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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Apr 20. 2024

꿈에, 장애는 없습니다

e알리미가 수시로 울리기 시작하며 새 학기를 체감했다. 예상대로 아이의 가방 속 우체통에는 매년 작성했던 서류가 올해도 어김없이 들어있었다. 가족사항, 장단점, 담임선생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 등 늘 적던 대로 막힘없이 앞뒤로 빼곡히 채웠다. 그리고 절반쯤 도달했을 때, 자리를 이탈해야만 했다. 진한 커피를 들고 창가로 옮겨 시선을 아파트 넘어 산자락을 바라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쓴 커피를 입안 가득 채우고 다시 서류를 직면했다.

'부모가 원하는 장래희망과 아이의 장래희망'

어느 날부터 이 질문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확신 없이 적었다.


'사육사 그리고 소방관'

7살까지 소방관이 꿈이던 시후에게, 8살이 된 후로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지 않았다. 여전히 소방관일 거란 생각과 함께 어쩌면 가능성이 낮은 장래희망 보다, 현실에 놓인 학교 적응이 더 중요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시후 의사를 묻지도 않고 써 내렸다.







하굣길 같은 반 학부모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다.


“시후 아빠, 엄마 두 분이, 경찰이셨어요?”
“아예.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OO이가 집에 와서 얘기하더라고요. 시후가 어제 발표할 때 말했대요.”
“우리 시후가요?”

교실에서 말은 하는지, 친구와 이야기는 주고받는지, 수업은 듣긴 하는 건지 시후의 학교생활은 판도라상자였다. 며칠 전 알림장에, ‘자기소개 발표’라는 문구가 신경 쓰였지만 괜한 욕심부려서 서로 스트레스받지 말자라는 생각에, 알림장을 덮었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질문을 받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시후가 교실 앞에 나와 발표를 했다는 사실, 거기에 우리의 직업을 친구들 앞에서 전했다는 전언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내게 질문을 던지고 훅 떠난 학부모를 붙잡아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진정했다.

그리고 시후를 만났다.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시후에게 달려가 끌어안았다.


"아들~~~ 사랑해"

엄마가 오늘 왜 이러지 하는 의아한 표정을 한 시후는 답답한지 내 품 안에서 꿈틀거렸다. 그리고
참고 참다 두 팔을 휘저으며 결국 터트렸다.


"집에 가자"




시후의 가방 속, 우체통엔  서류가 있었다. 투명 파일 속 뒤집힌 서류를 만지작거리다 모서리 끝을 잡고 슬쩍 탐색했다. '2학년 2반 박시후'를 확인하고서야 서둘러 뒤집었다. 이내 우체통 모서리에 얹은 손은 뜨거워졌다.

'저는 경찰관이 되고 싶습니다'


경찰아빠, 엄마를  시후가 소방관이 되고 싶다 말할 때 가슴 한편 서운함이 있었다. 한때는 경찰을 좋아했음 싶어 실제 근무복과 장난감총으로 세팅 후 리얼한 도둑연기도 했었다. 그래도 놀이 끝 소감은 늘 소방관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후 꿈이 바뀌었다.
나의 직업이 아이의 꿈이라 먹먹했고, 
다른 친구들처럼 성장하며 꿈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다 가진 것 같았다.

꿈꾸는 것에는 차별이 없다. 그리고 그것과 가까워지는데 장애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시후에게 묻지도 않 지난 시간이, 시후 가방 속 서류 한 장으로 시선이 바뀌었다.

나는 시후의 꿈을 지켜주고 싶어졌다.








[epilogue -

랜만에 시후와 단둘이 나섰다. 오늘은 특별히 조수석 차지한 아이는 앉자마자 안전벨트를 단단히 채운다. 한참을 달리다 신호대기와 함께 정지선에 멈췄을 때, 아이의 시선이 내게로 왔다.

"운전 똑바로 하세요!"
"똑바로 하고 있는데?"
"두 손으로 잡아야지!"


빨간색 신호와 함께 잠시 갖은 두 손 대기는 따가운 눈초리 덕분에 자유를 잃었다.


그러나 난, 이 까칠한 꼬마경찰이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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