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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Dec 14. 2023

자네 이름은 산초가 좋겠다 / 안전가옥

미래로 온 세 명의 헌터들

삶이란 던전에서 고난과 맞서 싸우는 헌터 산티아고 노인. 고난은 커다란 괴물로 그를 삼키려 하나 그에겐 '살라오의 근성'이란 스킬이 있다. 살라오는 재수가 없는 사람이란 뜻이지만 노인은 개의치 않는다. 꿈과 신념을 잃지 않는 사람은 단어가 한정지우는 영역에 갇힐 만큼 한가하지가 않다. 산티아고는 던전의 관리인으로서, 전사로서의 소임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묵묵히 해내며 거대한 파도를 기다린다. 마지막 승부로 안내해 줄 거대한 파도를.


여느 때처럼 점검 차 던전에 들어간 산티아고는 먼저 C급 돌핀 피시를 가볍게 제압한 후 카운트 다운 시스템 창과 마주하는데, 이는 주어진 시간 안에 그가 몬스터를 토벌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몬스터를 물리치지 못하면 그는 목숨을 잃게 되고, 불어난 몬스터들이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을 마구 학살하므로, 반드시 해 내야만 했다. 정체도 모르는 SSS급 몬스터를 향해 무기를 잡는 산티아고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미 던전의 입구는 닫혀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고, 오로지 A급 헌터 산티아고와 SSS급 몬스터 만의 목숨 건 대결이 처절하게 펼쳐진다.


몬스터를 퇴치하여 비활성화될 위기에 처한 던전을 구하려는 그의 신념은, 마침내 84일 만에 소환된 SSS급 몬스터인 티뷰론의 비늘을 얻는 쾌거를 이뤄 냈다. 온갖 무기와 스킬과 포션을 다 동원하여, 던전에서의 고독한 대전투를 마친 영웅 산티아고가, 명예도 전리품도 모두 내려놓고 터덜터덜 거처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처연하면서도 인상적이다. 임의 상대를 파악하고 상황에 맞서 대비하게 돕는 친절한 시스템 창, 그것은 결국 삶의 이정표임을!    


별을 쫓는 광인 돈키호테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떠올릴 때마다 스티브 잡스나 에디슨, 아인쉬타인이 떠오름은 왜일까. 모순투성이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돈키호테는 내면의 음성을 외면하지 않고 신념을 좇아 직진하는 길을 택한다. 그는 기사가 되어 혼탁한 세상을 구하려는 의지대로 우체부 소년을 만나 동반자를 자청한다.


소년은 '목표에 도달하는 자' 스킬을 배달시 요긴하게 사용하면서도 막상 그 스킬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인생이란 마라톤에서 꼭 필요할 듯한 스킬이건만. 그러한 소년의 마음에 필요한 건 돈키호테의 의미심장한 '언어 스킬' 일지도 모른다. 언어 스킬의 위력이라니! 돈키호테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심오한 철학이자 시처럼 마음 한가운데를 적셔 오는 것이, 그는 분명 현대로 와 언어 스킬을 발동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자네는 목표에 반드시 도달할 수 있는 스킬이 있으니, 가는 길의 고통을 감내하기만 하면 분명히 언젠가는 자네가 바라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겠지. 그러니 어찌 멋진 날개가 아닌가?

                                                                                                                 ----- 전문에서 ---


나의 별은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아니야. 이 광인, 돈키호테가 좇는 별은 더욱 반짝이고 값진 것일세. 바로 나의 어리석고 바보 같은 꿈과 희망이지. 그렇기에 나는 돈키호테로서 존재할 수 있네.

                                                                                                           ------전문에서 -----


어느새 소년은 돈키호테에게 스며들고, 별을 좇는 광인은 소년에게 산초라는 이름을 즉흥적으로 붙여준다. '자네 이름은 산초가 좋겠다.' 얼떨결에 돈키호테의 추종자가 된 산초는 배달부 소년에서 '우체국장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자'가 되기에 이른다. '목표에 도달하는 자' 스킬은  돈키호테의 암시처럼 멋진 날개로 그의 삶을 안내해 줬다.


돈키호테가 그리는 세상은 그런 것- 환상 같지만 불가능도 아닌 것-이었다. 안주가 아닌 모험. 어차피 세상은 모험과 개척자 정신으로  발전해 왔으니, 돈키호테 같은 별을 좇는 광인이 없다면 과연 오늘이 존재할 수 있을까. 로시탄테에 오른 추종자들이 광막한 사막을 배회하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은 보일 듯 보이지 않아도 지금껏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규칙적이고 안일한 생활을 꿈꾸던 파스파르투는 칸트보다 더한 초침맨 필리어스 포그의 하인이 되어 뛸 듯이 기뻐하지만 취직 첫날부터 꿈과의 정반대의 삶이 펼쳐진다. 80일 동안, 20층 주요 던전을 모두 공략하여 보상을 얻는 내기에 포그 경이 전 재산을 걸고 임한 것이다.


용감하게 몬스터와 맞서 싸우는 주인의 곁에서 주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나 번번이 도움만 받는 파스파르투. 그는 냉혈한으로 여겨지던 주인이, 하인인 자신을 아끼고 존중하여, 몇 번이나 위험으로부터 구해 준 사실에 감동한다. 또한 빈한한 자들을 위해 골드를 아낌없이 베푸는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주인을 존경하게 된다.


얼음 여왕의 냉기를 받아 얼음이 되어버린 자신으로 인해 3일이 지체되고, 퀘스트 종료가 빠듯해짐을 먼저 걱정하는 파스파르투. 자신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전재산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주인을 설득하지만 주인은 그를 저버릴 생각이 없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지 덕 체에 부까지 갖춘 그가 부족함 없는 생활을 박차고 몬스터와 싸워 멋진 승리를 이루어내는 모습! 존경, 흠모를 떠나 흉내라도 내어 보았으면...... 


별의별 몬스터를 물리치고 도착한 20층, 천국과 같은 아름다운 곳에서 그들이 몬스터를 찾아 헤매는 틈에도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 마침내 퀘스트 종료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침착하던 포그도 점차 초조함에 빠져드는데, 파스파르투의 발상으로 포그는 파스파르투와 함께 생명나무를 찍어 누른다. 안일함을 탈피하고 성장한 파스파르투와  포그의 박애가 힘을 합해 무찌른 마지막 몬스터- 환상의 몬스터였다.


포그는 이제까지 얻은 모든 핵을 희생하여 어린 생명나무를 살려낸다.

"파스파르투, 자네가 세상을 구했어."

주인의 치하와 미소는 동행한 수하를 동료로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 준다. 퀘스트 종료 21초를 남긴 시점이었다. 보상으로 열린 21층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어, 주인과 파스파르투는 개척지에 첫발을 내딛는 영예를 안는다. 포그의 스킬인 '개척자의 발걸음'이 찬연히 빛나는 순간! 내기에서 승리한 필리어스 포그 경과, 주인이 궁극적으로 바라던 것을 깨달은 파스파르투는,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펄떡이는 심정으로 개척지를 향하는데, 앞서 간 마음은 그새 개척지를 몇 바퀴 돌고도 남았을  듯.....


노익장을 증명한 헌터 산티아고의 투지, 철학자와 시인의 향내를 폴폴 풍기는 돈키호테, 고결한 투사 포그 경의 수하에서  번듯한 헌터로 성장한 파스파르투. 마음 깊숙이 방문한 그들을 절대 허투루 대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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