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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무빙 Feb 10. 2024

추억이 방울방울

같이 가자.

뜨거운 공기, 습한 기운, 미끄러질 수 있으니 발 조심하고, 들어가기 전에 몸무게 재는거 잊지말아야지.

오랜만에 발을 내디딘 곳은 대중목욕탕이다.

내가 좋아하는 곳. 목욕탕


코로나 이후로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대중목욕탕을 설 전날 갔다.


자기야. 나 두 시간은 걸려.

그래. 잘 다녀와.


남편에게 두 시간이 걸릴 거라는 말을 남기고 샴푸, 트린트먼트, 샤워볼, 바디워시, 바디로션, 스킨, 크림 그리고 물 한 병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때수건은 목욕탕에서 살 참이다.


설 전날의 목욕탕에는 저녁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다. 그래도 적당하다. 샤워기 달린 거울 앞에 앉을 자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문을 열면 희뿌연 김 사이로 수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보이던 그 옛날 어린시절의 목욕탕이 생각났다.








엄마는 딸들을 데리고 2주에 한 번씩 목욕탕에 갔다. 어린 네 딸을 깨끗하게 씻기는 노동의 현장이자 엄마의 피곤함을 달래는 휴식처가 된 곳.

엄마는 목욕탕에 가면 늘 이렇게 얘기했다.


들어와. 들어와. 여기 목까지 담가.

뜨거워.. 엄마

뜨겁긴 뭐가 뜨거워. 목까지 담가.


들어갈건데, 비누칠 한번 하고 들어갈건데 그렇게 재촉한다. 그리고 꼭 목까지 담그라며 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진짜 뜨거운데. 그래도 어느새 그 온도에 익숙해지면 그곳은 나의 물놀이터가 되었다. 머리도 탕 속으로 퐁당 들어갔다 나왔다가 하면서..그래. 난 목욕탕을 좋아했다.


문제는 때 미는 타임이다. 나의 기억 속 큰언니는 공부를 하러 갔는지 집에 없고 엄마는 2호, 3호 그리고 4호를 데리고 목욕탕에 갔는데 순서대로 때 미는 시간이다.


딸들 때 미는 일이 보통일이었으랴. 한 명도 아니고 무려 세명을. 탕에 들어가려면 낮은 턱 하나 밟고 들어가게 되어있다. 그 턱은 단순히 계단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욕탕에 사람들이 많을 때는 모두 그곳에 둘러앉아 탕 안에 물을 바가지로 퍼가며 목욕을 했더랬다.


엄마는 그곳에 나더러 누우라고 했다. 엥? 엉덩이 앉을 너비의 공간에 몸을 길게 쭉 펴고 누우라니.. 초등학생이 누워도 옆으로 획 돌면 굴러 떨어질 듯한 좁은 공간에 바로 그곳에 누우란다. 누우면 천정에 맺힌 물방을이 보인다. 언제 떨어지려나 보고 있으면 차갑게 배 위에 톡, 또 차갑게 눈 위에 톡 떨어진다. 백열등 눈 부셨다. 이렇게 누워있어야 때미는 게 쉽고 빨리 끝낼 수 있다는게 엄마 생각이었다.


엄마는 양손에 때수건을 끼고는 빠른 손놀림으로 내 몸 이곳저곳을 훑으며 벅벅 밀었다. 조금 아팠지만 아픈것보다 창피했다. 너무 일어나고 싶었으니까. 이제 막 목욕탕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려고 걸어가는 사람들과 한 번씩 눈이 마주친다. 아무리 애라도 그렇지 거기는 눕는 곳이 아니야. 에라이... 복근에 힘 팍 며 몸을 세웠다. 엄마는 잽싸게 때수건을 낀 손으로 탁 막으며 눕혔다.

내 키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던지... 사람들이 앉을자리 다 차지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창피했지만 상쾌했다. 다시 말하지만 난 목욕탕을 좋아했다. 몸과 얼굴이 뽀얗게 그리고 빨갛게 되었다. 목욕을 마친 딸들은 먼저 나가 옷을 입고 바나나 우유를 사서 마셨다. 그 동안 엄마는 머리를 감고 마무리를 하였다. 목욕 후 평상에 앉아 먹는 바나나 우유맛이 꿀맛이라 꼭 사달라는 약속을 몇 번이나 받아냈다.


고척동에 있는 그 목욕탕. 영진탕은 아직도 그대로 일까? 영진탕에서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바로 앞에 호떡 장사하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구수한 냄새에 마음을 빼앗기고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는 호떡에 시선을 빼앗겼다. 인기도 많아서 늘 줄을 섰다. 잘 구워진 호떡 속 설맛은 마음도 녹인다.







오랜만에 찾아간 목욕탕에서 여유로움을 느꼈다. 얼른 목욕하고 아이 보러 가야했던 몇 해 전의 마음과 상태랑은 완전히 달랐다. 목욕탕비는 무려 만원. 몇 해전에 비해 가격은 올랐지만 그곳은 온전한 쉼터가 되었다.


38도 적절한 온도다. 엄마가 말한 대로 탕에 들어가 목까지 푹 담갔다. 그러다 뜨겁거나 답답하면 살짝 올라와 앉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여유를 부려본다.

1500원을 주고 산 노란색 때 타올로 열심히 이쪽저쪽 밀고 있으니 엄마 손길이 그리웠다. 바로 옆에 앉으신 어르신께서 말을 시켰다.


등 밀었어요? 같이 밀까요?

네.


시원하다. 시원해. 등 안밀면 목욕 안한거라고 누가 그랬더라? 정말 등을 밀고나니 너무 개운했다. 어르신 등을 싹싹 밀어드렸다. 등을 밀어드리고 있자니 엄마랑 목욕탕 가야겠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우리 엄마의 뽀얗고 부드러운 등을 때수건으로 싹싹 미는 것은 내 몫이었다. 엄마는 막내가 하는 게 제일 시원하다고 했다. 열심히 밀고 나면 팔힘들지만 뿌듯했다. 엄마가 시원하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엄마의 등이 뻘겋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때도 많이 나왔으니까.


엄마랑 목욕탕에 가야겠다. 엄마 등을 시원하게 해드려야겠다. 목욕탕으로 데이트를 갈 거다. 엄마가 머리를 다 감을 때까지 기다리고, 바나나 우유를 엄마것도 사서 같이 먹고 호떡대신 맛있는 밥을 사드릴 거다.


목욕탕의 따스함목욕탕의 냄새가 추억의 영진탕으로 그리고 우리 엄마에게로 데려간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벌겋다.

엄마! 목욕탕 가자.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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