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캠핑 한 번 가볼까나? 급하게 한 결정이라 남은 사이트는 있을 리 없었고 단 하나의 장소만이 떠올랐다. 그곳은 바로 엄마집 마당, 우리만의 단독 사이트다. 사촌동생을 만나 포켓몬카드 거래를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께 용돈 받을 생각에 아이들은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심심하면 눈 오는 추운 동네에서 몇 개월 살았다고 벌써 익숙해진 모양이다. 울산에 도착한 즉시 몸이 먼저 반응했다. " 겨울 맞아? 하나도 안 추운데?" 상대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지는 기온에 아이들도 나도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마당에서 놀고 또 놀았다.
둘째 날 새벽 달이의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다. 체온계는 없었지만 열이 39도는 훌쩍 넘어 보인다.
오랜만에 하는 겨울캠핑이라 그런 걸까. 아니다 첫날에도 텐트에서 잤지만 멀쩡하지 않았는가. 엄마는 달이가 내복바람으로 마당이며 밭이며 온천지를 돌아다녀서 그렇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추운데 누가 내복바람으로 그래 다니라나~ 할매 말 안 듣고 잠바도 안 입을 때 알아봤다!"
달이는 고열에 시달려 힘없이 늘어져 있는데 엄마는 왜 자꾸 아이를 탓하는 말을 해대는지. 듣기 불편해졌다.
사실 엄마는 나에게도 저런 말들을 자주 한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오히려 맘에 생채기를 내는 말들 말이다.
평소 엄마에게 말을 하기가 망설여져 숨 한 번 크게 내쉬고 시작할 때가 종종 있다.
그 이유는 나의 말을 일단 부정하고 보기 때문이다.
"엄마 나 집 얼마에 내놨어"
"처음부터 금액 그래 해가 안된다"
"엄마 나 집 매매 안 돼서 전세로 돌렸어"
"에이 팔고 가야지 전세 줘가 안된다. 그람 집 엉망된다이"(뭐만 하면 다 그럼 안된대)
법인이랑 계약했고 도우미 아주머니께서 매일 집안일을 해주고 가실 거라 오히려 일반 개인이 들어오는 것보다 깨끗하게 쓸 텐데 내 말은 들어주지 않는다. 엄마의 경험치에 있는 세입자들은 집을 험하게 썼으니까.
엄마 생각은 오로지 직진이다. 아 가끔 유턴도 한다. 이렇게.
"연아 그때 전세 돌리길 잘했네 그쟈"
달이를 향해 반복되는 엄마의 말에 대꾸를 했다.
"엄마 안 그래도 아파서 힘든 애한테 왜 자꾸 그렇게 말해?"
"우리 강아지 아파서 먹지도 못하고 불쌍해서 그렇다 아이가"
그래 맞다. 엄마의 오리지널 감정은 이거다. 잠바 입고 다녔으면 안 아프고 신나게 놀았을 텐데 기운 없는 모습에 안타깝고 가여운 거. 나야 엄마의 원래 마음을 안다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알아듣지 않을 텐데. 이제 와서 엄마의 방식이 바뀌기는 어렵다는 걸 알지만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엄마에게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