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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Nov 17. 2022

유산

초록 대문 집

 집 뒤로 야트막한 산이 있다. 부평동 산 37-2, 이 산에 시아버지가 슬레이트 집을 지었다. 거기서 식초를 만들어 팔았다고 했다. 서른 안팎이었을 시부모님은 이 집에서 아들 셋을 낳았다. 고향에서 동생도 올라왔다. 동생이 기거할 수 있게 또 한 채 슬레이트 집을 지었다. 아들 셋이 자라고 조카들이 태어났다. 무허가 집은 조금씩 조금씩 산을 깎아 제 몸집을 불렸다. 


 서울 사는 산 주인이 집을 철거하라고 소송을 냈다. 집을 철거하고 땅을 주인에게 돌려주라는 판결이 났다. 시아버지는 산 주인에게 집을 증여하는 조건으로 기간을 정하지 않고 그 집에서 사는 약정을 맺었다. 1972년도 이야기다. 


 이 산이 희망근린공원 조성사업으로 편입되었다. 시아버지가 지은 슬레이트 가건물은 구청 소유가 되었다. 집이 헐리고 공원 산책로가 만들어질 계획이다.  나는 이 집을 92년도에 처음 만났다. 대문 담장을 따라 밭이 있었다.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채소들이 자랐다. 키 큰 칸나와 토란이 자라서 아이들이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간이 좋지 않은 남편을 위해 시어머니는 케일도 심었다. 


 젊었던 시부모님은 이웃 사람들의 손을 빌려 방을 늘렸고 월세를 받아 생활비에 보탰다. ‘방 1, 부엌 1, 보일러실 있음’이라고 쓴 종이가 대문에 자주 붙었다. 대문은 항상 열려 있어서 방을 구하는 사람들이 집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세 살던 사람들은 대개 신혼부부이거나 자취생이거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성씨가 같은 젊은 부부가 살았다. 본까지 같았는지는 모르겠다. 젊은 부부는 자주 다퉜는데 남자가 난폭하게 구는 소리가 들리면 시어머니가 쫓아가 혼을 냈다. 남자가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 어린 딸이 있는데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여자는 말수가 없고 목소리가 작았다. 유일하게 딸을 부르거나 무언가를 시킬 때 목소리가 똑똑했다. 


 택시 운전을 하는 남자와 실내 수영장 매점에서 일하는 여자가 꽤 오래 살았다. 식구가 다섯이었는데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이 있다고 했다. 그 집 할머니가 손자를 돌봤다. 햇살이 좋은 어느 날 마당에서 일광욕을 하는 할머니와 손자를 보았다. 손자는 환자용 이동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중에 그 가족들이 이사했다는 집을 지나가게 되었다. 다가구 주택 2층이었다. 허가 난 번듯한 주택이었지만 계단이 끊긴 채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이 집 대문은 초록색 철문이다. 그 전에는 주황색이었고 그 전에는 감청색이었다. 시아버지는 대문이 녹슬지 않게 유행하는 대문 색깔로 페인트 칠을 했다. 양쪽 대문이 활짝 열리는 날은 이삿짐이 나가거나 들어오는 날이었다.  


 개척교회 전도사인 남자와 학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여자가 이사 왔다. 별스러울 것 없는 이삿짐 속에 피아노가 있었다. 트럭에서 내려져 대문을 지나 무허가 주택 허름한 방으로 피아노가 옮겨졌다. 생경했다. 여자는 친정아버지가 대학 입학 선물로 주신 거라며 조심하도록 당부했다.  ‘엘리제를 위하여’ 라거나 ‘운명 교향곡’ 같은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될 줄 알았다. 왜 그랬는지 여자는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이들 부부는 얼마 후 아기를 낳았다. 이름이 요셉이었다. 요셉이가 첫돌이 될 때까지 시어머니가 돌봤는데 항상 요섭이라고 불렀다. 


 요셉이네가 2년 간 살다 나간 집으로 길영이 형제가 이사 왔다. 길영이 엄마는 여성복에 어깨 뽕을 다는 부업을 했다. 그러느라 형제들을 밖에 나가 놀게 했다. 가을비가 내린 날이었다. 형제들이 밭에 들어가 하얗게 여물어가던 김장무를 쑥쑥 뽑아냈다. 땅이 촉촉해져서 아이들의 힘으로도 무는 맥없이 뽑혔다. 


 대문은 네 가구 식구들이 여닫으며 드나들고 이웃들이 찾아올 때 견고했다. 세 살던 사람들이 떠나고 집주인도 떠났다. 대문은 녹슬고 부식되어 덜렁거린다. 쇠잔한 그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대문 수리 업자를 불렀다. 업자는 스텐 대문으로 바꿔 달라고 했다. 낡고 닳아 노쇠한 집에 반짝거리는 스텐 대문은 어울리지 않았다. 문이 잠길 수 있게 용접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곧 헐릴 집을 바라본다. 붙들고 있을 수 없으면서 놓아지지가 않는다. 케일즙을 마시라고 성화하는 소리, 써서 안 먹는다고 고집 피우는 소리, 아이들이 노래 부르고 잘 불렀다고 박수 치는 소리, 출근하고 퇴근하는 발자국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잠자리채를 휘두르고 돌을 들춰 쥐며느리를 찾고 커다란 칸나 잎 사이에서 활짝 웃는 아이들을 사진 찍던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죽음이 진행되는 집은 어떨까 생각한다. 집이 말하는 것 같다.


  ‘천정 내려앉는 거, 벽이 부식돼서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는 거, 빗물이 스며들어 장판에 흥건히 고이는 거, 사방 벽으로 곰팡이가 피는 거 너도 힘들잖아. 우리 애태우지 말자. 나는 이제 쉬고 싶어’. 


 예순 넘도록 사랑으로 생명을 키우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듬어 안아 준 이 집을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죽음이 세계와의 단절이 아니고 삶을 향하고 있다는 말을 곱씹고 있다. 이 집은 나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싶을까? 


 사랑!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집이 내게 준 유산, 사랑의 마음으로 이 무허가 집을 떠나보내려고 한다. 

애썼어. 수고했어. 고마웠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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