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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Feb 02. 2023

마이 베스트 프렌드

길었던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자르고 여중에 입학을 했다. 어색했던 귀밑 짧은 머리가 자연스러워질 때쯤 우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모두가 하교 한 텅 빈 교실엔 그녀와 나 둘뿐이다. 하얀 실내화를 신은채 책상 위로 올라가 악동 같은 눈빛을 주고받는다. 이제부터 잡기놀이 시작이다. 책상이 이리저리 미끌리면서 휘청거리는 서로가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다. 잡기놀이를 하는 건지 멀리뛰기를 하는 건지.


중3이 되어 여름방학 보충수업으로 학교에 나온 우리는 아침부터 땡땡이를 쳤다.


"갈래? 크크큭"

"가자! 푸히히히히"


목적지는 해수욕장이다. 신발과 가방만 겨우 벗어던지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뭐가 그리 재밌다고 깔깔 웃어댔을까. (그때의 우리 모습이 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뒷일은 아 몰라 몰라 내팽개치고 일탈에 흠뻑 빠졌다. 물이 뚝뚝 흐르는 젖은 치마와 머리카락을 최대한 짜낸 뒤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머리에 꽃만 안 달았지 모양새는 딱 미친년이다. 교문 앞에는 선생님의 연락을 받은 그녀의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너거 밥은 먹었나?" 역시 그녀의 쿨한 성격은 엄마를 닮은 게 확실하다. 우리 엄마였으면 "따라와. 니 집에 가서 보자"라고 등골이 시리도록 무시무시한 눈빛을 날렸을 텐데.



그로부터 10년 후 나는 은행에 그녀는 공항에 취직을 했고 성인이라는 걸 뽐내듯 만날 때마다 술을 마셔댔다.

비가 오면 울적해서. 봄이면 살랑거리는 바람에 취해. 눈이 오면 그저 좋아서. 우린 한겨울 눈폭탄을 맞은 한라산도 올랐다. 죽음의 관음사 코스로. 수많은 다툼이 있었겠지만 떡볶이 때문에 싸웠던 일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할 큰 기억의 조각들. 그렇게 우리는 굵직굵직한 추억들을 쌓아갔다. 시간이 지나고 색이 바래도 잊지 못할 이야기들을.



10대 20대 30대를 지나 그녀와 난  40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30대 같은 외모를 그대로 가지고 40대가 된 우리는 여전히 예쁘다. (확인할 길이 없으니 당당하다) (웃음)
















그녀의 카페에서 젤 펜으로 미꽃체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여니 여니 이펜 뭐야? 되게 부드러워. 잘 써진당. "

"그치 그치? 완전 부드럽지?"


매일 아침 신선한 커피와 갓 구운 빵을 먹을 수 있음에 행복해하고 그런 삶에 감사할 줄 아는 예쁜 그녀에게 작은 선물을 해야겠다. 그녀가 사는 곳은 로켓와우가 된다.


다음날, 아침부터 산타할배가 왔다 간 줄 알았다며 고맙다는 친구의 카톡을 받았다.

필사하려고 필사책을 가져왔는데 때마침 펜이 딱 도착을 했다고. 이런 우연이.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다.        - 그라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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