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부부싸움
한 동안 어째 조용하다 싶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사소한 말싸움에 판이 커졌다. 우리 부부의 부부싸움은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이 심히 창대하게 끝나서(성경말씀을 이렇게 인용해서 죄송;;) 남편은 이틀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카톡에도 답이 없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다가, 나중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고, 시간이 더 흐르니 꽤씸한 마음도 들었다.
서로의 잘잘못을 떠나서, 남편이 없는 주말 이틀 동안 남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일단 교회 봉사를 하러 가야 하는데 아이를 데리고 갈 사람이 없었고, 가득 넘치는 음식물쓰레기부터 해서 분리수거 종이박스들까지 남편이 당연히 해야 할 집안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남편과 크고 작은 이슈들과 결정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는데 의논할 상대가 없었고, 아이는 아빠는 언제 오냐고 계속 물었다. (물론, 남편의 방법이 옳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고, 나중에 이야기할 때도 이 문제에 대해서 앞으로는 절대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점을 명확하게 이야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회사에 진짜 일이 생겨서 일을 처리하느라 회사에서 밤을 새웠다고는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핑계다라는 생각이 여전히 든다.) 이제는 남편의 자리뿐 아니라, 아빠의 자리를 감당하는 큰 자리였던 것이다.
아, 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구나. 내 삶이 힘들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수고가 당연했던 것은 아니었구나. 남편이 그토록 원하던 인정과 고마움의 표현이 필요한 거구나.
자기 나름대로는 한다고 했는데 그것들에 대해 인정받고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함과 억울한 마음들이 뒤섞여 있었다고 남편은 나중에서야 이야기했다. 출산과 육아의 과정을 거치면서 엄마인 내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커서 남편의 섬김과 배려가 당연하다고 여겼었고,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들만 도드라지게 눈에 띄었다. 남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배려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려고 노력하면서 부부끼리는 왜 그러지 못했는지.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전에도 부부상담을 한번 받아보자고 말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일단은 시간을 내지 못했고,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또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서 매번 무산이 된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은 개인 혹은 부부가 어떤 문제 상황에서 감당하기 힘들 때 '상담'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은 감사한 여건이라고 생각을 한다. 상담 자체의 효과도 있겠지만, 그 시도 자체가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이 가진 상황에 대한 객관화된 문제 인식이 있고,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며, 상담을 지불할 만한 시간과 비용의 여유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정말 상담이 필요한 경우에도 도저히 상담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더 많다. 깊은 상처가 있다면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약을 바르고(?) 지금 바로 현재의 삶을 살아내야 할 때가 훨씬 더 많다고 느낀다. 개인과 가족 내에서의 감당해야 할 나의 역할과 무게가 있지 않은가. 계속 내 상처와 서운함만 붙들고 살 수는 없으니. (다만, 전문가들의 조언은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와 상처가 일상생활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이 되는 경우에는 전문적인 상담이나 진료를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조언한다.)
서로의 감정이 격해지다 보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 혹은 그 직후의 서운했던 일들까지도 고구마 줄기 캐듯 계속 계속 나온다. 나 역시 과거에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치로 보건대, 그런 대화의 방식은 서로에게 크게 설득력이 없고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런 레퍼토리가 나올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가 잘못했구나'가 아니라, '또 시작이다'라는 생각이 솔직히 더 먼저 들기 때문에. 이제는 40대 중반을 넘어서니 여성, 남성 호르몬이 역전이 된 것인지 남편은 좀 더 감정적으로 말하고 나는 더 이성적으로 말하게 되는 듯하다.
굳이 내 입장에서 변명을 해 보자면, 엄마가 되고부터는 나 자신이나 아내의 자리보다 매사 모든 일에서 '엄마의 자리'가 앞선다. 눈을 뜰 때부터 잘 때까지 모든 관심과 시선이 아이에게 가게 된다. 그래서 행복하고 기쁘기도 하고, 버겁고 지치기도 한다. 남편에게까지 갈 에너지와 힘이 부족했다. 서로 그것을 이해하고 넘어가다가도 한 번씩 터지게 되는 것 같다.
엄마는 결혼과 출산, 육아로 삶 전체가 바뀐다. 만나는 사람, 하는 일, 체형과 몸 상태, 라이프스타일까지. 아빠 역시 그러하지만 상대적으로 엄마는 그 변화의 폭이 더 크다. 아빠는 아이와 분리되어 여전히 사회 생활을 하고 기존의 패턴이 있어 자기 자신을 잃을 정도의 변화는 아니다. 그러나 엄마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스케쥴과 환경, 만나는 사람이 달라진다. 점점 자기 자신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과는 너무 다르다는 한탄을 할 수 있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변하게 된다.
산전수전을 겪은 부부의 사랑이 어찌 신혼때와 같을 수 있을까.
그때는 사랑의 색은 무조건 핑크빛만 있는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그 색이 어찌나 다양하던지.
이런저런 풍파에 치여 살다 보니 전혀 아니다 싶은 회색빛도 또 하나의 사랑의 색깔임을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었다.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 색이 달라지는 것 일뿐.
다시금 친절하고 배려 깊고, 인정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잔소리를 하지 않는 가시적인 생활(?)이 시작된다. 계속하다 보면 진심인지 가식인지 가끔 헷갈린다. 그러다 진심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