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영민 Apr 11. 2024

이 아파트, 내가 침 발라놨어

내미안, 좌이, 더솝, 할스테이트, 와이파크, 놋데캐슬

 여기, 참 좋다. 놀이공원 만든 솜씨로 산책로랑 정원을 잘 뽑았네. 이번 생에 우리는 이런 아파트, 살 수 없겠지. 서울 브랜드 아파트,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들 부르주아 아닌가, 너나 나나 물려받은 재산 없이, 지방에 아파트 하나 있으면 성공한 거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동네에 발이 묶인 터라, 남편과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집 근처를 산책했다. 우리가 잠시 빌려 살고 있는, 스무 살 된 아파트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에서 제일 멀쩡한 주거지였다. 골목에 잘못 들어서면 길을 잃을 수 있는, 노동자들의 값싼 주거지에서 이른바 뉴타운으로 천지개벽하기 전까지는.


 이런 아파트 한 채, 얼마나 할까. 보나 마나 엄청 비싸겠지.

 부동산 쇼윈도에 붙은 종이에 16억, 17억이 즐비해서 헛웃음만 났다.

 우리 둘이 뼈 빠지게 벌어도 저런 돈, 만져나 보겠어. 그들만의 세상에는 신경 끄자. 그래, 이 동네에서 최대한 임대로 버티다가, 애들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 기숙사해 주고 지방에 내려가 살자.




 자기야, 우리 아파트, 리모델링 추진한대. 더솝 건설사 알지? 거기서 리모델링한 단지 다녀왔거든. 차암 좋더라, 같이 지어졌던 옆 단지랑 엄청 비교돼. 리모델링하면서 지하 주차장도 3층까지 파고,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 탈 수 있대. 기술 참 좋지?


 30평 아파트 골조만 남기고 부순 다음에 앞뒤로 증축해서 40평 만들었대. 창도 독일산에, 강남 조합답게 최고급 자재를 썼다네. 시스템 에어컨 방방마다 넣고, 알파룸도 만들고. 우리 아파트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2019년 코로나19가 휩쓸기 전, 나는 눈이 벌겋게 뒤집혀 집을 샀다. 1.5기 신도시쯤 되는 모 광역시의 대단지 아파트에서 6년이나 전세를 살고 난 후였다.


 2017년 말 집주인이 갑자기 바뀌었다. 새 집주인은 집을 보지도 않고 샀다. 별 미친놈이 다 있군, 생각했지만 한 달 후 전세 계약을 갱신하려는데 전세를 4천만 원이나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알고 보니 그 자는 부동산 가격이 저평가된 지역을 휩쓸고 다니며 아파트를 매수한 후 시세를 올려가며 갭투자를 하는 부동산 커뮤니티의 일원이었다.


 한 달 전에 내가 집을 샀다면, 4천만 원에 전세 계약을 갱신하는 대신 5천만 원으로 집주인이 되었을 텐데. 알고 보면 집주인보다 임차인인 내가 이 집에 더 많은 자본을 댔다는 게 너무 분해서, 잠도 잘 안 왔다. 그러나 바쁜 직장 생활에, 열 살도 안 된 꼬맹이 둘을 건사하느라, 며칠 만에 분한 감정을 잊고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내가 코를 고는 동안에도 아파트 값은 오르고 있었다.


 억울한 전세 계약의 만기를 채워갈 때쯤, 갑자기 서울로 발령나서 그 도시를 떠나게 되었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치는 심정으로 온 우주의 대출을 끌어다가 집을 샀다. 그 단지의 로열동에 로열층으로, 앞뒤 베란다 확장하고 새시랑 싱크 갈고 중문까지 설치된 놈으로다가.


 부동산이라고는 책 한 장, 유튜브 한 편 본 적 없어서, 더없이 신중했어야 할 인생 최대의 결정을 시원하게 저질렀다. 그렇게 무식하고 용감했기에 그 아파트가 역사상 최고점을 찍었을 때도 쿨하게 놓쳤고, 내 집 한 채 있으니 직장 생활이나 착실히 하자, 부르짖으며 눈 감고 귀 막고 살았다.




  리모델링의 단꿈에 젖어서 예비조합원들과 오픈 카톡방에서 설계도면, 예상 분담금을 진지하게 논의했더랬다. 현관문 열였을 때 화장실 보이는 구조는 싫다, 분담금이 부담되는 분들은 중간중간 시세 오를 때 팔고 나가시면 되는데 왜 동의 안 해 주냐, 등등.


 정치권 포퓰리즘인지 부동산 카르텔의 농간인지 모르겠으나, 웬만한 노후된 주택은 뜯어고칠 수 있도록 허용해 주겠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열기가 사그라들면서 지방 아파트 갱생의 꿈은 요원해졌다.


 팔아야 했다.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부동산 유튜브를 재생시켰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샤워하는 중에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부동산 일타들의 말씀을 두루 경청했고, 재건축, 재개발, 분양, 경매 분야별 도서를 윤독하며 공부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내 결론에 확신이 서지 않아, 하필 크리스마스이브에 열리는 부동산 특강에 족집게 강사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무조건 파셔야죠." 그 답을 듣기 위해, 남편과 아이들을 떼어 놓고 집을 나섰으며, 백화점 문화센터 강의실에 앉아서 5시간을 버텼고, 엉덩이가 배기는 걸 느낀 지 두 시간쯤 되었을 때 극성스럽게 손을 들어 질문 기회를 쟁취했던 것이다.


 목표는 4억 5천이었다. 과거의 최고가에서 1억은 내려야 팔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최근 하락장에서 찍힌 적 없는 최고가로 책정해 본 것이었다. 어려운 상황인 걸 알면서도 한껏 욕심을 냈다.


 우리 집은 로열동, 로열층에, 내부 수리도 다 되어 있잖아,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그 값인 이유까지 갖다 대면서. 파는 사람의 마음은 그러했다. 임차 계약 만기는 다가오는데 집을 팔려고 내놨으니 계약 갱신도 못 하고, 집 사겠다는 사람은 없고. 급기야 임차인을 내 보내고 빈 집으로 둘 각오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집을 팔았을까요, 못 팔았을까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기견을 입양한 이기적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