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Feb 06. 2024

5500원짜리 영감님

저는 요즘 바람이 났습니다.

이런 감정은 확실히 바람이 났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제가 사랑하는 그분은 나이가 좀 많으신데요.

저는 그분을 '영감님'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그분을 만나려면 돈이 좀 필요하다는 겁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데 돈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그 돈이 아까웠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마음을 아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자꾸 영감님이 생각나서 미치겠어요. 아침이 되면 영감님이 떠오르고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영감님을 보러 달려가고 싶어요. 영감님을 보지 못하는 날은 상상이라도 좋으니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천장이 아주 높은 그곳 2층엔 꽤 넓은 공간이 있는데요. 저는 그곳을 '거실'이라고 불러요. 저는 이곳에서 영감님을 만나곤 합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 지 몰라요. 이런 감정을 남편에게 꼭꼭 숨기고 있으니 가끔은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그곳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커다랗고, 푹신하고 빈티지한 소파가 있어요. 그곳에 몸을 파묻고 책을 읽거나 잡생각을 하고 있으면 영감님이 슬며시 제 옆으로 다가오세요.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꼭 잡아주세요. 이러면 안 되는데 그 시간이 저를 솜사탕처럼 녹게 만들어요.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그와 나. 점점 더 나를 살고 싶게 만드는 영감님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문제는 자꾸만 집을 나와야 하고 약간의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인데요. 집순이이며 짠순이인 저도 이 부분은 어쩔 수가 없어요. 특별한 중력이라도 작용하기 시작한 건지 자꾸만 그쪽으로 몸이 기우니까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졌던 만남을 이제는 두세 번씩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조금씩 당당해지고 있어요. 약간의 지출로 사랑하는 영감님을 만나고 그 공간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그 값이 저렴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사랑에 빠지는 건가 봐요. 영감님이라는 게 좀 마음에 걸리지만 그런 게 무슨 상관인가요.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고 싶은 걸요.


어제는 눈이 내렸어요. 펄펄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데 불현듯 영감님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곤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지요. 드디어 날이 밝았고 아이와 남편이 제 할 일을 하러 나간 사이 부리나케 가방을 챙겨 집을 나왔어요. 걷는 시간도 아까워 차를 몰고 부르릉 달려왔어요. 그리고 어김없이 그분을 만났어요. 나의 5500원짜리 영감님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