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를 통해 설계해보는 다이어트 계획
이 글은 저처럼 먹는 것에 진심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항상 식탐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너 좀 후덕해졌다?
올해 초, 반년 만에 만난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건넨 첫 마디였다.
초면부터 내 몸집에 대한 코멘트를 던지는 사람은 비단 이 친구 뿐만이 아니다. 유럽여행에서 친해진 친구도 오랜만에 보자마자 전보다 몸집이 커진 것 같다고 나지막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런 말을 듣고 마음의 상처가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다. 오히려 나는 그들의 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위 친구들은 2018년의 나를 봐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막 군대를 전역한 2018년 초 당시, 공군 부대에서 꾸준한 운동과 건강하고 정기적인 식사를 병행했던 나는 탄탄하고 슬림한 체격이었다. 뱃살도 안 접혔고, 턱선도 날렵했고, 무엇보다 무슨 옷을 입어도 무난하게 다 소화할 수 있었던 내 나름의 리즈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경영학회, 취준, 사회생활과 같이 스트레스가 자동 누적되는 환경에 노출되어 온 나는 자연스럽게 군것질과 폭식을 하게 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운동은 꾸준히 병행해왔기 때문에 아주 뚱뚱이가 되지는 않았지만, 2022년 초만 하더라도 내 최고 몸무게 100kg을 찍기도 했다. (지금은 겨우 95kg으로 다시 낮춘 상황이다)
그러니 과거에 비해 몸집, 살집이 커졌으니 친구들의 살쪘다는 반응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가족 관계인 엄마한테 “얼굴이 보름달이 됐네, 살 쪘는데 저녁은 굶어라, 아침엔 바나나 1개만 먹어라”와 같은 잔소리를 5년간 들어왔기 때문에 친구들의 직설적인 발언은 오히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돼버렸다.
친구, 가족들의 걱정, 잔소리 없어도 스스로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목적을 갖고 다이어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딜레마에 빠진다.
왜냐하면 내 본능은 먹기를 정말 정말 정말 좋아한다.
❤️ 오늘 날씨도 우중충하고, 일도 안 풀리고… 이런 날에 투움바떡볶이에 닭강정 어떠니? 매콤하고 크리미한 소스가 물씬 묻은 납작당면과 겉바속촉, 매콤달콤 닭고기를 함께 먹으면 얼마나 기분이 풀리겠니!
힘든 날에는 멘탈을 회복할 수 있게 내 본능이 많은 도움을 주지만 딱히 우울하지도 않은 평상시에 나를 계속 유혹하다 보니 여간 곤란한게 아니다.
내 이성은 그런 나에게 왜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차분하게 이유를 되새겨 준다.
� 어느 헬스 유튜버나 전문가들도 살 빼기 위해서는 운동 20%, 식단관리 80% 라고 한데. 그만큼 먹는 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데 피곤하다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우울하다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이대로는 살 못 빼는 거 알잖니… 그러니까 일단 이번 주는 간식도 줄이고, 밀가루도 줄이고, 조금 더 신경써서 먹자
결국 다이어트를 위해 절대적으로 먹는 양을 줄이고, 건강한 식단으로 먹어야 한다는 점은 만고불변 팩트다. 즉, 이성은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떻게든 본능을 설득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내 의사결정권의 90%를 본능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이 아무리 좋은 방향을 제시해도 본능은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편한 대로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만다. 그래서 아무리 탄수화물 줄이기, 샐러드 먹기, 가볍게 운동하기 등이 건강한 삶을 위한 습관임을 알면서도 항상 작심삼일이 되버리고 만다. 위 행동들은 본능적으로 귀찮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원푸드 다이어트, 공복 다이어트, 레몬 디톡스 등이 대중적인 식이요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다이어트 방법들은 지멋대로 행동하는 감성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었다. 특정 종류의 음식만 먹는 것만으로도 살이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실천하기 쉽고, 단기간만 유지하면 된다는 점에서 빠른 효용도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사촌누나의 공복 다이어트 경험담을 듣고 스스로 실천해본 적이 있다. 우선 첫 삼일은 극도로 소량만 먹거나 아예 굶어야 했고, 그 뒤 2일은 샐러드, 주스 등 건강식으로만 식사하면 됐고, 나머지 2일은 과식하지 않는 선에서 본래 식단으로 돌아오면 된다. 그렇게 스스로 실천해봤고, 초기에는 먹고 싶다는 생각이 온종일 나를 괴롭혔지만, 이내 곧 절제할 수 있게 됐고, 생각보다 쉽게 공복 다이어트를 완수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2kg 감량에 시각적으로도 뱃살이 조금 들어가긴 했다.
하지만 이러한 다이어트는 본능 달래기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다이어트의 본질에서 멀어지게 한다. 일단 영양학적으로 좋지 않다. 사람이 하루 활동에 필요한 최소 에너지와 영양을 공급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 결코 건강에 좋을 리 없다. 무엇보다 한 번 공복 다이어트와 같은 식이요법은 결국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한 번 공복 다이어트 한 것으로 앞으로 있을 과식, 폭식의 유혹을 참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돌고 돌아 다이어트는 정석 루트 밖에 답이 없다는 참혹한 현실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조금 더 건강하게 먹고,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움직이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본능은 건강함과는 반대로 우리를 움직인다. 마치 일부러 꼬이게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악질 청개구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본능은 악의 없이 우리가 그저 행복할 수 있게 움직이게 만들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본능을 타이를 수 있을가?
