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본 동생은 기겁을 했고.
교회에 도착한 엄마는 지하 교육실로 들어서자 신발을 벗어 던지더니 무릎 꿇고 울부짖었다.
사람이 울부짖는다는 것은 책 속에서나 읽었던 표현인데 그게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니. 그것도 주인공이 엄마라니.
엄마의 울부짖음은 주님 제가 욕심에 취해서 돈에 눈이 멀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어요. 주님 이 죄인을 용서해 주세요.
‘엄마…. 지금 주님이 뭘 용서해 줘,
엄마가 힘들어 울면서 뭘 용서해 달라는 거야….‘
엄마의 울부짖음이 이해가 가지도 않았고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그냥 엄마의 울부짖는 기도가 끝날 때까지 옆에 앉아 있었다.
엄마의 피해 금액이 컸던 이유.
엄마는 처음에 당신의 이름으로 투자를 했고 추가 수익까지 발생하고 있으니 이게 진짜 돈이 되는구나 싶었을거다. 그러니 오지랖 넓은 우리 엄마는 주변에 형편 어려운 지인들이 떠올랐고 이들의 이름으로 엄마 돈을 써가며 투자를 한 것이었다. 투자 원금을 제외한 추가 수익은 다 그 지인들의 몫으로 주고 싶어 엄마가 엄마 돈으로 확장해 가며 투자금을 늘렸던거다.
어려운 지인들이 누구냐, 같은 교회를 섬기는 사정 딱한 권사님, 집사님, 세 자매 중 엄마와 큰 이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막내 이모, 엄마 조카인 이혼한 사촌 언니까지 대상도 많았다. 이 사람들의 이름으로 다단계 폰지 사기 앱에 가입을 하고 엄마 돈을 밀어 넣었던 것.
그들은 엄마의 설명을 듣고 의심의 여지도 없었을테고 그저 투자하는 돈도 우리 엄마의 돈이었으니 명의를 못 빌려줄 일도 없었나 보다.
듣다 답답하고 화가 나서 엄마한테 퍼부었다.
"엄마, 그럴 돈 있으면 나 좀 주지 그랬어, 나랑 엄마 아들 좀 주지,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못 챙겨서 안달이 났던 거야!!!!!!"
"니들은 젊고 알아서 잘 벌잖아."
"엄마!!!!! 잘 벌긴 뭘 잘 벌어! 안서방이랑 나랑 둘 다 월급쟁인데!!"
"그래도 니들 앞으로 된 집은 있잖니, 네 이모는 그 나이 되도록 집도 없어. 그리고 제주도 사는 OO이도 이혼하고 혼자 애 키우며 외숙모랑 사는데 엄마가 도와줘야지 누가 도와주니."
"조카까지 엄마가 왜 도와줘!!!! 자선사업가야, 재벌이야?? 알아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 엄마가 왜 도와준다고 이런걸 했어!!!“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엄마 돌아가신 삼촌 덕분에 공부해서 직장 얻은 거야. 그래서 평생 먹고살 걱정은 안 했고 죽을 때까지 연금 받잖아. 삼촌 살아 있었으면 모를까 삼촌이 먼저 갔는데 외숙모랑 OO이 한 테라도 갚아야지."
"그걸 왜 이제 와서 이런 방법으로 갚아!! 갚기는!!"
"......."
눈도 풀리고 넋이 나가있던 엄마가 나랑 대화를 하며 잠시 정신을 되찾은 것 같았다.
한참을 토해내듯 울며 기도하다 멈춘 엄마였다.
이제 집에 가자고 했다. 엄마 아들이 아빠한테 알아듣게 설명해서 아빠도 이제 알게 됐을 거고 엄마한테 뭐라고 할 일은 없을거라고 걱정 말고 집에 가자고 하며 엄마를 모시고 친정집으로 왔다.
여전히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아빠는 우리 모녀가 들어와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각자의 방에서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잤다.
밤새 온갖 잡념으로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아침 7시쯤이었나 동생이 와서 나를 깨운다.
"누나, 일어나 봐. 엄마 미친 거 같아. 엄마 혼자 헛소리 한다. 부엌에 가봐. 하... 미치겠다..."
엄마가 주방에 있다는 동생 말을 듣고 나가보니 엄마는 싱크대 앞에 서서 주절주절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방언 기도 같았다.
한 평생 신앙생활을 한 권사님인데도 방언 기도는 안 했던 엄마인데 갑자기 무슨 주님의 은총을 입은 건지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로 방언 기도를 쏟아내는데 눈도 감지 않고 가만히 서서 허공을 향해 그러고 있었다.
"엄마, 뭐 하는 거야."
엄마의 방언 기도가 멈췄다. 동생 방에서 소리가 나 가보니 동생이 울고 있다. 엄마 왜 저러냐면서. 다 큰 남자애가 펑펑 운다. 나도 안우는구만.
"야, 울긴 왜 울어. 엄마 기도하는 거야. 방언 기도..."
"저게 방언기도로 들리냐? 내가 듣기엔 그냥 미친 거 같은데? 엄마 지금 정신 놨다. 당장 정신과 데려가야 돼. 난 엄마가 아빠 알고 난리칠까봐 벌벌 떠는 줄 알고 내가 상황 다 정리했는데 엄마 왜 저러는 거야? 내가 모르는 뭐가 더 있어?"
"있긴 뭐가 더 있어, 힘들고 괴로우니까 저러는 거지."
"아니, 생전 저런 기도 안 하던 사람이 왜 저러고 서있냐고!!!"
결국 동생 입에서 욕이 나왔다.
엄마는 주방에 서서 방언 기도만 내뱉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잠을 자는 건지 눈 뜨고 있는 건지 또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빠의 아침 식사는 내가 챙겼다. 아빠한테 더 설명을 했다. 엄마가 이런 일을 처음 겪으니까 충격이 큰 거 같다고. 내일 병원도 모시고 가볼 테니 아빠가 이해 좀 해달라고 했다.
아빠는 엄마의 저런 행동이 이해 안 된다며 돈은 있다가도 없고 그런 거지. 돈 잃었다고 저러고 앓아눕고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된 거냐고 혀를 찼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남편, 앓아누운 아내를 위로하고 같이 이겨내자고 다독거리는 그런 남편은 우리 집에 없었다.
일요일이었기에 동생과 엄마를 모시고 교회를 갔고 결국 우리 셋이 예배당 의자에 앉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엄마는 자신이 죄인이라며 울었고 나와 동생은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괴롭고 안스러워 울었다.
예배를 마치고 담임 목사님이 위로도 해주고 기도도 해주셨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밤, 난 서울로 돌아왔고 동생은 다음날 회사에 휴가를 내고 엄마를 모시고 정신과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