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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머무는 곳

사람, 사람들

by 나탈리


가까이서 천사를 지켜보는 것은 즐거우나 슬픈 일이다. 선한 행실을 본받고 싶은 마음과, 자신이 없어 지레

포기하려는 마음이 다툼을 일으켜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마음 작용도 천사의 얘기를 나눔으로써 얻는 기쁨을 상쇄하지는 못할 것이기에, 언제든 천사의 얘기를 써야 한다는 부채감과 의무감을, 천사가 머무는

공간을 빌어 펼쳐 놓으려 한다.


언제나 길고양이들의 사료를 소분하여 이고 지고 출근하는 동료가 있다. 출퇴근 때에는 집 근처의 길냥이들이, 점심때에는 직장 주위의 길냥이들이 그녀의 측은지심 덕에 혹독한 겨울을 굶주리지 않고 살아가니,

그녀는 고양이 대모이자 천사가 아닐 수 없다. 언제나 그녀의 가냘픈 팔목엔 고양이의 일용할 양식이 들려

있다. 모르긴 몰라도 천사는 급여의 상당액을 길고양이 식량대금으로 흔쾌히 지불하고 있을 것이다. 사료가 좀 비싼가. 무겁지 않으냐 물으면 팔목이 좀 아프긴 한데, 고양이들은 배가 고파도 말을 못 하잖아요, 하며

배시시 웃는 동료!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면 고양이들이 추울까 봐 사료 근처에 핫팩까지 넣어주고

온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누가 알아주길 바라서도 아니고 오직 생명에 대한 존중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진심 어린 행위를!

'천사님, 날개는 어디 숨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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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천사는 어르신들에게도 무척 잘한다. 말 한마디에도 존경과 사랑이 배어 있다. 환한 미소와 다정한

말투에서는 가식을 털끝만치도 찾아낼 수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부모님을 모시듯 어르신을 대하는 모습에서 눈길을 떼기가 어려웠다. 요양 보호사라는 직업 소명 의식이 투철한 것인지, 타고난 본성인지. 나는 기꺼이

후자를 신봉하고 싶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반가운 인사와 함께 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 쥐여 주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그녀! 천사가 아니라도 천사의 사촌쯤은 되겠지. 아마도 그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요양보호사를 천직으로 여기고 열과 성의를 다해 임하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님들이 그러하듯.

천사표 그녀의 미소가 사라지는 건 어르신들에게도 무척 서운한 일이 될 것이고, 어르신들에게 익숙함은

안정이고 평온이므로, 천사님의 천직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도할 일이다.


천사 같은 그녀처럼, 대부분 요양 보호사님들은 은퇴 없이 일을 하고 싶어 하고, 만 60세 정년이 되어도

1년씩 계약을 연장하여 일을 계속한다는 것을 귀동냥으로 알았다. 요양보호사 대부분이 중장년이고, 지금

환갑은 그 옛날의 환갑과는 달리 근로를 이어갈 만큼 충분히 건강한 데다, 바야흐로 백세 시대, 정년 연장을 논의해야 한다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도 대두되고 있는 마당에,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입사하고 한 달이나 지났을까, 건물 입구에서 요양 보호사로 보이는 한 분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계약기간이 만료되었는데 계약을 연장해 주지 않은 까닭이라 했다.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시위자의 모습을 보며 출근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썩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부당해고를 저지하기 위해,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마다하지 않는 모습! 그 고독하고 처절한 싸움에 동참을 권유받고, 탄원서에 서명할 것을 권유받고 하는 일! 간이 콩알만한 입사 새내기는 나서기도, 그렇다고 마냥 외면하기도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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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양보호사도 아니니 섣불리 나서지 말라고, 선배 샘은 주의를 주었다. 자신은 다른 길로 출근하니

아침의 그 곤란지경에 처하지 않아도 된다며 내게도 ‘다른 길’을 귀띔했다. 오랜 쉼 끝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처신을 어찌해야 하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대로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선배 샘에게 들은 설명은

내 판단추에 더더욱 혼선을 가져왔다.

"지금 시위하는 요양보소사님은 장기근속자로, 목욕이면 목욕, 이미용이면 이미용도 거뜬히 해내고,

어르신들에게도 살뜰한, 누가 봐도 모범 사원인데, 단지 나이가 좀 많고 노조에 가입했다고 원장님이

계약 연장을 안 해주었대요!"

"정말요? 이해가 안 되네요."

