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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나 Nov 01. 2023

05. 우울증과 무기력증은 세트

엄마는 어린애가 됐다

엄마는 당신이 다단계 사기 피해자란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엄마에게 영업을 한 전 직장 동료도 같은 피해자라며 두둔했고 판단력이 많이 흐려졌으며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였다.


일이 생기고 나와 동생은 엄마의 흐려진 판단력으로 또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는 걱정에 엄마의 휴대폰을 수시로 챙겨봤다. 더 솔직히 쓰자면 엄마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엄마의 휴대폰을 주기적으로 검사했다.

엄마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문자, 카카오톡 메시지, 통화 목록 등.


보면서 나를 환장하게 만든 건 엄마가 소개해서 투자를 했던 엄마의 지인들에게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를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원망을 사기도 전에 엄마 선에서 그들에게 투자금을 보내주기 위해 각종 보험 해지, 마이너스 통장 등을 사용해 최대한 현금을 만들어 몇 백씩 지인들에게 돈을 보내며 거듭된 사과를 한 흔적이었다.


그러고 나서 엄마의 통장에는 몇만 원이 채 남지 않았다. 그 후로도 엄마는 몇 달에 거쳐 매월 20일 연금이 입금될 때마다 지인들에게 빚도 아닌 빚을 갚고 있었다. 멀쩡한 정신도 아닌 상태에서 지인들의 피해를 최대한 변제하려고 순간마다 정신을 붙들고 애를 썼던 흔적들이 보였다.



엄마는 당신의 집에서 일상생활을 하지 못했다. 몸은 자꾸 눕게 되고 식욕도 잃었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이 됐다. 동생이 모시고 간 정신과에서 몇 가지 검사를 거쳐 엄마에게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내리고 약을 처방해 줬지만 약효는 전혀 나타날 기미가 없었고 하루가 다르게 엄마만의 세상으로 혼자 더 들어갔다.



집안 꼴은 엉망이었고 아빠는 혼자 세탁기를 돌리고 냉장고에 다 쉬어 빠진 김치와 몇 가지 레토르트 식품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종일 누워있다 갑자기 일어나 찬송가를 부르고 방언 기도를 하는 엄마를 보면서 아빠는 고통스러워했다. 아니 짜증스러워했다.


엄마가 찾았던 병원 원장님은 엄마에게 냉정하게 말했다고 했다. 진짜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기쁨으로 나오는 방언 기도가 아니라면 그 행동을 멈추라고. 지금 당신에게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라고, 그리고 처방해 주는 약 잘 먹고 집에 누워 있지만 말고 산책하며 햇빛을 보라고.


우울증에 대한 경험이 없었어도 흔한 병이고 마음의 감기라니 처방받은 약 잘 챙겨 먹으면 엄마의 증세가 호전될 줄 알았다. 가족 아무도 경험이 없으니 엄마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고 얼른 약발(?)이 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는 점점 애처럼 되어갔다. 아빠가 외출한 집에 혼자 있기 무서워했고 주말이 되어 내가 와서 식사를 차려주기만을 기다렸다. 평일에는 당신 집에 있는 것도 힘들어해서 가까이 사는 이모네로 가 엄마의 언니와 형부 신세를 졌다. 이제와 생각하면 이모와 이모부도 대단하고 많이 감사했다. 그 당시에는 감사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엄마는 눈동자가 풀려있고 이모는 그런 엄마를 어떻게든 정신 차리게 해 보려고 애쓰고, 이모부도 엄마와 같이 산에 올라주고 어깨도 주물러 주고 별 일 아니라고 평소답게 털고 일어나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보다 이모부가 훨씬 나았다.


나는 토요일 아침 일찍 전날 새벽 배송으로 주문해 둔 식재료를 한 짐 챙겨 차에 싣고 남편과 아이와 친정으로 내려가 이모네를 들러 엄마를 차에 태우고 본가로 가는 것으로 주말이 시작됐다. 병원도 아니고 요양원도 아닌 이모네 집으로 엄마를 찾으러 갔다. 토요일 이른 아침이면 일어나기 무섭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언제 내려오니? 출발했니?"


이 전화를 받는 게 괴롭고 미칠 거 같았다. 이런 상황을 주말에 세네 번만 반복하면 나아질 거라 믿었다. 너무 힘든 이 상황이 곧 끝날 거라고 엄마도 금방 전처럼 괜찮아질 거라 기대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친정으로 향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 내려가서 일요일 밤늦게까지 친정에서 보내고 다시 우리의 일상을 살아내러 서울로 올라왔다. 외갓집 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유치원생인 아이도 전보다 자주 가는 할머니네가 썩 반가운 눈치는 아니었다. 전처럼 할머니가 놀아주는 것도 아니고 엄마인 나는 집안 일 하고 식사 차려내느라 바쁘고, 남편도 같이 처갓집의 집안 청소와 건조기에 들어있는 빨래를 꺼내 게어주었다.


그 와중에 우리 엄마도 사위에게 미안했는지 한마디는 건네더라.


"안서방, 이런 꼴 보여서 미안해. 내가 지금 좀 그렇네. 나중에 맛있는 거 해줄게."


남편은 괜찮다고 말하며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친정에서 올라오는 일요일 밤에 우리가 나서면 엄마는 아쉽고 슬픈 눈빛을 비췄다. 눈이 말하고 있는 거 같았다. 내가 안 갔으면 하고... 엄마 눈빛을 읽을 때마다 결국 눈물이 터져 엄마를 안고 울기도 하고 다음 주에는 더 나아져 있으라고 당부를 하고 차에 탔다.

아이 앞에서 울음이 나는 것도 참아지지 않았다.




사진: UnsplashAbbie Bernet / Unsee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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