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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므네 Oct 26. 2023

서울 책방 입고 투어를 다녀왔다

내 책은 내가 팔아야 한다(feat. 카메라 산 합리화)

어제 서울 독립 책방 세 곳에 입고를 했다. 독립서점이 있는 새로운 동네에 갔다. 난 새로운 동네에 가는 걸 좋아한다. 새로운 장소가 여행자의 눈을 만든다.


독립서점은 대부분 역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걷고, 또 걸었다. 케이크 가방이 내 책 18권 든 3개의 박스를 품고 내 걸음에 맞추어 흔들렸다. 서점 한 곳에 들릴 때마다 조금씩 가벼워졌다. 손목이 약해서 혹시 모를 부상을 대비해 손목 보호대도 했는데 오래 드니 그래도 아팠다. 케이크 가방을 팔에 걸고 걷고 어깨에 걸고 걸었다.

입고용 케이크 가방. 매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첫 번째 서점에 첫 입고를 하며 입고 계약서(?)를 썼다. 신기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점에선 바로 디피를 해주셨다. 조금 부끄럽고 고마운데 생각만큼 감동적이진 않았다. 큰 기대하고 본 영화는 실망하는 법.


내 책을 넣은 대신 한 권의 책이 다른 곳으로 밀려났다. 그 책에 조금 죄책감이 들어 책을 찾아 읽었다. 내 책은 이 자리에 얼마나 더 머물까. 서점에 입고를 하고 그냥 가긴 그래서 책방을 둘러보며 책 한 권씩 샀다. 내 책은 입고만 한 거고 정산은 언제 될지도 모르는데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나중에 생각했다(사실 늘 배꼽이 더 크다).


책을 구경하며 몇 차례 손님들이 들어왔다. 혹시나 내 책을 읽어볼까 해서 책을 읽는 척하며 몰래 유심히 봤는데 놀랍도록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이 수많은 책들 가운데 누군가가 내 책을 읽고 심지어 구매까지 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았다. 내 책이 팔릴 가능성이 희박하게 느껴졌다.


서점에 비치된 내 책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아 보였다. 구매 사은품인 냉이 진과 엽서, 스티커 등은 뒤표지 안 쪽에 말없이 그냥 끼워질 뿐이었다.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는 그래도 내 책에 대한 마케팅을 내가 했다. 냉이 진, 엽서에 책 구매 시 0원이라고 써붙이고, 책 앞에 꺼내 놓아서 읽어볼 수 있게 했다.

냉이 진 때문에 사가신 남자 분도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면 그분이 냉이진을 유심히 보고 사진까지 찍어 가셨는데, 나중에 다시 와서 책을 사가셨다고 했다. 원래 현장에서 책 구매하실 때 보통 사인을 해드리는데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라 못 해 드렸다. 나중에 팀원 분이 ‘저분이세요!’ 하고 그분을 가리키며 알려주셨다. 그래서 내가 다급하게 손짓을 하면서 “안녕하세요! 혹시 사인해 드릴까요?”했는데 “아뇨, 괜찮아요.”하고 거절하셨다. 그분은 정말 냉이진이 갖고 싶었던 거다.


내 책 위에 모빌처럼 냉이진을 쫙 펼쳐서 펄럭이게 전시를 하고 책 사은품이라고 크게 써붙이고 싶다. 그 밑엔 ‘해브 어 굿 냉이’라는 글씨 패널이 빙글빙글 돌아가게 하고, 옆에 꾀꼬리 소리라도 틀어놓고 싶다. 그러나 책방은 내 책만 파는 것이 아니다 다른 책들도 같이 팔아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건조하게 차분하게 그냥 누워서 손님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책이 아주 좋으면 어떻게든 사겠지만 내 책은 그렇지 않다. 많은 책 가운데 굳이 내 책을 살 이유는 없다.


내 책은 내가 팔아야 한다. 내 책의 매력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마케팅을 공부해야겠다. 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어주길 원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원한다. 그러려면 책을 사야 한다.


아무래도 영상을 찍어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누구나 영상을 찍는다. 자신과 자신이 하는 일을 알린다. 소심하게 독립출판 제작기 릴스 올렸는데, 조회수는 적었다. 연습 삼아 목소리 녹음도 해본다. 내 목소리를 들어보는데 몇 번 해보니 조금 덜 오글거리는 것 같다. (옛날에 성우하란 이야기도 들었다. 아주 옛날에...) 마음에 드는 카메라 광고를 봤다. 그 카메라는 작고, 무려 옷에 자석으로 붙일 수 있다. 영상 찍는 걸 부끄러워하는 나도 편하게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가격. 그래도 내 책의 저자이자, 편집자, 마케터로서 용문 소로를 알려야 한다면서 마케팅에 순한 양처럼 당했다. 내가 잘 활용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삶에 어떤 도구가 들어오면 뭔가 안 하던 일을 하게 되고 새로운 일이 생긴다.


이번에 주문받은 책을 택배 봉투에 포장하다가 한 봉투에서 뭔가가 나왔다. 연초에 자기 계발 계정 200 팔 이벤트로 내가 쓴 캘리그래피 종이액자나 책갈피를 써서 보낼 때 택배봉투를 샀었다. 그때 사이즈 테스트 삼아 종이를 넣어본 것이었다. 그때 쓰고 남은 봉투 20개는 이번에 내 책을 담아 보내고 몇 개 남지 않았다. 그때는 이 봉투가 이렇게 쓰이게 될지 몰랐다.

책 12권 포장한 사진이 없어서 하찮은 동영상 올림

하고 싶은 마음이 남긴 물건은 미래의 내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요긴하게 쓴다. 물건 자신도 신기해할 정도로 나를 나답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전에 이모티콘 만든다고(못 만들었다) 단축키 쓸 때 필요하대서 산 키보드는 글을 본격적으로 써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옛날에 사두었던 라미 만년필을 물에 며칠을 녹여서 그림을 그렸다. 예전에 캘리그래피를 동네에서 두세 달 배울 때 산 붓펜은 아직까지도 계속 사서 잘 쓰고 있다.  붓펜을 저번에 거의 한 박스 사두었는데 거의 다 썼다. 붓펜으로 그림도 많이 그리고, 필사도 하고, 사인도 했다. 이번에 만원 채워 6자루를 샀다. 배송비 포함 13,740원. 사인을 많이 할 미래의 나에게 선물한다. 내가 되고 싶은 나에게 투자한다(고 카메라 지른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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