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대문에 비닐봉지가 매달려 있다. 단단히 묶여있어 풀리지 않는다. 장갑을 벗고 매듭을 푼다. 투명 과일포장 용기에 달걀이 들어있다. 껍질에 탄 자국이 있는 게 구운 계란 같다. 쪽지가 들어있다.
모과 주셨 감사합니다
고마워서 구운 계란 맞이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모가 방에 둬니까
냄세 좋아요 감사
구운 계란 10개! 껍질이 깨진 것도 있고 그을리고 탄 자국도 있다. 먹어도 되는 건지 걱정된다. 갈라진 껍질 사이로 카라멜 색 흰자가 보인다. 탱글탱글한 식감이 느껴진다. 별일 있겠어. 달걀 걸어둔 사람을 믿는다. 두 개를 까먹는다. 쫀득하고 간이 잘 돼있다. 두 개 더 먹는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 몫으로 남긴다. 그런데 누가 구운 달걀을 놓고 갔을까?
정원에 키 큰 모과나무가 두 그루 있다. 정확히 경계를 따지자면 정원과 바로 맞닿아 있는 공원 땅에 있다. 위치가 어쨌든 노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모습이 볼거리다. 모과는 따지 않는다. 떨어져 거름 되게 그냥 둔다. 모과청을 만들었는데 과육이 단단해서 칼질이 힘들었다. 굳은살이 배겼다. 어렵게 모과청을 담가도 부드럽고 달콤한 다른 과일청에 밀려 버려지기 일쑤다.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 뜻을 알겠다.
어느 날 공원 산책로를 지나던 아주머니가 모과를 살 수 있냐고 물었다. 버리는 모과를 사겠다니 신기했다. 팔 수는 없고 대문 앞에 놓아둘 테니 가져가라고 했다. 2, 3일에 한 번씩 모과 소쿠리를 내놓고 이웃들이 가져가게 했다.
모과를 얻으러 할머니가 온 적도 있다. 나를 사장님, 하고 부르더니 모과를 주워가도 되냐고 했다. 정원이 경사가 많고 징검 발판이 껄떡거리니까 조심하시라고 했다. 할머니는 계속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 귀한 모과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굽신거렸다. 과한 저자세가 거북했다. 차라리 내가 주워드릴까 하다가 필요한 만큼 가져가시게 그냥 두었다.
“아이고아이고!” 할머니가 고꾸라지려고 했다. 놀라서 달려갔다. 할머니는 한두 발짝 비틀거리다가 중심을 잡았다. 아찔했다
“아이고, 사장님 너무 놀라셨겠네. 아이고”
이상했다. 놀라기는 할머니가 더했을 텐데 어떻게 내 걱정을 하시는지.
“여기 가만히 앉아 계세요. 제가 주워올 거니까 여기 가만히 계세요”
할머니를 부축해서 대문까지 모셔다 드렸다. 모과도 담아드렸다.
올해 유독 모과가 많이 열렸다. 여러 사람들이 모과를 주워갔으니 올해 최고의 정원 스타다. 모과나무는 공원조성공사를 하면서 베어 질뻔했다. 다행히 나무의 가치를 알아본 감정평가사가 나무를 보전시켰다. 젊은 여자 평가사였다. 50년은 족히 지났을 옛날에, 안 씨 할아버지가 이 나무를 심었고 그 여자 평가사가 나무를 지켰다.
떨어진 모과는 땅에 묻혀 겨울을 나고 봄에 싹을 올린다. 껍질이 썩으면서 씨앗들이 다닥다닥 콩나물처럼 올라온다. 공모양의 콩나물시루 같다. 봄이 오면 모과 새싹들을 키워야겠다.
새싹은 묘목이 되고, 쑥쑥 자라 노란 모과가 열릴 때쯤 나는 이 세상에 없겠지. 안 씨 할아버지의 두 그루 모과나무가 이 정원을 넘어 공원까지 퍼진다면 얼마나 멋질까? 대대손손 모과나무 프로젝트다. 내일 바로 3월이 시작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