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시험, 기초군사훈련, 그 이후
딱 이맘때였다. 1월의 어느 날, 국군간호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집을 떠났다. 그후 4년이 넘게 걸린 시험에 통과하여 물리적, 경제적으로 독립한 나는, 전국 각지로 발령받아 이사 다니면서 결혼도 하고 내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20년 전 그날 이후 다시는 부모님 슬하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내가 열심히 눈밭을 기어 다니고 제식동작을 익히는 동안 고등학교 친구들은 졸업식을 했다. 다른 학교에 다니던 동생이 나의 고등학교 졸업장과 졸업앨범을 받아왔고, 학교 정문 위에 붙은 대학 합격 현수막에서 내 이름을 보았다고 했다. 친구들과는 연락이 끊겼다. 2학년 때쯤 어렵게 다시 연락이 닿았지만, 연애, 옷, 화장품이 관심사인 아가씨들과 공감할 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
사관학교에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으나 집안 사정으로 떠밀렸다고 생각했던 나는, 혼자를 고집하며 짐 가방을 짊어지고 대전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대전에 온 것은 사관학교 2차 시험 이후 두 번째였다. 1,2차 시험에 합격하고 수능점수를 합산하여 최종 선발된 학생들은 '기초군사훈련'(이하 '기훈')이라는 관문을 맞이하게 된다. '기훈'에 들어가며 학교 정문에서 다른 아이들이 부모님과 눈물의 이별을 할 때, 나는 세상과 이별하는 듯한 감정을 애써 떨치려 노력했다.
기숙사 2인실에 배정받았다. 내 자리에는 '군사학'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교재 몇 권과 학용품이 올려진 책상과 의자, 온돌방 바닥에 깔린 3단 매트리스와 얼룩무늬 이불, 앞으로 내가 입어야 할 전투복이 놓여 있었다. 전투화, 운동화, 운동복, 속옷, 양말까지 다 준비되어 있었고, 치수가 맞지 않으면 우리 분대를 담당하는 예쁜 '생도' 언니에게 이야기하면 교환해 주었다. 받은 물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반짇고리를 주며 물건에 일일이 이름을 수놓으라고 했다. 가정 과목 숙제로 바느질을 해 본 게 전부인 나는, 손을 찔려가며 팬티와 양말에 내 이름을 새겨 넣었다.
내가 가져온 물건과 입고 온 옷은 몽땅 빈 상자에 넣으라고 했다.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예쁜 '생도' 언니들이 무서운 '조교'로 돌변한 이후 귀청이 떨어져 나가게 이것저것 명령을 해 댔다.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집 주소를 급히 써넣은 택배 용지를 상자에 부착했고, 시키는 대로 짐 상자를 복도에 내놓았다. 그 상자를 며칠 후 배송받은 우리 가족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기훈' 도중 탈락하는 사람이 많았다. 앞방에 배정받은 키 크고 예쁘장한 여자아이는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한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울고 불며 짐을 쌌다. 아마 그 아이의 부모님은 부산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대전으로 차를 돌리셔야 했을 거다. 우리 분대 8명 중 절반이 일주일 만에 예비 합격자들로 교체되었다. 분대원 한 명의 표정이 요 며칠 무척 어둡다. 아마도 퇴소를 고민하는 것 같다. 개구리 무늬 옷을 입고 로봇처럼 걷고, 밥을 먹는 내내 정면을 주시해야 했고 숟가락질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웃는 건 형벌이 뒤따르는 범죄행위였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혼이 나간 상태로 살았다.
우리는 한때 사관학교 시험을 통과할 만큼 공부를 곧잘 했고 대체적으로 건강했으며 가족과 친구들 곁에서 사랑받기를 좋아하던 소녀들이었다. 우리는 남들이 휴가를 떠나는 7월 말에 국어, 수학, 영어 과목 지필시험을 치렀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전체적인 모습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생도를 선발하는 시험이다 보니 조금 더 까다롭게 느껴졌다. 국어 시험에 일동장유가, 기미독립선언서 등 한자로 된 지문이 여러 개 나와 진땀을 뺐었고, 가뜩이나 못하는 수학 시험에서 항공모함과 전투기 사이의 거리를 구하는 삼각함수 문제를 풀어야 했으며, 영어 시험에서는 유명한 장군이나 전투에 대한 일화를 해석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사관학교 1차 시험은 전국 고사장에서 4개 사관학교 합동으로 치러진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한 옆반 친구는 국군간호사관학교에 지원한 나와 동일한 시험을, 같은 시각, 다른 고사장에서 봤다. 우리 엄마는 나를 1차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기다리는 동안, 목소리 큰 다른 엄마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단다. 자기 딸이 체육학과에 수석입학할 정도로 체력검정에는 자신이 있다고, 사관학교 합격은 따 놓은 거나 다름없다고 했단다.