세탁기와 건조기의 굉음 속에서 우리는 행여 누가 들을까 속삭이듯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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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에 몸담고 있는 분으로 사랑과 자비가 한없이 풍성할 것 같은데, 원장님은 왜 일하고 싶어 하는

분에게서 직장을 앗아가는 것일까? 금전적인 측면을 떠나,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에게 자존감을 유지하게 해 주는지 원장님도 모르진 않을 텐데. 신입에게 업무를 가르쳐 익숙해지기를 기다리느니, 기존의 숙련된

직원을 재고용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만 67세가, 노조에 가입했다는 것이, 진정 정당한 해고 사유

인가? 면접관으로 처음 뵈었던 원장님은 한없이 넉넉한 인품과 사랑을 풍기는 분 같았는데, 살가운 미소의

어디쯤에 그토록 냉정한 경영인의 모습을 감추어 두셨던고......


어리바리한 신입을 통성명으로 반가이 맞아주던 또 다른 요양보호사 한 분도 원장님에 의해 갑자기 해고

되었다. 은행에서 퇴직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8년을 근무했다는 그녀. 어느 날, 복도에서

원장님과 마주쳤는데, 느닷없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수모를 당하고 해고되었다고, 가운을 반납하러 와서는

한 30분쯤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노조에 가입했다가 얼마 안 되어 탈퇴했는데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치욕스런 상황을 맞이한 요양보호사님! 선생님 같은 요양보호사 세 분만 있으면 우리 요양원이 아무 걱정

없겠다며, 평소 칭찬을 아끼지 않던 분의 입에서 나온 언어폭력은, 직접 당하지 않고는 짐작하기 어려울 거라고. 기분이 ‘더럽게’ 안 좋다고. 그것은 언제든 당신도 나 같은 상황에 처하지 말란 법 없으리라는 경고성

넋두리이기도 했다. 공감과 위로가 적절히 오가는 가운데 원장님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두 얼굴의

원장님이라......


KakaoTalk_20250204_195511952.jpg 문, 대문 또는 시작과 변화 혹은 이중성을 상징하는 로마신화의 야누스 : Chat GPT 작품


1인 시위는 초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되다 어느 날 갑자기 중단되었다. 원장님에게 직접

들은 바, 고용부에서 원장님 편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고용부에서 합법적 해고라 인정했으니 원장님은 저리도 떳떳하게 얘기하시는 거고, 만 67세의

요양보호사님은 당분간 실업급여를 타다, 다른 직장을 구해야 하겠구나. 그분이 패배와 굴욕감을 이겨내고

다시 설 수 있어야 할 텐데...... 역시 계란은 바위에게 덤비면 안 되는 것인가......’

더 이상 길을 돌아가지 않아도 되건만, 약자에게 향하는 연민을 곱씹으며 걷는 출근길은 영 씁쓸하기만 했다.


틈만 나면 노조에 절대 가입하지 말라 신신당부를 하시는 원장님. 간식을 놓고 가시며,

"몸 축가지 않게 너무 열심히는 하지 마세요잉?"

격려를 잊지 않는 원장님. 업적을 쌓고 일개 직원에게 일일이 나열하여 공치사받기를 좋아하는 원장님.

여행길, 직원들을 위한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 오시는 원장님. 야누스의 이중성을 지닌 원장님! 이해 불가라

단정 짓다가도, 어찌 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는 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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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선배 샘은 원장님께 꽤 호의적이다. 고충을 빠른 시일 내에 개선해 주려 애쓰고, 직원들의 식사도

원장님이 오고부터 질이 나아졌으니 좋아할 밖에. 게다가 지난 종무식에서는 우수사원 표창까지 수상하여,

십 년 묵은 불만의 구름(십 년 동안 충성하였으나 주임도 못 달았다는)이 상당 부분 걷혀 나갔음을 감안하자면

좋은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선배 샘은 또한 독신의 천사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자신이 오랫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사람이

한결같단다, 그 진실함이, 변함없음이. 그래, 진실되이 한결같다는 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칭찬받기 위해 한결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한결같은 진실함과 변함없음은 타고난 것일까? 굳이 성선설이나 성악설을 꺼내들지 않아도 억지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고양이 대모님 말고도 숨은 천사가 무지 많은 것 같다. 성실과 진정으로 어르신 섬기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천사들! 모두가 날개를 숨긴 천사 아닌가? 천사와 천사의 여러 사촌들과, 천사의 사촌의 사촌들과, 야누스 원장님과 귀여운 어르신들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 머잖아 봄은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다가올 것이다. 아니, 마음은 이미 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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