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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Jul 31. 2024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관람하다

목요일. 갑작스레 아이가 재택근무 끝나고 뮤지컬을 보러 간다고 선언을 한다. 무슨 뮤지컬?

저번에 엄마랑 봤던 거.

뭣이라고? 두 번째도 모자라 세 번씩이나?

그래도 보고 싶은걸?

같은 뮤지컬을 세 번씩이나 보다니.

같은 뮤지컬을 열 번 본 사람도 있다는데. 난 약과야.

그렇게도 그가 좋아?

응, 좋아

그는 다름 아닌 규현이고 뮤지컬은 규현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으로 나오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다.

'쥬토피아 갱신하겠네. 예전에 쥬토피아를 몇 번 보았더라?'

묻고 싶지만......


지난 금요일, 아이의 초대로 얼떨결에 보게 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몇 년 만의 문화생활인지.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다 귀청이 떠나갈  듯한 소리에 놀라 극장을 탈출한 뒤니까 일 년 정도 된 것 같다. 그리 내키지 않는 마음(집순이들의 특징)이지만 일곱 시까지 한강진 역으로 나오라는 주문에 맞춰 일찌감치도 나갔다. 여섯 시쯤 도착. 추울지 모르니까 셔츠 한 개 여벌로 가져오라는 주문도 착하게 이행하는, 말 잘 듣는 엄마는, 일 끝나고 달려온 아이와 만나 신한카드 홀 여기저기를 탐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요기할 만한 곳이 두어 군데밖에 없는데 그나마 붐비고 앉을자리도 눈에 띄지 않는다. 카페에서 간단히, 그것도 카페 밖의 자리밖에 없어서, 더위와 싸우며 민생고를 해결해야 했다는.....




포스터를 훑어보다 기나긴 줄에 섞여 생명창조기계 세트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나니 입장 시간이 다 되어갔다. 좌석이 떨어져 있어,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찾아 잠시 이별을 해야 했다.

"인터미션 때 만나, 엄마."

핸드폰은 비행기 모드(나만 몰랐던 공연 센스!)라 일러주며, 혹시 기침 나오면 먹으라 포카리스웨트를 넣어주는 아이. 그러나 안내직원은 생수 말고는 시식이 어렵다며 가방에 넣으라 정중히 부탁을 한다. 볼이 살짝 부었다가는, 규현의 코믹한 안내멘트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모두의 순조로운 공연관람을 위한 안내지침을 지키지 않을 시에는 사나운 맹수가 우굴거리는 곳에 내던져질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의 죽음으로 생명 창조에 집착하게 된 빅터 프랑켄슈타인. 전쟁터에서 만난 벗이자 든든한 동지인 앙리는 그의 생명창조 연구에 필요한 신선한 사체를 구하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앙리의 두상을 사용하여 결국 한 생명을 창조해 내는 빅터.

"일어나, 제발 일어나!"

생명체가 살아 숨 쉬길 바라는 빅터는 세렝케티의 사자처럼 온몸을 던져 포효한다. 앙리이길 바랐던 생명체는 그러나, 앙리가 아니었다.


생명 창조에 몰입했던 빅터가 창조 이후를 고려하지 못하여 생겨나는 혼돈! 생명체는 신에 의해 버려지고, 버려진 생명체의 기막힌 생존법이란......

철저히 혼자인 그에게, 존재 이유도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가혹하고 잔혹한 대우 말고는 없었다. 분명 인간의 육신으로 창조된 생명이건만 인간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생명체의 비애. 육신과 걸맞은 혼까지 창조해내지 못한 빅터의 한계. 그것은 신의 영역......


생명체가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실존을 고민하고 사고란 걸 하기까지 그의 뇌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런거림과 혼돈이 자리 잡고 있었으리. 그가 친절을 베풀었던 여인, 사람이 제일 무서운 존재라며 사람이 없는 북극으로 가고 싶다던 그 여인마저도 생명체를 배신했다. 선한 바탕을 버리고 배신과 복수를 익히는 그. 번뜩이는 혜안으로 창조될 당시의 기억을 더듬는 그. 신도 인간도 아닌 '중간자'로서의 고독한 처지를 빅터에게 선물(앙갚음)하려는 그. 그는 시장님과 빅터의 누나 엘렌과 아내 줄리아를 빅터로부터 차례차례 앗아가고 그의 창조자인 신과 맞서려 한다. 신과 대등하게 맞서 따져 묻고 싶은 그. 왜 죽음의 포근한 이불에서 날 깨웠는가, 묻고 싶은 걸까.




"날 만나려거든 북극으로 와!"


마침내 북극에서 빅터와 생명체 - 창조자와 피조물은 정면승부를 벌이고, 생명체로부터 공격을 당한 빅터는 생명체를 해하나, 그것은 생명체가 바라던 바였고, 결국 빅터 자신도 부상을 입어 헤어날 수 없는 고독과 추위에 몸부림친다. 두 주인공의 절규! 신에게 맞서는 인간, 인간을 어둠에 떼밀어버린 신이 겪는 무한의 슬픔에 몸서리가 처지는 장면! 길 잃은 어린 빅터를, 물속에 처박아버리는 생명체의 잔혹함이 주는 섬뜩함! 눈물이 아니 나올 수 없었다. 눈물 없이 빅터와 생명체의 송스루를 들을 수 있는 강심장은 손을 드셔 보시라! 눈물 없이 감동을 논하지 말고 눈물 없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관람했자랑하지 마시라!



커튼콜 데이라 플래시 없이 촬영이 가능하다고 아이가 좋아하던데,

과연 팬들의 기립박수와 열화와 같은 환호 속에 절도 있고 우아한 배우들의 인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촬영하느라 대부분의 관객들은 초고도의 집중모드. 멋짐! 눈부심! 열연을 펼친 배우들의 화려한 광채에 일상의 모든 시름이여 녹아들지어닷! 두 주인공 신과 생명체의 악수와 포옹은 왜 이리 애잔하고 마음이 찡할까.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화해 같은 느낌. 영과 혼과 육, 창조자와 피조물, 창조와 그 이후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픈  뮤지컬.....


목요일 밤, 아이의 세 번째 뮤지컬 단독관람은 세 배의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공연을 거듭할수록 주인공의 연기가 한결 무르익는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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