나는 이미 지겨움 ㅠㅠ 이미 지침 ㅠㅠ 상태가 되어 업무 집중도가 현저히 낮아진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야근을 매우 싫어하는데 일단 야근을 안 해도 마무리할 수 있는 일정을 잡아야 하는 게 우선인데 그걸 안 했다는 얘기고 피치 못하게 모든 면에서 일정이 타이트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디자이너에게 진행 초반에 일정 공유를 잘 안 해주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나 사전 작업을 못해 얼렁뚱땅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항상 동반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보통 디자이너의 일정은 진행에서 잘 고려되지 않거나 아주 작은 시간으로 책정된다. 그 후 그 일정은 디자이너에게 전달하지 않아 '디자이너의 일정'에 대해 디자이너는 여전히 모르고 있다. 이게 문장이 왜 이래.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기획, 다른 업무 기타 등등은 일을 시작할 때부터 님 시간 얼마 필요함? 넌? 님은? 당신은요? 해서 런칭일이 정해진 후 런칭 일주일 정도 전에 아... 이런... 디자인...!
"디자이너님(님은 또 왜 꼭 붙임?) 일주일 뒤 우리 런칭임. 일주일이면 충분하죠? (무슨 일인지 아직 모름)."
근데 그것보다도 야근을 해야 할 일이 맞는지 야근을 해야 할 만큼 일이 많은지, 그저 모두가 같이 희생하자는 말로 내뱉지 않은 꼰대질의 결과일 뿐인 건지, 소유하지도 않은 회사에서 요구받은 빌어먹을 오너십 때문인지 근간을 살펴보면 그렇게까지 일이 많지 않고요 그렇게까지 바쁘지 않습니다.
이번 주 야근을 한 김에 내 야근 역사나 되돌아보려고. 나는 왜 이렇게 야근을 매우 싫어하다 못해 극혐 하게 되었나.
언젠가 디자이너들끼리 불우한 과거 경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얼마나 후진 일을 했는지를 겨루는 건 아니고 얼마나 후진 업무 환경에서 일을 했는지 혹은 악독한 사장 혹은 악독한 클라이언트를 만났는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불우하게도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불우함이라는 찬사를 박수와 함께 받았다.
내 첫 직장은 "교수님"이 차린 디자인 회사였고 야근은 일상이고 철야를 한 달에 일주일, 주말 근무는 여덟 번 정도 했다. 뭐 글을 쓰려는 작자의 과장일 수도 있고 내가 그 회사를 진짜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기억 왜곡일 수도 있다(고 치자). 그 정도로 바빴냐고 물어보면 나는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아뇨! 그렇게까지 일이 많지 않고요 그렇게까지 바쁘지 않습니다.
스튜디오 문화가 그 모양 그 꼴이었고 사장님이 된 교수님은 밤 9시부터 직원 붙잡아 두고 레퍼런스가 어쩌니 소명이 어쩌니 확신이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시작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떠들어댔다. (디자인은 그냥 직업이지 소명은 무슨 소명입니까. 졸업하는 학생들 데려다가 한 달 용돈 10만 원 주면서 본인 박사 논문 레퍼런스 타이핑 시키는 게 참 소명입니다. 하늘이 허락한 착취)
가끔 담당하던 클라이언트는 새벽 3시고 4시고 간에 내게 문자를 보내 어디냐고 물었고 (불우하게도 진짜로 사무실이어서) 사무실이라고 답하면 사무실로 전화해 봐도 되냐 물었다.
"네. 하세요." 하면 어김없이 사무실 유선전화벨이 울렸다.
그 교수였던 사장이 다른 사장을 고용해 두고 본인은 유학을 갔는데 새로운 사장이 복지라고 거금을 들여 뿌린 목욕탕 정기권은 내 직장 생활 역사에 정말 눈부시다 못해 눈이 시린 순간이었다.
저렇게 정규 업무시간보다 더 긴 야근 시간에 보상을 받았다면 나는 개부자가 될 수 있었을 테고 이 나이에 매일같이 꿈꾸는 은퇴를 할 수 있었겠지만 불쌍하고 작은 디자이너는 야근비는 일원 한 푼 받은 적이 없고 주말 근무 역시 급여는커녕 기차 정기권이 주말에는 적용되지 않아 교통비를 스스로 쓰고 점심을 내 돈으로 사 먹어가며 일을 했다.
그 정도로 바빴냐고 물어보면 나는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아뇨! 그렇게까지 일이 많지 않고요 그렇게까지 바쁘지 않습니다.
내가 개미 눈물의 분자(과학 모름)만큼의 연봉 인상을 통보받고 퇴사를 마음먹은 후부터 나는 의미 없는 야근은 하지 않기 시작했다. 6시 정시 퇴근을 하면서도 내 일에 구멍이 난 적이 없다. 그렇게까지 일이 많지 않고요 그렇게까지 바쁘지 않습니다. 그때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 야근은 대체로 하지 않아도 일은 된다.
첫 번째 퇴사를 한다고 했을 때 나를 붙잡으려 면담하던 팀장이 한 말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요새 애들이 너무 느슨하게 일을 해서 어떻게 타이트하게 잡을지 ##팀장과 논의 중이에요." (아 님이나 병증 핑계로 정오에 출근해서 바닥이 자리 펴고 잠이나 자지 마세요. 그 시간에 일을 하고 정시에 퇴근하십시오)
뭐 이 정도 엉망진창이라면 당연한 수순으로 나는 연차도 쓰지 못했고 퇴사할 때 연차 수당을 받지도 못했다.
이 (구) 교수 (구) 사장은 뭐가 그렇게 당당하고 부끄러움이 없는지 인스타그램에 나를 팔로우하고 가끔 좋아요를 누른다.
아무튼 나는 야근은 하지 않기로 했고 야근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직장을 골라 여기저기 야근을 안 하며 혹은 심지어 주 4일제에 다니다가 작년 한 회사에 취업을 한다. 그리고 새로 온 팀장에게 저는 야근을 위한 야근은 하지 않는다고 말하게 되는데...
(이 회사 이야기는 쓰다 보니 빡이쳐 업로드할지 말지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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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해야만 하는 환경들은 무조건 있다는 건 매우 잘 안다. 콕 집어 야근을 안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내가 그런 환경에 오래 있었고 지나치게 지쳤고 개 빡쳤기 때문이고 그때부터 쉽게 빡치는 나는 여전히 매주 매일 쉽게 빡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