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므네 Nov 07. 2023

왜 나는 핸드폰에 이렇게도 매여 있는 걸까?

책 <도둑맞은 집중력> 50페이지 읽은 날.

집에 들어오기 전, 속으로 말했다.

'얼른 씻고, 집을 빨리 청소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을 거야.' 그때 손에 든 핸드폰엔 좋아요 알람이 떠 있었다.


한 시간 뒤, 나는 씻지도, 청소를 하지도, 글을 쓰지도, 책을 읽지도 않은 채로 핸드폰만 보며 침대에 누운 채로 발견되었다. 이제 그만 봐야지 생각했지만 내 엄지 손가락은 이러고 있는 걸 정당화할만한 놀랍고도 유용하고 멋진 것을 찾아 쉬지 않고 스크롤을 내렸다. 겨우 늪에서 헤어 나왔다. 여전히 나는 꼬질했고, 집은 더러웠다. 글 쓰는 법을 잊었으며, 책은 펼치지도 못했다. 기분이 정말 나빴다. 나는 내 삶에 중요한 것을 알고 있고, 내 삶의 시간이 한정된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핸드폰에 이렇게도 매여 있는 걸까?


서점에서 책 <도둑맞은 집중력>이 계속 눈에 들어왔는데도 몇 번이나 사지 않았다.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사둔 책이 많아서 다음에 사려고 했다. 어느 날 내가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충동적으로 책을 샀다. 그 이후로 계속 들고 다녔지만 그 책의 페이지를 넘긴 적보다 핸드폰을 들여다본 적이 훨씬 더 많았다. 새벽에 일어나도 산만하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내게 질려서 오늘은 마음먹고, <도둑맞은 집중력>을 찾아 50페이지 정도까지 읽었다.


아이를 등원시키러 나가며 습관처럼 핸드폰을 챙기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조금 기이하게 느껴졌다. 휴대폰을 두고 나갈까 잠깐 생각했다. '그래도…' 하면서 들고나갔지만. 한번 핸드폰을 가방에서 꺼내지 않아 보았다. 원래는 핸드폰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는, 잘 아는 길인데도 늘 거치대에 붙여놨었다. 뭔가 들을 거리를 찾거나 알람을 확인했다. 아이를 등원 버스에 태우고 차에 타면서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항상 라디오나 유튜브 영상을 듣곤 했는데, 라디오도 틀지 않고 갔다.


조용했다. 아무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빠르게 가는 국도 길 대신 약간 돌아가는 옛길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느리게, 점점 느리게 달렸다. 도로 위, 어제 내린 빗물에 햇빛이 비쳤다. 하늘은 시린 파랑이었고 구름은 아스라이 아름다웠다. 나는 오랜만에 하늘을 핸드폰으로 찍지 않고, 눈으로 오래 보았다. 눈이 있다는 게 감사했다. 동네 어귀에 외길을 지날 때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구름과 나무도 내 속도에 맞춰 느리게 지나갔다. 아주 편안했다. 느리다는 게 이렇게 좋은 것이었나. 조용한 빈 공간을 내 생각이 채웠다. 굳이 아무도 안 쓰는 폴더폰을 찾아 쓸 때(몇 차례 있었다)가 생각났다.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도 떠올랐다. 오롯이 홀로 있는 느낌. 그동안 내가 이렇게 삶에 여백이 없이, 숨 쉴 틈도 없이 꽉꽉 채우며 살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잃어버린 것은 느림이었다. 고요함이었다. 계기판을 보니 시속 15킬로 정도였다. 세상에 15킬로라니.


국도를 100킬로로 달려도 느리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헉헉거리며 달리면서도, 더 빨리 달려야 할 것 같았다. 느린 것은 지루하고 초조했고 불안했다. 나만 놓칠 것 같은, 따라잡아야 할 것 같은 느낌. 무얼 따라잡아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성수기의 시끄러운 수영장에서 빠른 물살과 인파에 휩쓸려 모두 같은 방향으로 떠내려가는 듯했다. 처음엔 재밌었다. 그런데 손발이 퉁퉁 불고, 햇빛에 타는 살이 따가워서 이제 나가고 싶었다. 출구가 어디인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찾으니 잘 보이지 않았다.


책에서 말했다. 이건 일회성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싸워야 할 문제라고. 책은 늘 내가 생각지 못했던 어떤 생각을 하게 한다. 나도 그래서 책을 쓰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방금도 바닥에 내려놓은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전 같으면 바로 집어서 확인했겠지만 지금은 그러기 싫었다. 무슨 중요한 소식이 있을까 기대하고 불안해하며 알람을 확인하지만 언제나 쓸데없는 광고 문자였지 않은가. 핸드폰과의 전쟁. 전쟁해야 할 대상과 화친하고 있었으니 삶이 피폐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핸드폰 속에 없다. 몰입이 하고 싶다. 몰입하려면 인터넷이나 알람의 방해 없이 글이나 그림, 영상을 만들어낼 자유가 필요하다. 삶에 촘촘한 거름망을 씌우자. 나에게 꼭 필요한 것만 받아들이자.


아까 빗물에 비친 햇빛을 볼 때 생각했다.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눈부신 빛을 내고 싶다.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싶다. 나의 최선을 남기고 싶다.’


깨어있는 시간 동안 핸드폰만 보고 있다면, 어떤 좋은 것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경계하고 또 경계하자. 정보를 푸아그라처럼 계속 집어넣어 뇌를 부풀리기만 하는 스크롤 좀비가 되기 전에.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 책방 입고 투어를 다녀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