그 친구가 내 동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차 시험에 통과했다면 2차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2차 시험에서 체력검정과 면접을 1박 2일로 치르게 된다. 나는 대전에 사는 아버지 친구 댁에 머물면서 첫날은 체력검정을, 둘째 날은 면접을 치렀다. 체력검정에서 탈락하게 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내쳐지기는 싫어서 이를 악물었다.
체육에는 영 자신이 없고 숨쉬기와 걷기가 운동의 전부였던 나에게, 체력검정은 심리적으로 무척 부담이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체육시간은 아마도 수능공부하라고 주어지는 자습시간과 같았다. 체력검정을 대비하기 위해서 야간자율학습 직전에 혼자 줄넘기, 운동장 달리기를 했다. 사관학교에 원서를 넣었던 친구들과 함께 쉬는 시간마다 교단 턱에 대고 팔 굽혀 펴기 연습도 했다. 윗몸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 오래 달리기 세 종목에, 우리 때에는 시험 종목이었던 유연성 검사, 멀리뛰기까지 총 다섯 개 종목에서 간신히 통과하였다.
사관학교 동기 중 딱 한 명이 체대입시학원에서 체력검정을 준비했었다고 하여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렸다. 요즘은 단기간이라도 체대입시학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행인 것 같다. 그러나 체육을 전공하려는 학생과 같은 수준으로 준비해야 하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체력검정은 통과만 하면 되고, 최종 점수에 반영되지 않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하겠다. 차라리 여름방학 전까지는 국어, 영어, 수학 공부에 전력을 다하고 2차 시험 이후에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하여 최종 합산 점수를 높이는 것이 현명하다.
나도 입시를 치르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생도 선배나 학교 출신 장교들에게 물었다. 체력 때문에 학교생활 도중에라도 포기하거나 탈락하는 경우가 많지 않냐고. 그들이 고개를 가로저을 때,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사관학교 입시, 4년의 학교생활, 16년의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체력으로는 꼴찌를 다투었던 내가 말하는 것이니 믿으시라. 체력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노력한다면 분명히 는다.
사관학교는 4년 간 한 푼도 받지 않고 나에게 대학교육을 제공했고 나를 입히고 먹였다. 그리고 나는 세금으로 받은 지원의 대가를 온전히 치렀다. 1~2년마다 전국으로 이사를 다녔다. 몇 개월짜리 승진 연수나 파견이라도 가게 되면 아이들과 이사할 엄두가 나지 않아, 아이들을 어딘가에 맡기고 혼자 다녔다. 주말이라도 다른 지역에 가려면 매번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내가 소속된 부대에 사정이 생기거나 당직 근무가 있으면 다른 지역에 있는 가족을 보러 갈 수 없었다. 신종 전염병 대응, 국가 재난 등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면 가족을 두고 그 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평범한 군인의 삶은 이러했다.
생도 때부터 충분히 연습을 했던 일이다. 6개월마다 기숙사 방을 바꿨다. 룸메이트도 매번 바뀌었고 3층에서 1층으로, 다시 4층으로 살림살이를 몽땅 옮기는 이삿날은 대혼란이었다. 결국 내가 터득한 것은 물건을 가급적 줄이고, 사람과 장소, 그 어디에도 적당한 수준 이상의 정(情)을 붙이지 않는 것이었다.
사관학교 면접시험 때 누군가가 경고했던 것 같다. 자주 옮겨 다니는 삶, 때로는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고 국가의 일을 하기 위해 어려움도 무릅써야 하는 삶. 괜찮겠냐, 어린 너는 진정 이걸 알고 지원한 거니,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그 의미를 이해하고 지원한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사관학교 4년의 생활이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해 왔고, 나와 동기들은 서서히 이런 삶에 준비된 단단한 마음 껍데기를 한 겹쯤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방식이나 태도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거듭난다'라고 한다. 나는 사관학교의 관문을 거치며 가정에 의존하던 고등학생에서 생도로, 장교로, 성인으로 거듭났다. 과거를 벗고 새로운 모습이 되기 위해서 크고 작은, 수많은 관문을 넘어야 했다. 4년의 시험 끝에 졸업하는 날, 장교가 되는 날, 우리는 활짝 웃었다. 마음이 그 깊은 곳까지 단단하게 영글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기에.
* 사진 : Unsplash (Ralph (Ravi) Kay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