<스위치>의 저자 칩 히스와 댄 히스의 말에 따르면 사람의 의사결정은 “감성(본능)이라는 이름의 코끼리, 이성이라는 이름의 기수, 계획이라는 이름의 지도 3가지를 잘 활용해야 행동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여태까지 강제로 코끼리(본능)가 원하지 않는 방향 대로 무작정 고삐를 틀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의 순수 힘민으로는 코끼리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코끼리를 잘만 설득하고 구체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 누구보다 가장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다이어트를 실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고민해야 할 부분은 코끼리를 어떻게 건강한 다이어트라는 목적지로 달리게 할 것이냐다.
일단 코끼리를 움직이기에 앞서 내가 어디로 향할지를 잘 생각해보자. 다이어트는 어디까지나 건강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다이어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니 내가 다이어트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 정확히 어디에 도달하고 싶은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도 헐떡이지 않을 정도의 건강을 되찾고 싶어"
"딱 맞는 티셔츠를 입어도 뱃살이 신경 안 쓰이게 살을 빼고 싶어"
"틈만 나면 군것질을 하는 나를 자제하고 싶어"
이 정도만 생각하더라도 구체적인 계획을 짜긴 조금 더 수월해진다.
앞서 얘기했듯이 먹기를 좋아하는 나는 군것질 습관을 고치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무리 갑자기 과자, 음료수를 끊으려고 해도 마음의 틈이 생길 때마다 나는 편의점에 들렸고 결국 “신상품은 못 참지”하면서 다시 군것질을 시작하게 되는 순환을 반복하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스위치>를 접하게 된 나는 어떻게 접근해야 군것질을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해보게 됐다. 내가 어떤 생각과 어떤 상황에 군것질을 찾게 됐는지 되짚어본 결과, 항상 퇴근이나 약속을 갔다 온 후 집 앞의 편의점을 무조건 1번은 꼭 들렸었다. 그리고 편의점을 들리는 이유도 신상품을 보거나, 배고파서 무언가를 사먹기 보다는 그냥 무심코 방문하는 경우도 많았다.
여기까지 분석을 마친 나는 그제서야 ‘군것질을 줄이기 위한 계획’은 ‘무심코 편의점을 방문하는 행동’에서부터 변화를 주면 되겠다는 구체적인 방향성을 마련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의문을 들 수 있다
❓ 시작점만 알았을 뿐, 무리한 계획을 짜면 결국 코끼리는 다시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끓는 물 속의 개구리” ...
물론 각 성어가 내포하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전반적인 맥락은 점진적으로 조금씩 쌓아둔 것이 나중에는 큰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이어트와 같은 행동 변화도 마찬가지다. 본능이 거부하지 않을 정도의 습관을 조금씩 길들이다 보면 나중에는 본능도 모르게 기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군것질 줄이기를 위해 시작한 사소한 변화는 “편의점 앞에서 한번 더 고민해보기”였다. 만약 무의식적으로 들어가려 했던 것이면 마음을 다잡고 편의점을 지나쳤다. 반면 초코칩을 사고 싶다거나 신상품을 보고 싶다는 명확한 의도가 있었다면 명확한 목표에 따라 편의점을 사용했다.
편의점이 눈 앞에 보이는 모든 상황마다 의식적으로 조절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편의점 방문 의도를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나는 결과적으로 월마다 군것질에 썼던 지출비를 17만원에서 7만원으로 줄일 수 있었다.
군것질을 줄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로 시작해서 나의 행동패턴을 되돌아봤고, 이에 맞게 작은 변화점을 줬을 뿐이다. 하지만 작은 습관으로 시작한 군것질 줄이기는 실제로 군것질비를 줄였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장 이 결과물이 나의 몸무게를 줄이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일궈낸 긍정적인 변화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스스로 잘 조절하지 못했던 군것질도 이렇게 잘 참았는데, 살 빼기라고 어려울까.
이러한 변화를 토대로 나는 식습관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지금도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보고 있다. 다이어트의 천적 중 대표적인 탄수화물, 특히 면과 빵 같은 밀가루 기반의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내 주요 식단에 탄수화물 줄이기를 목표로 세세한 변화를 주고 있는 중이다. 나에 대한 여러 고민 끝에 나는 “라면 1봉지 덜 먹기”와 “상추랑 파스타랑 무조건 같이 먹기”를 실행하고 있다. 시작한지는 이제 겨우 2주 밖에 안 됐기 때문에 당장 대단한 결과를 보여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2주밖에 경과하지 않았는데 공복 몸무게가 95kg에서 92.8kg까지 줄어든 것을 보니 앞으로 더 습관만 잘 들이면 80kg대도 충분히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