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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an 06. 2023

초4의 머리를 지 뜯을 뻔한 이유

우리 같이 평생 쓰자

"엄마 이거 [OO에]가 아니고 [OO에서] 아니야?"

"어 맞아 나도 그거 수정하려고 했어"



초4가 된 별이는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사사삭 내 옆에 앉아서 첨삭을 하고 있다.

누가 엄마고 누가 앤지 모르겠는 상황이다. 꿈은 판사고 미리미리 대비하자가 좌우명인 별이는 제법

철두철미 하다. 엄마가 브런치를 4수 끝에 통과하는 과정을 함께 했고 구독자가 늘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오늘은 뭘 또 확인하려는지 마우스에 손이 슬쩍 올라간다.



"엄마 통계 좀 볼게"

"어? 어 그래 "



얼마 전 다음에 이틀정도 올라간 글 덕분에 조회수가 몇 천인걸 확인했던지라 그 후로 종종 통계를 묻곤 한다. 엄마 오늘은 조회수 귀엽네라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도 건넨다.

별이가 궁금해서 내게 오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별이에게 먼저 손 내미는 경우도 많다.

이 글엔 어떤 사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제목은 뭘로 하지? 읽어봐 맥락에 안 맞는 거 있는지 등등  



"엄마 나 읽어봐도 돼?"

"그래 ~ 엄마 화장실 다녀올게 대신 다른 건 건드리지 말고 읽기만 해 알았지?"




[응]이라는 대답을 듣고 갔건만 뭔가 건드린 게 분명하다. 다급하게 날 찾는다.

"엄마엄마! 큰일 났어 내가 맞춤법 검사했는데 이상하게 된 것 같은데?"

"어?? 맞춤법 검사를 왜에?? 혹시 글 날아갔어?"

"음 그럴지도 몰라"

"별아 진짜 다 날아갔으면 니 머리 엄마가 다 지 뜯어 뿔지도 몰라"




노트북 화면을 보니  이대로 나가시면 저장이 어쩌고 저쩌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방학이라

(아서면)밥 챙겨가며 틈틈이 쓴 건데. 아흑. 진짜 날아갔다면 아마 울었을지도.




"엄마 있잖아 그래도 나 사랑해?"

"물론이지 니가 글을 통째로 날린대도 사랑하지 근데 니 머리는 지 뜯어 뿌고 싶을 것 같아"











난 주야장천 읽기만 했지 제대로 된 글은 써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 쓴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고 누가 내 글을 볼라치면 쪽팔려서 가리기 바빴다. 그런 나도 시간을 들여 노력하니 일단 써지긴 했고 쪽팔림도 옅어졌다.(매번 기를 쓰고 내 글을 읽으려는 별이 덕분에 강해진 멘털) 방학숙제로 30일 치 일기를 몰아 쓰던 엄마와 달리 아이는 매일 일기를 쓴다. 쓰는 행위를 큰맘 먹고 해야 되는 일이 되지 않도록, 밥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망설임 없이 뭐든 써내려 갈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오늘도 난 너의 글을, 넌 나의 글을 [어쩜 이렇게 멋지게 쓴 거냐]며 최고라고 추켜세워준다.

별아, 우리 같이 평생 쓰자.  (일기 따위는 왜 있어서 나를 힘들게 하냐는 달이는 일단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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