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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무빙 Jul 01. 2023

직장에서 만났어요. 그런 분들

독서모임에서 얻은 지혜

독서모임 <글쓰담>


2주에 한 번씩 zoom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발제자가 모임 1주 전 발제한 내용을 바탕으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다. 같은 글을 보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내는 그녀들. 각자의 삶, 경험이 달라서 그럴 텐데... 정말 배울 점이 많다. 내 머리를 그리고 감정을 깨워준다.


고마워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이번에 함께 나눈 책이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열심히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가져다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벌레가 되어 있었다. 일을 하러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문이 닫혀 있자 가족들은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그가 거대한 바퀴벌레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겁하고, 어찌할 바 몰라하며 심지어 회피한다.


민음사 / 미래엔


너무 재미있게 상상하며 읽어서 더 알려주고 싶지만 혹여나 읽어보고 싶은 그 누구를 위해 뒷 이야기는 접어두겠다. 이미 유명하지만 내용을 전혀 몰랐던 나 같은 분들이 분명히 있으리.


발제문의 첫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거대한 벌레가 되어 깨어납니다. 벌레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생각나는 사람이어도 좋고 상황이어도 좋고 자기만의 생각을 말해보아요. 벌레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말이죠.


우선 나는 세 가지로 생각했다.

첫째, 바퀴벌레는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서 만들어낸 도피처다.

그레고르는 날마다 일하고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가져다주는 삶에 진절머리가 난 것 아닐까? 기계처럼 일해야 하는 상황에 지쳤던 것 같다.


둘째, 가족들을 시험해 보기. 가족들을 위해 늘 새벽같이 일어나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다 준 자기가 흉측한 벌레가 되었을 때 그들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셋째, 나는 벌레 같은 인간이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는 그레고르의 마음 상태를 벌레로 표현한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하고 보니 철저하게 작가 카프카의 입장에 서서 바퀴벌레가 이런 의미 아닐까?라고 그의 의도를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재미없게.









모임을 함께 하는 지초지현작가님이 바퀴벌레가 된 그레고르와 가족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점을 얘기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치매환자나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도 같은 상황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치매나 정신 질환, 혼수상태의 사람들 그리고 뇌병변 등으로 인한 언어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소통 어려움이 있다. 가족들과 진짜 대화를 하고 싶어도 도무지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병원과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할 때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위에서 얘기한 소통의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이다. 뇌졸중으로 인해 오른쪽 편마비가 되시고 언어장애가 와서 생각은 온전해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시는 어르신들이 계셨다. 나름의 눈빛과 손짓으로 이야기했지만 속이 터져라 답답했을 것이다.


전기 치료를 받으러 오신 어르신께 아프신 부위에 전기 치료 기기를 잘 놓아두고 강도를 서서히 높이는데 나름의 소통법이 있었다. 강도가 괜찮으시면 "디디"라고 말씀하셨고, 딱 좋을 때는 "디디디"라고 하셨으며 너무 강할 때는 "디디디디디디디디디"라고 하셨다.

별명이 꼬까인 어르신은 꼬까라는 말씀만 하실 수 있었다.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는 꼬까를 큰 목소리로 하셨고,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예라는 뜻은 그저 꼬까였다.

음식 섭취도 못하시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고, 말씀도 못하시고, 사지 마비로 병상에 누워서만 지내시는 분들도 있다. 의식이 없으시다. 몸이 굳지 않기 위해 병실로 찾아가서 운동치료를 해드리곤 했는데 10분의 시간 동안 말없이 열심히 운동치료를 했다. 그런데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다.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지신 이 분은 병상에서 의식 없이 연명하고 계신 환자분을 운동치료 할 때 다른 모습이었다. 딱 두 마디를 하셨는데 그 부분이 남달랐다.


"OOO님 안녕하세요? 운동하겠습니다."


두 마디가 다정했다. 그 후로 나도 가끔 따라 했다.  


"ㅁㅁㅁ님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좋아요. 운동할게요."


바퀴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따스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던 것 같다. 많이 지쳐있었고, 쉼과 위로를 원했으리라. 상대의 상황을 당연스레 여기고 늘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하지는 않았는지 지난날을 뒤돌아 보게 되었다. 요양병원과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던 그때, 그때 만났던 많은 분들께 다정했나. 친절했나.

그분들의 생각을 알려고 노력이나 했나. 지나고 보니 후회막급이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사실 누구나 사람과의 관계 속에 살아간다.

잘하자.


그들의 마음이 바짝 말라죽지 않도록.



덧붙이자면.. 집에서 변신이야기를 한참 하고 나니 남편이 미래엔 <변신>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한 장의 나름 독서후기를 남겼다. 칭찬해. 더불어 궁금했는지 아이도 책을 들었다. 너도 칭찬해.



*메인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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